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바깥 후기] 이거슨 후기인가, 의식의 흐름인가

빈고게시판

N명의 저자들과 함께 한 [자본의 바깥] 출간기념회를 연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나는 산고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경험과 사유를 글로 정리하고 엮어 낸다는 일이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볶아 내듯 소진하며, 내면의 진동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것인데 그래서 나는 김지음/빈고의 [자본의 바깥]이 세상에 나온 일을 감히 ‘산고’에 비유해본다.

이 책은 몇 달 혹은 몇 년의 조사와 ‘살이’로 증명될 수 없는 기록임을 알기에 15년간 엎치락뒤치락하며 꿈틀대다 마침내 올해, 이 겨울에 탄생한 이 책에는 분명 생명력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명리학에서 말하는 운명, 소위 팔자 같은 것이 이 책에 있다고 부여하고 싶어질 정도다. (우리가 함께 낳았으니 같이 잘 키워보자구!)

2025년 올 한해는 개인적으로 힘에 부치는 시간이었다. 에너지는 바닥나고 있었고, 채우면 금세 비워지는 잔고도, 그 잔고를 다시 채울 에너지 역시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작년, 올해 발악하듯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잊지 못할 몇 장면의 이벤트가 만들어진 해이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11월 28일 빈집과 빈고의 시간을 녹여낸 [자본의 바깥] 출간기념회였다(고 회고하고 싶다).

출간기념회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준비위원인 양군의 제안으로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듯 줌회의에 참석했고 의견을 내다가 어찌저찌 토크 진행을 맡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마음 놓고 노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노는 행위든, 노는 시기든, 함께 노는 사람이든 ‘놀이’의 조건들에 반드시 의미를 부여해야만 마음이 놓인다. 일도 다르지 않다. 그저 시키는 일을 해내는 방식으로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일이 크건 작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작동해야 비로소 몸이 반응한다.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의미를 내려놓은 채 ‘놀이’에 잠겨 있거나, 계산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순간이 있다.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늘 빈집과 빈고의 사람들과 함께할 때였다. 출간기념회를 준비하면서 나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모두가 의미를 내려놓은 채, 그저 열과 성의를 다해 손을 보태고 몸을 던져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놀이와 일의 경계를 허무는 대가와 보상을 ‘사양’하는 자발적 노동의 장면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잊지 못할 명장면이었다.

사전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지음에게 물었던 것이 있다. 토크 때 다 꺼내 놓지 못했지만 공유하고 싶은 것, 토크 때 N명의 저자들과 나눈 내용들을 여기에 옮겨본다.

1) p93 에서 채권/유대(bond), 채무/은혜(debts) 와 같이(주인=손님)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관계성을 바꿔내는 ‘운동’이 인상적이었다. 빈집의 생활실험이라는 것이 단순히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 공유한다 차원을 넘어 언어를 바꾸고 인식하는 세계를 바꾸어내는 실험(도전)을 이렇게 오래 꾸준히 해나가는 것에 대한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이런 끈기와 고집은 어디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실제 현재까지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가?

: 우리의 삶의 현실은 갑자기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생각과 언어 삶의 방향은 즉각 바꿀 수 있다.(지음)

2) 우리에게 ‘커먼즈’란 무엇인가? 공동체의 15년엔 아름다운 장면만 있진 않다. 위기도 있고 균열도 있고 서로를 다시 붙잡던 혹은 놓았던 시간도 많았다. 지음/우리에게 커먼즈란 무엇인가? (제도인가 감각인가 혹은 관계인가?) N명의 저자로서 우리에게 커먼즈가 가장 잘 보였던 순간/장면은 언제였나? 그리고 커먼즈를 지탱해온 ‘나의 혹은 우리의 노동’은 무엇이었나?

: 커먼즈란 모든 것이지만 모든 곳에서 위협받고 있는 것(지음)
: 이용 심사의 과정을 통해 조합원,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것/그 시간들을 공유하기 위해 서로의 노동력으로 출자금을 모아온 것
: 물질적인 장면은 역시 저축을 빈고에 하게 된 것이죠. 은행에 넣어두면 몇 천원 돌아올 거, 은행의 자본으로 기여하고 싶지 않던 제게 마땅한 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빈고가 같이 고민하고 이용해줘서 고마워요
: 우리의 노동 -빈고의 출자-이용-운영-연대 그 모든 것이 다 활동이고, 어느 하나를 하든, 두개 세개를 하든 전부 다 하든 관계 없고 차등 없는 활동이라는 인식의 공감대 유지
: 빈가게 스타트 사업자가 내 이름😎 첫 빈가게 만들 때 토론하고 토론하느라 모두 너무 힘들어서 지음이 울던 게 기억나…
: 친구들에게 쾌적함을 선물한다는 기분으로 즐겁게 했던 청소의 기억
: 작은 빈가게에서 같이 일한 마스터들과 빈가게 한달 정산을 하고 수익을 나누는 자리가 기억납니다. 10명 정도가 모여 한달동안 일하고 각자 얼마를 받을까 정하는 날이었는데…. 기억나시나요? 저도 가물가물한데 여튼 엉마 안되는 돈을 기쁘게 나누었던 날
: 새로 온 사람을 위한 자리가 늘 있었던 빈집이란 공간. 더 놀라운 건 늘,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의 자리까지 고려했다는 사실!
: 지구분담금으로 만나는 연대와 소통의 관계
: 빈고 계좌 나의 노동- 아주 다분히 의도적인 관심과 때로는 고도의 작위적인(?) 노력..?

3) 당신이 [자본의 바깥]에서 찾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혹은 당신에게 [자본의 바깥]이란 무엇인지?
– 안과 다른 정의, 평화, 인권
– 돌봄
– 우정과 사랑! 우리가 한가롭게 걷고 이야기하는 것들~
–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결되기
– 자본의 바깥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 같아보이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즐거워 보인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 예전에 공유지나 커먼즈를 생각했을 때 고전철학에 나오는 ‘사양의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바로 사양의 경제학이 나오니 마치 내 생각인양 반가웠어요~^^
– 홍길동전의 율도국같은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사람을 받아주는 은행같습니다
– 뜻을 함께 하는 이들(동지)의 공동체
– 자본의 바깥이란 ‘어렵지만 나대로 사는 것’

온전한 시간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많은 이론서들은 실증을 담지 못하거나, 실증을 지나치게 추상화하고 도식화하는 방식으로 결국 ‘이론서’라는 형식의 한계를 품는다. 반면 빈집과 빈고는 이렇게 살아보자, 저렇게는 살지 말자며 좌충우돌해온 시간 속에서 터득한 경험을 토대로, 실증 위에 이론을 세워왔다. 빈집이라는 세계에, 빈고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면 이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선뜻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세계를 담아낼 언어를 만들고, 실천을 구조화하며, 치열한 사유를 통해 우리만의 규범을 만들어온 시간이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어를 바꾸면 세계도 변한다는 말을, 나는 빈집과 빈고를 통해 확실히 경험했다. 그것은 단순히 ‘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몸을 담근 이들이 끝내 뱉어내는 말의 무게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본의 바깥]은 설명을 요구하는 책이라기보다, 시간을 들여 함께 통과해보길 권하는 책에 가깝다. 단번에 이해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멈칫하고, 다시 돌아와 읽게 되는 책.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몸 어딘가에 남아, 삶의 선택지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기울이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오늘도 [자본의 바깥]의 다음 시간을 나대로 살아본다. 함께 한 그리고 함께 할 친구들에게 ‘살아보니 넌 어때?’ 하고 다정하게 질문하는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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