빈고 운영위 활동 자료에는 ‘공동체목록’이 있습니다. 100여개 이상의 공동체들이 리스트업되어 있는데요. 뉴스레터팀에서 앞으로 차근차근 공동체들의 이야기를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충북 청주에 있는 공룡은 ‘공부해서 용되자’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영길(우중산책), 설해, 혜린, 종민쌤 4명의 활동가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청주 공룡에서 영길쌤과 설해쌤을 만나고 왔습니다.

공룡이 빈고 공동체 1번인 이유
잔잔 네 분의 인연이 모두 오래 되셨나 봅니다.
영길 혜린하고는 대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고, 대학교 졸업하고 제가 지역아동센터하고 그 친구가 미디어 그러니까 영화나 촬영 이런 수업하고 있을 때 공부방 수업 좀 해달라고 한 거죠. 그게 첫 출발이었어요. 수업하면서 애들이 좋아하긴 했는데 이건 아니지 않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부하면서 약간 공간을 좀 만들어보자 이렇게 시작을 한 거고. 그 공간 만들 때 제가 그때 진보 블로그를 하고 있었어요. 진보 블로그 친구 중에 지음이 있었고요. 그래서 지음이 해방촌의 아랫집인가 빈집인가 하여튼 그때 거기 놀러 갔죠. 혜린이랑 놀러 가서 쓸데없는 얘기를 많이 듣고. 그래서 그 빈집이 처음 만들어질 때 찾아가서 우리도 준비해서 청주에서 공간을 만들 생각이 있다고 이야기한 거죠.
잔잔 이 공간은 몇 년도부터 시작하셨어요?
설해 이사 온 게 2015년이고요. 네 10년 됐네요.그리고 여기서 걸어서 한 5분 거리에 처음 공간을 만들었던 거거든요. 그곳 준비는 2009년부터 시작해서 2010년에 오픈했어요.
잔잔 설해쌤은 어떻게 공룡과 함께 하게 되셨어요?
설해 혜린 언니 보러 1년에 한두 번 정도 놀러 오곤 했었는데 청주에 연고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전라도가 고향이긴 한데 대학은 경상도에서 다녔거든요. 근데 대학 때 미디어 활동을 시작해서 잠깐 휴학하고 다큐 조연출로 농촌을 좀 돌아다니다가 그 다큐의 편집 때문에 서울을 가야 했어요. 감독 언니가 서울 사람이어서 촬영은 경상도 돌아다니면서 했는데, 편집은 서울에서 하기로 해서 제가 올라갔죠. 그때가 용산 참사가 생긴 딱 그 시기였어요. 그래서 참사 현장에서 활동하는 거랑 다큐 조연출 하는 거랑 같이 병행하면서 1년 정도 서울에 머물렀어요. 한 학기 남겨놓고 휴학했었는데 이제 졸업을 해야하니까 고민을 했죠. 원래는 임용고시를 볼까 하다가 공룡에 놀러 올 때쯤이 그때쯤이었거든요. 이제 임용을 볼 건지 말 건지 결정해야 되는 그런 때였는데, 여기 좋네 이러면서 공룡에 머물기로 했죠. 그때가 봄이었는데, 봄에 계속 준비해가지고 2010년 6월에 오픈식을 했었거든요. 용산 참사도 이제 제사랑 장례 다 치르고.
잔잔 뭐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 기억나세요?
설해 계속 맛있는 걸 많이 줬어요. 술을 계속 주고 열흘 정도 매일 먹고 마셨던 것 같아요. 공사하면서 페인트 칠하고 끝나고나면 저녁에 막 뭐 먹잖아요. 또 영길쌤이 요리 잘하잖아요. 그때도 막 하여튼 엄청 잘 먹였어요.
영길 빈집에서 맥주 담가서 우리 갖다 주고 우리가 담가서 갖다주고 그러기도 했죠.
잔잔 저도 기억나는 것 같아요. 빈맥주
설해 빈집에서 먼저 시작하고 저희는 이제 그걸 배워서, 기술을 배워와 가지고 수제 맥주 만들어서 우리끼리 먹기도 하고 판매도 했었거든요.
