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거주자 햄이 아는 만큼만 소개하는 핀란드 ① 핀란드의 선거 그리고 투표 경험

빈고게시판

6월부터 인권교육센터 들 소식지 ‘소란’에 글을 쓰게 됐어요. 제가 써보고 싶다고 들에 연락했거든요. 핀란드에 살면서 느낀 점을 이제는 ‘다 좋아!’보다는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빈고 조합원들과도 나누고 싶어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아래 링크는 지난 달 ‘소란’에 실린 제 소개(?), 근황 입니다.
[들을 짓는 사람+들] 핀란드에서 세 번째 봄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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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핀란드의 선거 그리고 투표 경험

이 글을 여러분들이 읽을 때쯤은 한국의 21대 대통령이 정해졌겠네요. 저는 역대 최고 투표율(79.5%)을 기록했다는 재외국민 투표를 했습니다. 4월에 재외국민 투표 등록을 하고, 5월 24일에 투표를 했지요. 탐페레에서 기차로 두세 시간 걸리는 헬싱키는 핀란드의 수도인데요, 아침에 가서 투표하고 근처에서 점심 먹고 바로 다시 돌아오는, 출장 같은 느낌으로 다녀 왔습니다. (핀란드어로 출장은 työmatka ㅋ). 이번 글에서 제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핀란드의 선거와 투표 경험기입니다.

처음 가 본 헬싱키 대사관
투표 인증샷!

투표 인증샷!

핀란드에서는 18세 이상의 성인에게 투표권이 있습니다. 보통 본 투표는 일요일에 진행되지만, 사전투표는 본 투표 11일 전부터 시작해 7일간 이루어지며, 본 투표보다 투표소도 많고, 밤 10까지 투표할 수 있는 투표소도 있습니다.
핀란드 국민이 할 수 있는 투표는 총 5가지입니다. 저는 2023년에 핀란드의회 선거(Eduskuntavaalit), 2024년에 대통령 선거(Presidentinvaali)와 유럽의회 선거(Europarlamenttivaalit), 그리고 올해는 지역의회 선거(Kuntavaali)와 복지지역 선거(Aluevaalit)가 치러지는 것을 봤습니다.

간략한 선거 설명표

법이 바뀌니 일상이 바뀐다, 핀란드의회
제 삶에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핀란드의회 선거는 여기 온 지 1년도 안 돼서 본 선거라 사실 기억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선거 공보물이 오는 것도 아니고, 제가 투표할 수 있는 선거도 아니었고요. (핀란드인 친구가 있었으면 좀 나았을까요?) 저는 사회민주당(SDP)의 Sanna Marin이 총리로 있을 때 왔고, 다음 해 4월 선거로 연합당(KOK)과 다른 보수/우파 정당 세 곳이 함께하는 연합 내각이 꾸려졌습니다. 이후 노동, 교육, 의료, 경제 등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시작됐고, 저는 정책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리는 이주민의 삶을 맛보고 있습니다. 나라와 이 나라 국민이 나를 환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몰랐겠지요.

안정감을 주는 후보가 당선되는 대통령 선거
제가 보기에 핀란드에서 제일 인기 있는 투표는 대통령 선거입니다. 1994년 선거부터 전 국민이 직접 선거로 선출하게 된 대통령의 권한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과 외교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지만, 혼자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행정부의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과 함께 일해야 하고요, 주요 사법 인사를 할 수 있고 사면권을 갖습니다. 그리고 핀란드의 얼굴(!), 핀란드의 수준(?)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영국 왕보다는 나라의 중대 문제에 대한 권한이 많은, 그러나 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함께 도입한 다른 나라의 대통령보다는 권한이 적은 그런 위치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국민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모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현재 집권당인 Kokoomus에서 출마한 Alexander Stubb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1차 투표 득표율 27.21%로 결선투표에 갔고, 2주 후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득표율 51.62%로 당선되었습니다. (결선투표의 상대 후보 Pekka Haavisto는 1차 득표율 25.8%, 결선투표 득표율 48.38%)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결선투표에 오른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소속당원의 투표를 독려하기도 합니다. 참, 대통령은 당선이 되면 자신이 속한 당을 탈당합니다.

유럽의회 선거
제가 본 제일 재밌는 선거는 유럽의회 의원 선거였습니다. 유럽의회 선거는 회원국마다 각자 결정한 선거 형식으로 의원을 선출합니다. 핀란드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 없는 선거인 것 같기는 한데요(투표율 40% 초반), 완전비례제 선거의 매력을 팍팍 느낄 수 있는 선거였습니다. 핀란드는 나라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놓고, 각 정당에서 나온 여러 명의 후보 중에서 한 명에게 투표할 수 있습니다(작년 선거에는 232명 출마). 그러면 그 표는 개인별, 그리고 정당별로 계산이 됩니다. 각 정당이 몇 퍼센트의 득표를 했느냐에 따라 정당마다 획득할 수 있는 의석수가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한 정당이 4개의 의석을 확보했다면 그 정당에서 개인별로 받은 표가 많은 순서대로 4명이 의원이 되는 방식입니다.

