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문잡지 <한편>에서 요청을 해서 기고했습니다. 큰 주제가 ‘독립’이고 빈고가 생각하는 ‘독립’에 대해서 써달라는 제안이었는데, 쓰다보니 빈집 얘기가 많아졌습니다. 편집자님들이 중구난방인 글을 재조립하고 고쳐서 책으로 만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http://minumsa.minumsa.com/book/29333/
“빈집의 가장 중요한 설정은 모두가 환대받은 손님이자 자율적인 주인이라는 입장의 동일함이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각자의 차이가 아니라 이 입장의 동일함을 깨뜨리는 차별과 격차이고, 그로 인해 각자 발언의 중요성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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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빈집에서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후원하거나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경제적인 이득은 우리가 함께 살고 절약하면서 얻어지는 것일 뿐 누군가의 선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선물이 있었지요. 소수가 보증금을 내면서 아무런 보상을 원치 않았습니다. 빈집 사람들의 분담금은 낮아졌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선물을 받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선물을 사양했습니다. 자신도 같이 출자를 하거나, 분담금을 더 내서 출자한 사람에게 이자를 줘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출자한 사람은 ‘이자를 받으면 내가 채권자나 자본가가 되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다시 사양했습니다. 서로 사양하는 두 사람이 만나자 출자금이 남고, 갈 곳을 잃은 이자가 잉여금으로 남았습니다. 대단히 묘한 장면이지요. 서로 갖겠다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주겠다는 경쟁입니다. 누구도 이득을 보지 않지만 동시에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돈은 두 사람 사이에 공유되어 있습니다. 이 돈은 모두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거나 적절히 분배되거나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갈 수 있어요. 이것이 빈집이 유지되고 확장되고, 가난하지만 여유로울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자본의 기초가 상품교환이고, 국가의 기초는 세금교환이며, 공동체의 기초는 선물교환이라면 이와는 구분되는 공유지를 만드는 이 독특한 교환에 주목한 빈고는 이를 사양교환이라고 정리하고 있어요. 사양교환을 확장해서 출자자와 이용자가 자본수익을 서로 사양해서 공유지를 만들고 잉여가 빈고 외부의 연대자에게 흘러가서 확장되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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