영길 빈집에서 맥주 만들던 발효통도 여기 있어요.
설해 빈집에서 빈맥주 생산 중단할 때쯤 거의 비슷하게 우리도 거의 중단하긴 했었는데 ,우리가 그래도 한 1, 2년 더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잔잔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빈집-빈고와 공룡이 비슷하게 시작해서 길을 걸어 온 거 같네요.
영길 싸우기도 엄청 싸웠어요.
설해 영길쌤의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저는 싸우지 않았어요.(웃음)
영길 나는 엄청 싸웠어요.그때가 박원순 시장 되자마자 마을 만들기 사업을 막 돈을 엄청 풀었던 그때 여러 사람하고 갈등이 있었죠. 이해가 안 됐던 건 아닌데 어찌 됐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마을 활동가 신청해서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게 활동이냐 사업이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이 있어요.
잔잔 그러면 공룡은 계속해서 거의 자립적으로 운영을 처음부터 이렇게 계속하고 계시는 건가요?
영길 모든 지원금을 거부하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렇게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긴 했었어요.
설해 요새는 더 지원 사업의 비율이 적어지긴 했어요. 원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지역에서 작은 사업은 참여하는 것들이 좀 있었는데 최근에는 더 없어지긴 했어요. 근데 일부러 지원을 안 하고 그런 건 아니고.
영길 그냥 뭐 하기 싫은 거죠. 그냥 어쨌든 그냥 자체적으로 벌어서 하다 보면 이게 또 되니까.
설해 그전에도 영상 작업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이런 식으로 돈을 어쨌든 벌 수가 있으니까 그걸로 또 이제 유지가 되는 측면도 있고 농산물도 판매하고 후원금도 들어오기도 하고 하니까요. 지원 사업 꼭 해야 되는 어떤 건수가 있으면 맞는 걸 찾아서 내긴 하는데 그런 게 아니면 안 하다 보니까 이게 점점 줄어든 것 같아요. 또 인원이 많을 때는 또 사업을 꾸려갈 수 있는데 지금 저희 인원이 많이 적고.
잔잔 공룡 앞에 생활 교육 공동체라는 타이틀이 붙잖아요.
설해 네 교육을 했던 거죠. 이제 그 공부방에서 공부방에서 시작해서 공룡으로 이제 수업을 옮겨 온 거예요. 옮겨와서 이제 수업을 계속했었고. 청소년 포함해서 다양하게 자체적인 교육을 계속 하기도 했었는데 최근에는 자체 교육을 거의 못하고 있죠. 거의 한 3년 넘은 것 같아요. 특강 형식으로 이제 한 번씩 강좌 같은 거 있잖아요. 그 구술사 강좌 이런 형태로는 하지만 저희 일상 교육 프로그램은 못하고 있죠. 인원도 인원이고, 여러 가지 상황이. 그리고 여기 오던 청소년들이 이제 자라서 다 나이를 먹고 취직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하는 과정에서 이제 새로운 세대들을 만나진 못했죠. 최근에 올해 취직한 친구가 거의 마지막 두 명 공룡에 그래도 끝까지 오던 두 명이 이제 딱 취직해서 지내고 있구요.