Li Anderson (이미지 출처: liandersson.fi)

작년 유럽의회 핀란드 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은 좌파연합(vasemmistoliitto)의 정치인 Li Anderson입니다. 37세의 정치인인데요, 전체 투표수 중 247,723표로 총 13.5%의 표를 받았습니다. 다음으로 많은 개인표를 받은 후보(KOK 소속)가 96,669표를 받았으니 엄청난 수죠. Li를 포함해 좌파연합의 모든 후보가 받은 표를 합하면 17.3%입니다. 당이 받은 표 비율에 따라 좌파연합은 핀란드에 배정된 15명의 의원 중 3명의 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좌파연합의 세 번째 유럽의회 의원은 4,918표의 득표로 의원이 됩니다. 가장 많은 의석(5개)을 가져간 집권당(KOK)의 여섯 번째 득표자는 34,987표를 받고도 의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 결과가 신기했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당선되지는 못하더라도 내 표가 버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당에 걸출한 인물이 나오면 인지도가 낮은 다른 후보에게도 기회가 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당선되기 위해서 지역과 정당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자리에서 정당 활동을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다시 알게 됐습니다. 물론 많은 득표를 하고도 낙선하면 아쉽겠지만,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에는 대선거구의 비례투표가 국민의 뜻을 더 잘 반영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접 해볼 수 있었던 지역 선거 두 가지
위의 세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저는 어떤 후보나 정당의 공보물도 받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는 집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는 후보 공보물이 오잖아요? 저는 제가 선거권이 없어서 안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투표할 수 있었던 다른 두 선거에도 공보물이 안 왔어요. 물론 선거에 대한 설명이 담긴 편지는 왔습니다. 편지는 핀란드어, 스웨덴어, 영어, 러시아어, 에스토니아어, 아랍어로 쓰여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선거 종류와 투표일 뿐만 아니라,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내는지, 네게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근거가 되는 법, 이 선거에서 후보가 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헛! 투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영주권도 없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할 말 다 못하고 수동적으로 사는 와중에 흥미가 확 돋았습니다. 의회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때쯤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공동체 생활에 대한 수업(한국으로 치면 사회 교과 수업)을 받고 있어서 좀 더 알게 된 것이 있기도 했고요.
선거 기간이 되니 광장에 정당별 포스터가 줄지어 붙고,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는 정당의 후보 사진과 기호가 있었습니다. 인구 500만의 나라에서 선거운동원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요. 후보의 사비를 들여 인쇄해야 하는 손바닥만 한 양면 인쇄물에는 핀란드어로 쓰여있는 짧은 공약과 QR코드가 있을 뿐입니다. 확성기도, 춤과 노래도 없는 선거운동! 세상 이리 차분하다 못해 극내향인들만 있는 것 같은 선거라니… 모두 그런 건 절대 아니겠지만, 제가 본 선거운동은 한국 아파트 동대표 선거보다 조용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뭘 보고 투표하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학교 선생님은 일단 자신과 의견이 비슷한 공약을 건 정당을 찾고, 그 정당 후보들의 개인 공약을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탐페레 지역의회 선거에 나온 정당 수가 18개, 총 후보 572명입니다. 확실히 겨우 2년 정도 핀란드에 산 것 가지고는 정보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함께 치러지는 피르칸마 복지지역 선거에는 700명이 넘는 후보가 있고요. 일단 신문에서 각 정당의 공약을 정리해놓은 기사를 찾았습니다. 사실 기사를 보기 전부터 좌파연합이나 녹색당에 투표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여기서 vaalikone(직역하면 ‘선거 기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Yle의 vaalikone 첫 페이지
(https://vaalit.yle.fi/vaalikone/alue-ja-kuntavaalit2025)

vaalikone에 대한 제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
vaalikone는 언론사에서 만든 ‘내게 적합한 후보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유력 언론사들이 모두 자사의 ‘선거 기계’를 만드는 것 같았는데, 저는 Yle의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Yle는 한국으로 치면 KBS 같은 공영방송국입니다. vaalikone는 ‘전혀 아님’부터 ‘매우 동의’까지 4~5단계의 대답을 클릭할 수 있는 질문 세트로 되어 있습니다. 질문은 각 분야를 취재하는 기자들과 전문가들이 모여 만드는데, 주제는 해당 선거에 당선된 의원들이 결정하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지역의회는 유치원과 중고등학교의 설치와 운영을 결정하는데, ‘학교 급식에는 더 많은 채소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겁니다. 왜 이 질문이 나오게 되었는지 현재 핀란드의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함께 서술됩니다. 대략 6개 정도의 주제가 있고 주제별로 6-10개 정도의 질문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후보들이 먼저 자신의 답을 입력하고, 이후 공개된 프로그램은 유권자가 질문에 답할 때마다 자신의 답과 가장 가까운 답을 한 후보를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후보자는 방송국의 답변 요청을 거절해도 되지만, 그러면 유권자에게 노출될 기회를 잃게 되니 대부분 후보가 질문지에 답을 보냅니다. 저도 해봤는데요, vaalikone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던 후보를 제게 추천해줬고, 저는 기계에 설득당하지 않고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핀란드에서 어떤 것이 이슈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결론은 제가 찍은 후보는 당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비례투표였기에 내 표가 쓸모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핀란드 첫 투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에는 좀 더 잘 투표할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요.

후보들의 기호와 소속 정당이 정리된 표가 기표소 내부에 붙어있습니다. 기호를 외울 필요는 없어요.
(이미지출처: hpshyvinvointialue.fi/aluevaalit-2025)
투표용지에 펜으로 후보자 번호를 써서 각각의 우편봉투에 넣으면 사전 투표 끝!

첫 글이라 그런지 분량조절에 실패했습니다. 여기까지 다 읽으셨을지.. 허허. 다음에는 좀 더 잘 정리해서 써 볼 테니 계속 읽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아마도 쓸모없을 정보 하나, 핀란드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받는 기호는 2번부터 시작합니다. 1번은 없어요. 아마 손으로 직접 번호를 쓰는 거라 그런 걸까요?

15빈고게시판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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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깽

    햄 넘넘 반가워요!!!
    영주권이 없는데도 후보가 될 수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넘나 좋네요!! 미꾸라지 같은 위성정당 없는 것도 부럽고요 ㅎㅎ
    다음 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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