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곰입니다.
12월이네요, 라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15일이네요.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를 보고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봐야 할 것 같은데 문득 걸음을 멈추면 여기가 어딘가 싶기도 하고… 연말 핑계로 딴 생각에 잠겨 있기 좋은 날, 여러분의 연말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1980년 생, 당시 비교적 장신의 (초)고도비만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뭐 그렇게 자랑할 것도 못 되고 한데… 그래도 그냥 쓰여지는 대로 써 봤습니다. 약간은 쭈굴쭈굴해지는 이야기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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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사 담당자가 마지막 경고를 주었다. 근로개시일 기준으로 3개월 안에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곧 3개월이 되는 시점이었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이렇게 떠밀리듯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는 나는 이 절차가 매우 불만이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용도라면 ‘건강 이상 없음’ 도장 꾹! 정도로 타협하면 안 되는 걸까. 어린 시절 그놈의 신체검사적부터 여태까지 학교고 회사고 국가고 간에 나의 신체에 대한 정보를 너무 공유한다 싶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괜히 자격지심에 그런 거 아니냐고, 누가 그걸 보고 기억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내 몸을 긍정할 수 있게 만들어진 사회 구조라면 모를까, 사내 인사 담당자가 내 주민번호, 주소는 물론이고 키와 몸무게, 혈액 상태, 간 수치까지 보게 되는 일이 나는 매우 달갑지 않다. 와중에 다행일까, 큰병 지나간 일은 기록에 없다는 게. 무튼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다른 이의 서류 아래에 슬쩍 밀어 넣어둔 나의 시크릿 검진 결과서를 그는 내게 돌려주러 직접 왔다. 뭔가 태도가 이상하다. 나의 모든 수치를 눈으로 확인한 뒤였을까. 눈도 마주치지 아니하는 그. 아니 왜요. 거기서 혹 못 볼 거라도 보셨는지? 그렇다. 자격지심 폭발이다.

물론 의사 선생님께서는 순전히 나이’빨’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지만.
국민학교 입학 때 나는 키가 128cm이었다. 5학년 때 156cm, 중3때 167cm,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170cm을 돌파하고 성장이 종료되었다. 그 후 20년 동안 1cm 컸을 뿐이다. 몸무게 역시 6학년 졸업하기 전 이미 가뿐하게 50kg를 넘겼다. 그러니 애초에 세상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163cm에 45kg의 기준은 생리도 시작하기 전에 탈락. 그렇게 쑥쑥 크는 과정에서 나는 어느 집단에게는 내가 혐오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걸 차차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신체검사나 체력장이 참 싫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신체검사 하는 날과 체력장 하는 날은 학생의 인권따위는 합법적으로 무시한, 비윤리 비도덕이 만연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선생님이 신체지수와 기록을 불러주면 옆에서 반장이나 체육부장이 그걸 다 받아적고 있었고 뒤에는 나머지 아이들이 뱅 둘러 진을 치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깔깔거리며 놀고 있었다. 관심사는 늘 그렇듯 정해져 있었다. 뚱뚱한 애의 몸무게는 얼마인지, 예쁜 애의 가슴둘레가 얼마인지. 신체 검사가 끝난 뒤에도 여자애들은 몸무게나 가슴둘레 숫자로 불리우면서 한동안 놀림감이 되었다. 성숙한 여자애들의 가슴둘레를 잴 때 은근슬쩍 못된 짓하는 생선도 (많이) 있었다. 성장이 빨랐던 여자애들 몇몇은 런닝만 입고 재는 것도 너무 수치스러워 티를 안 벗고 재면 안 되냐고 했다가 뺨을 맞기도 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날 붕대로 여러 가슴을 친친 동여매주던 유진이라는 이름의 체육 부장이 생각난다.
교실에서 엉덩이를 까고 주사를 맞았던 국민학교 1학년, 옷을 내리기 너무 챙피해서 버티다가 선생님한테 퍽 소리나게 머리를 쥐어박히고 뒷덜미를 채여 끌려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원피스를 입어서 치마를 걷어 올리고 흰 면스타킹을 내려야 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럽고 기분이 나빴다. 그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여자아이들 여럿이 그렇게 선생님의 아귀힘에 휘둘려 주사를 맞고 자리로 돌아오면 누군가 우리들에게 너네 팬티와 엉덩이 다 봤다면서 혀를 낼름댔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여자의 맨엉덩이는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눈물을 쏟은 한 아이 앞에서 그럼 너도 보라며 자랑스럽게 자기 바지를 내리던, 얼굴이나 이름보다 엉덩이로만 남은 그 아이는 잘 지낼까. 누가 맨몸을 보여준대도 보기 싫고, 칸막이 같은 걸 좀 해줬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기분이 나쁜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선생님에게 맞은 뒷통수나 뺨이 더 얼얼해서였을까. 아닐걸.
내 몸이 소중하다면 모두가 소중히 여겨 주든지, 신체와 관련된 수치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면 숫자로 수치심을 주지 말든지…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어깨가 곱고 등이 굽었다. 특히 발은 늘 단화 안에 구겨져 있었다. 키와 발이 같이 자랐으니 맞는 ‘여성’ 신발을 찾기가 쉬울 리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자 기성화 대부분은 사이즈가 250mm 까지다. 남자 250과 여자 250은 거의 1cm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도 이상하다. 지금은 발이 큰 여성이 많아지기도 했고 직구의 은혜가 넘쳐흘러 서양 신발을 편히 사 신을 수 있게 되어서 신발을 살 때 전과 같은 괴로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여자들의 옷 사이즈 44, 55, 66은 이상하게 세포분열을 하더니 33반, 44반, 55반 같은 어중간한 사이즈가 생겼다. 그것도 모자라 낙낙55, 마른66, 날씬77 같은 괴랄한 말을 만들어내면서 낙낙55는 44부터 77사이즈 모두에게 널리 이로운 옷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전혀 프리하지 않은’ 프리사이즈와 루즈한 핏의 옷이 아닌 ‘핏 되는 루즈 스타일’의 옷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얼마전에는 여름에 집에서 넉넉하게 입을 요량으로 홈쇼핑에서 세트로 산 남성 110 티와 반바지 몇 벌이 말도 안 되게 작은 사이즈로 와서 너무 놀라 헛웃음을 치다가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입혀 보았는데 허리28-30을 입는 그녀에게 편안하게 맞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다. 뭐야. 110이라며. 그쯤되면 안 맞는 옷을 탓해야 하는 건지 내 몸을 탓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수치를 기준으로 하지만 숫자가 전혀 맞지 않는 이상한 옷들. 내 수치에 맞는 옷을 기성복에서 찾지 못하면 나는 수치스러워야 하나. 내게 맞는 옷이 중요하지 숫자가 크고 작은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지.
그런 와중에 서점에 들어가보면 너를 사랑하라고 너를 긍정하라고 자존감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라고, 너는 너로서 충분하다고. 책마다 목놓아서 나의 아름다움을 말하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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