영길 저희가 생활 교육 공동체 할 때 교육을 넣었던 건 활동의 방식이 처음에 저나 혜린이 교육 중심으로 많이 했어요. 제가 학생 운동을 했는데 그 뒤로 사회 운동 처음 시작한 게 야학이었었거든요. 야학을 하다가 IMF 터졌을 때 공부방이라는 걸 처음에 했습니다. 야학에는 협의회 같은 게 있었어요. 남부야학이랑 관악구랑 이렇게 전국적으로 성인 문해 교육 운동이라고 해서 그 흐름이 있었어요. 그걸 하다가 그 그룹에서 IMF 터지고 청소년이나 아동 교육을 같이 하자라고 해서 그걸 세팅을 했어요. 그걸 하고 나서 이게 엄청 폭발적으로 성장을 할 때쯤 김대중 정부에서 정책 제안을 해서 지역아동센터라는 것 방과 후 아동 교실 같은 것들을 지원해 줄 테니까 그 제도 안에 들어와라 이래가지고 그때 엄청 싸웠죠. 제가 있었던 데는 안 들어가기로 최종적으로 결정을 한 거고. 왜 그러냐면 수업이나 교사에 대한 자격 같은 것들을 제도화하는 측면에 대해서 계속 비판이 있었고 그래서 저희랑 몇몇 군데는 지역아동센터 안 들어갔었던 거예요. 처음에 안 들어가고 자생적으로는 제도권 밖에서 하겠다 이렇게 해서 가다가 제가 있던 곳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한 거예요. 들어가면서 저는 그만뒀고요. 그때 쯤 혜린하고 전혀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떨까 이런 얘기를 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방식의 교육을 통해서 다른 방식의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1년 넘게 공부를 하다가 빈집에 갔던 거죠. 빈집에 다녀오고 약간 내용을 계속 정리를 해서 그래서 시작한 게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잔잔 제도와 제도밖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일관되게 말씀하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을 공동체 만들기 사업에서도 어떤 맥락이셨는지 이해가 더 되는 것 같아요.
영길 비슷하게 싸웠던 것 같아요. 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왜 박원순한테 지원금을 받아야 되냐라는 박원순한테 받는 순간 성과를 내야 되는 게 약간 어쨌건 인위적으로 마을을 그렇게 만든다고 접근하는 방식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양산하지 않겠냐라는 게 기본적으로 그때 거의 광풍이었죠.
잔잔진짜 오랜 시간과 과정이 있었네요. 뭔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설해 나이가 좀 되잖아요. (웃음)
[빈고문학상 설해쌤의 글을 보신분 계신가요? 글 속의 작고 냄새나고 귀여운 손님들입니다. 인터뷰내내 아기들을 물고 창고로 숨기느라 바쁜 독립적인 2세대 엄마고양이의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사람손 타는 걸 싫어해서 아기 고양이들을 자꾸만 춥고 어두운 곳으로 숨긴다고 하네요
[빈고문학상-작품03] 작고 냄새나고 귀여운 손님들 (설해) [클릭하면 새탭에서 링크열립니다]
잔잔 공룡은 자주 모여서 어떤 목표나 계획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시는 편인가요?
설해 저희가 모이기가 좀 힘들어요. 어차피 다 일을 하고 있는 상태고요. 그래서 원래 연말 연초에 워크숍을 매번 매년 했는데, 지금 작년 말 올해 초 워크숍을 계속 못하고 있었어서 그걸 원래 이번 주에 할지 어떻게 할지 고민을 하다가 다음 다음 주로 미룬 거거든요. 그때도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 그때 좀 평가하고 계획을 잡을 거라서. (영길쌤에게) 올해 무슨 일 할 거야?(웃음)
영길 원래 공룡이 조직적 목표가 없었어요. 처음부터 이게 뭐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고 분명히 잘 안 되는 이유기도 하겠지만. 각자 자기가 할 걸 내놓고 그것들을 어떻게 함께 할지에 대해서 계속 결정하는 거죠. 우리가 뭘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멤버가 있고 자기 걸 내놓지 않은 멤버가 있다 보니까. 이걸 하기 위해서 움직일 거야, 라고 하는 것들을 원래 초기부터 갖고 있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생각해보면 올해는 어쨌든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하겠죠. 오키나와와 연대를 할 테고, 군산과 연대하고 그리고 약간 돈을 좀 만들어 보자 이런 얘기들을 하겠죠.
잔잔 돈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은 이 공간에 대한 비용인가요?
설해 아니요. 활동에 대한 비용이죠.
잔잔 그러면 더 이상 공간에 대한 비용은 그렇게 부담되지 않는 상황인가요?
