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빈고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많이.
원래도 연말연시는 특별한 일 없어도 일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둥실 두둥실 뜨잖아요. 올해는 유난히 마음이 머물지 못하고 서성이네요. 여기가 어딘지 또 가야할 곳이 어딘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왜 서성거리고 있을까요. 그러면서도 제가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사람, 아픈 몸,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종종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해를 보고 소원을 말해 봐요. 올 한 해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집이 따뜻하기를. 구체적이면서 두루뭉술한 이 소망은 어쩌면 살수록 제가 바라는 전부인 것 같아요.
다들 어떤 소원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올해는 가가호호 꼭 좋은 소식 한 가지씩은 더 보태져서 식구들 모두 한 번 더 웃을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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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살다 가지. 무슨 미련 있어서 애닳아 가면서 살아. 언제 가도 후회 없다. 이제 가야지, 가지 뭐.
세상사 부질 없어 이제 다른 세상으로 가시겠다는 타령 같은 이야기가 잦아졌다. 나는 부러 실없이 웃어가며 엄마 어디 가느냐고 좋은 데 가느냐고 되묻기도 했지만 우리 모녀는 대부분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침묵으로 빈 입을 채웠다. 엄마의 우울의 실체는 그 시절 엄마들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법한 일이라고 그래서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라고 억지로 불안을 떨치려 했던 내가 훗날 직시한 엄마의 외로움이었다.
코로나 때는 더욱 심해진 서로에 대한 걱정과 각자의 감정이 수시로 부대껴 크고 작은 폭발을 해댔고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을 때쯤 느닷없이 동생이 결혼 의사를 전해 왔다. 어차피 결혼식을 나중에 해 봤자 올 친구도 별로 없고 더 미루고 싶지 않다는 올케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있고, 우리도 뭔가 다른 방향으로 집중할 것이 간절하던 시점에 참 적합하다 싶은 집안의 대사였다. 일은 올케의 주도로 일사천리로 추진되었다. 나의 역할은 엄마가 때리는 시어머니가 안 되게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도 말리는 시누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려면 최대한 마주치지 않아야지, 식이 끝나면 되도록 연락하지 말자, 필요하다면 성의만 보내는 것으로 하자.
연상이었던 올케는 바로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어쩐지 모든 상황이 순탄하게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다. 조카가 태어나고 운을 받는다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 아이가 태어나고 비로소 우리집은 그 많은 통계들이 ‘평균’이라고 말하는 가구에 한걸음 가까워졌다.
– 말이 느려서 애가 탄다. 책을 안 읽어줘 그런 거 아닐까.
돌 전에 입이 트였다던 나와 혼자 한글을 깨친 동생만 키운 엄마는 두 돌이 지나도록 엄마아빠도 못하는 조카의 느린 성장에 애가 탔다. 나는 절대 올케한테 내색을 하지 말도록 엄마 단속을 하고 또 했다. 제일 속상한 건 부모지, 우리는 3자다, 엄마가 말이 왜 느리냐 병원이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엄마는 손주 자라는 거 못 보는 줄만 알아라, 협박인지 가스라이팅인지 모를 말을 매일같이 해가며 엄마의 불안을 잡아 앉히기를 1년 가까이, 아기가 말을 거의 알아듣는다 싶을 무렵 입을 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켜본 바로 올케는 의외로 수더분한 성격이었다. 아이 장난감을 당근에서 사고 팔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옷을 물려입히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았고 주말이면 곧잘 아이를 데리고 엄마집에 들러 밥을 먹고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에 갈 때는 반찬이며 김치를 얻어가는 등 엄마 음식도 맛있다며 잘 가져다 먹었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귀찮다 힘들다 했다. 늘그막에 김치 빚을 져서 고되다고 웃었다.
아이는 입이 짧아서 뭘 잘 먹지를 않아 제 부모를 힘들게 했는데 할머니의 무나물에만큼은 기꺼이 밥을 말아 후루룩 먹어서 어른들을 의아하게 했다. 무나물은 진미채로, 깍두기로 범위를 넓혀갔다. 엄마는 반찬 빚까지 늘었다며 웃었다.
10년 전에 나와 동생, 엄마가 함께 치아보험을 들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와 동생은 몇 번 보험을 이용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치료를 거부했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산다고 돈들여 치과를 다니냐는 거였다. 쓸데없이 보험에 돈 들이지 말고 그만두라고 몇 번을 역정내기에 나도 더 다투기 싫어 알겠다고 하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돈만 붓고 있던 터였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과연 끝이 날까 싶었던 긴 여름 한가운데쯤이었나. 어느 날, 엄마가 넌지시 말했다.
– 65세 이상이면 나라에서 임플란트를 2개 해준다는데.
아? 아!
흥분하지 말자.
천천히 다가가자.
– 엄마. 아직 보험이 만기가 안 돼서 살아 있어. 나라에서 해준다는 2개 하고 반대쪽도 아래위 개수 봐서 천천히 하면 되겠다. 안 빼도 되는 건 크라운 하면 될 거야. 이모한테 좋은 치과 한번 물어 봐.
엄마는 무언가를 씹어 보겠다는, 그래서 잘 먹고 건강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조금 더 살아봐도 좋겠다는 용기를 냈다. 나는 엄마에게 드렸던 카드의 한도를 높였다.
엄마는 임플란트 네 개와 크라운 두 개 치료를 시작했다. 보험의 덕을 보고도 카드 한도를 꽤 차지할 만큼의 비용을 지불했지만 전혀 망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올 겨울에도 김장을 해야 하고 맛있는 겨울 무로 나물과 깍두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음식을 해대려면 간을 봐야 하기 때문에 모자란 채로 지내던 이를 채워 넣는 것은 필수니까.
요즘은 웃으면서 물어볼 수 있다.
엄마 어디 가?
– 응. 오늘 치과. 2시 예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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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