설해 포함되는 거죠. 운영비에 공간 그러니까 월세 여기하고 위에 집 공간 월세랑 두 사람 활동비. 영길쌤과 종민쌤 두 사람은 활동비를 안 받고 혜린 언니랑 제가 활동비를 받는 형태로 가고 있어요. 두 분이 일하고 월급에서 갹출해서 활동비 적립. 다 섞여 있는 거죠. 공간 운영비 활동비 전부. 돌아다니면서 쓰게 되는 경비들, 사업비 이런 거 다 포함해서 어쨌든 전체 재정이 있는 거고 거기에 이제 일부를, 일정 금액을 계속 벌어서 넣어주시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길 (다시 계획 이야기를 하자면) 그러니까 최근 몇 년은 분명히 무엇을 하겠다라고 결정하지 않아서 1년 내내 바빴기 때문에 크게 결정하지 않아도 계속 가는 거죠. 가령 지금 군산의 미군 기지 관련된 연대를 하고 옵티컬하고 대우조선, 한화오션으로 바꼈죠. 이런 것들이 연초에 계획해 놨던 게 아니라 중간에 계속 꼬리를 물고 연결되는 거에요.
영길 빈고는 목적이 있죠. 일종의 은행을 만들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금융을 중심으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목적이 있는 거고. 공룡은 옛날에 공룡 소개할 때 계속 얘기했는데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조직으로 꾸렸던 것 같아요. 네트워크의 핵심은 다들 한 가지 일을 하면 망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잘될 때는 각자 자기 것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는지가 고민이었다라고 하면 지금은 어쨌든 도드라지게, 하나 아니면 영상이면 영상만 있고 다른 것들이 거의 일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활동으로서 무엇을 남길지에 대한 고민들이 많지 않으니까. 활동을 1년 내내 바쁘게 하긴 하는데 이때 제 생각에 근력으로만 보면 건강하고 잘 되는 걸까라는 고민이 약간 있긴 한 거죠. 그러니까 보면 설해쌤 중심으로 하는 영상이, 최근에는, 외부로 보여지는 것들에서, 거의 핵심이고 다른 것들이 별로 없으니까. 이게 보통 네트워크 조직이 가지는 문제긴 한데, 그러니까 저희가 어쨌든 처음부터 어디 연대 하면 장기적으로 계속 함께 가는 게 있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데는 어쨌든 손 잡고 간다, 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 일을 정기적으로 계속 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약간 벅차긴 합니다. 그 나머지 문제는 계속 남는 멤버가 해결하고 있는 거죠.
잔잔 공룡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빈고도 돈을 매개로 다른 공동체들하고 혹은 그 돈을 필요로 하는 어떤 곳하고 네트워킹하는 관계라고도 볼 수 있잖아요.
영길 그렇죠. 그런데 그러니까 옛날과 좀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뭐냐면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거예요.여러 조합원들을 만나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고민을 이야기할 때 괴리감이 너무 큰 거예요. 제 입장에서 활동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있고,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떤 활동들을 할 때 무슨 고민을 해야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솔직히 얘기하면, 갑갑한 게 있죠. 옛날에는 그래도 몇몇 서로 갈등이 있어도 이야기될 수 있는 게 있었는데 지금 사실상 그게 불가능하지 않을까.
잔잔 세대차이라든가 세대간 소통의 어려움 그런 문제는 아닐까요?
영길 옛날에 빈집이었을 때는 활동가가 절반이었었기 때문에 어쨌건 논쟁이 됐든 뭐 술 먹고 싸우든 각자 자기 활동을 하면서 하는 공감과 이야기들을 나눌 수는 있었는데 지금 그게 잘 안 되는 거. 그러니까 공통점은 옛날 얘기를 하는 것밖에 안 나오는 것 같은 느낌. 그게 세대 차이냐라고 보면 전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무슨 직업도 아니고 운동 선수도 아니고. 나이 먹으면서 자기가 속해 있는 지역사회랑 내가 속해 있는 위치에서의 운동이 발생을 하고 과거에 해왔던 운동이 소멸되는 것뿐인 거고. 내가 해왔던 걸 젊은 세대들이 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내가 늙었으니까 일선에서 물러나야 해, 이런 것도 아니라는 거죠. 일본 가면 오히려 70대 80세 되신 분들이 계속 활동을 하시고 그것이 꼭 어떤 위치에 있거나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그런 거죠. 어떤 걸 막아내든 투쟁을 하든 만들어내든 그거 같아요. 근데 한국은 너무 빨리 활동이 끝나는 버리는 지점이 있죠.
잔잔 많은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회적인 운동 내지는 활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조합원인 내가 빈고운영위원으로 여기서 어떤 결정이나 이야기를 해도 되나. 이런 고민을 종종 합니다.
설해 영길쌤은 어쨌든 빈고 초창기 때부터 교류하거나 방향성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한 맥락이 있으니까 저런 얘기를 하실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운영위원 지금 4년 차인 것 같거든요. 근데 그냥 그 관계망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것들을 나누는 거 좋다고 생각하고, 어쨌든 누군가는 또 그걸 굴려야지 그 만남들이 발생하고 정리되고 기록되고 넓어질 수도 있는 거고. 같이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고요.
잔잔 설해 쌤은 운영위 활동 시작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으셨어요?
설해 저희 활동 공간을 마련하고 해 나갈 때 빈고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약간 늘 은혜를 갚아야 된다 이런 게 좀 있고요. 근데 하면서 좋은 거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쨌든 이게 쫀쫀한 관계는 아니어도 늘 뭔가 이렇게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사실 좀 좋거든요.
잔잔그때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그냥 다른 지역에 그냥 사람들 만나서 환기가 되는 그거 자체가 좋다라고 하셨던 이야기요.
설해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뭔가 그래, 요즘엔 뭘 하면 빈고 사람들 초대할까 이런 생각을 한다든지. 근데 이게 늘 약간의 기대감 정도에서만 머물러서 조금 아쉽죠. 뭔가 잡고 관계를 깊게 만들어 나가야지, 같이 하는 활동이 생기든 관계가 생기든 할 텐데 . 그렇게까지 하고 있지 못해서 저도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사실 또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기가 조금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현장이 벌어지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새로운 활동이 계속 생기죠.
잔잔 그래도 빈고에서 매년 미디어 미디어 워크숍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설해 그것도 이제 제안을 주셨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니까 하기는 하는데, 사실은 이제 뭔가 이렇게 지금 잔잔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다니시는 것처럼 움직여야지 그게 더 많은 쓸모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나눔 이런 수준이지 이게 어떤 빈고의 미디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 정도로 목표를 갖고 진행하거나 (물론 그런 목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목표를 갖고 진행한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죠.
잔잔 아 올해 설해쌤이 빈고 활동 계획 중에 농활을 이야기 하셨어요.
설해 네, 현장에 저희 가서 연대하면서 농사도 같이 짓기도 하고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예를 들면 오키나와 갔을 때도 그래서 활동하시는 분의 밭에 가서 같이 농사를 짓는다든지 뭐 한국으로 치면 밀양이나 소성리나 이런 데서도 그런 농활 활동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그것들을 좀 고민을 해봤던 건데, 오프라인에서 대면하고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실천을 해보면 좋겠다, 차원에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예요. 현장에 찾아갈 수 있는 어떤 계기 그런 거 같이 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러면 이제 그 지역의 현장 상황이 어떤지 더 얘기 나눌 수도 있고 궁금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 또 각자의 관계들을 또 그 현장에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잔잔 좋을 것 같아요. 빈고 안에는 다양한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으니까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그런 어떤 계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그러니까 억지로 막 목표를 가지고 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하시는 데 가서 진짜로 도움이 되는 어쨌든 우리가 모여서 어딘가를 가는 거를 조금씩 하잖아요.
설해 근데 어쨌든 현장에 찾아가는 게 개인으로서 가기가 조금 어려운 측면이 또 있잖아요. 거리가 멀 수도 있고 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가늠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고 그래도 아는 사람들도 한 명 있어야지 약간 조심조심하면서 물어봐가면서 가게 되는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요. 여럿이 갈 때 좋은 건 어쨌든 그런 것들을 매개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 안에 있어서 현장하고 잘 소통해서 여럿이 가게 되면 좀 이제 그런 부담이 덜어진다는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근데 이런 활동을 사실 계속 하는 편이에요. 이제 미디어 활동 안에서 그렇게 하기도 하고 저희가 공룡이 이제 어딘가에 갈 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이제 좀 불러서 같이 가기도 하고 이런 걸 계속하는데, 4년 동안 운영위원으로 참여해서 그런지 요새는 빈고랑 가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조금 자연스럽게 좀 들긴 하거든요. 저희가 어쨌든 농사를 꾸준히 짓고 있는데, 저는그렇게까지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고 사실 농사를 아직도 잘 몰라요. 그냥 가서 뭐 뽑아 심어 이렇게 하면 하는 거지. 그게 익숙해져 있을 뿐이지 농사에 대한 감은 거의 없습니다. 저희 농사 지으면 친구들이 도와주러 오기도 하는데 잘 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다 섞여서 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다 같이 어쨌든 그 시간 안에 제가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이렇게 뭔가 몸을 움직여서 같이 뭔가를 해내면 기분이 좋거든요. (웃음) 그걸 공룡 농활로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물론 오셔도 됩니다만. 근데 원래 원래 감자 심고 수확할 때는 이렇게 감자 심는 데이 이런 식으로 해서 공지 올려서 같이 하기도 합니다.
인사하고 앉자마자 시작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룡에서 운영하는 마을까페 이따입니다. 늦은밤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놀다 올라갔습니다. 문을 잠그는 것도 잊은 채 말이죠. 문단속 뿐 아니라 저녁 먹고 나눈 이야기들의 녹음도 잊은 채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더랍니다. 공룡에서 함께 공부하고 최근에 일을 시작한 한 친구가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있는데, 지나가다 들러서 문단속을 해주고 들어갔다는 소식을 아침에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기억과 남아있는 사진에 의지하여 인터뷰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동체은행 빈고 책임활동가 지음과 인연이 시작된 진보블로그 링크 공유합니다. 공룡과 빈고 인연의 시작은 바로 온라인 공간에서 지음과 우중산책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는 멋이 있는 지음-살구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1층 까페 곳곳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소품과 역사와 사연이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마치 유물처럼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키나와 도토리와 군산의 나무조각, 선물받은 공룡캐릭터들, 저 나뭇잎은 어떤 나뭇잎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한때 음반제작업을 하기도 했던 공룡에서 강력추천하는 이형주님의 우리는 서로를 간직하려고, 앨범입니다(멜론에서도 들어볼 수 있어요). 그리고 아시나요? 공동체은행빈고노래가 있습니다. 역시 공룡에서 제작했다는 사실!▼▽▼]빚을 졌어요 – 공동체은행 빈고노래(작사작곡 오재환) [클릭하면 새탭에서 링크열립니다]
[역시 많은 것들이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는 진열장 속에서 보물처럼 반짝이는 순간의 사진을 몰래 찍었습니다. 소심한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하고 이렇게 다음 날 아침 진열장 옛 모습을 담아왔습니다]
[선물받은 책과 잡지와 음반과 공책과 참기름입니다. 박영길 레시피 요리활동-어떤 싸움에서든 무너지지 않는 일상이 중요하니까- 구매가능합니다. 박영길 감자 레시피도 좋은데 구매불가능합니다. 요리 잘하는 영길쌤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책들입니다]
공룡 감자심는데이 공지해주시면 한번 더 뵙고 싶네요. 그때는 혜린쌤과 종민쌤도 같이요.
무턱대고 인터뷰하겠다고 찾아갔는데 환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시간들을 최대한 전하고자 썼습니다. 불편하신 부분이 있다면 주저말고 말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룡편 끝. 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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