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sinki Pride 2025
6월 28일에 헬싱키에서 Helsinki Pride 2025가 있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아마도 가장 큰 인권 행사이자 축제일 겁니다. 그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도 프라이드가 열렸습니다. 이 행사는 헝가리 대통령이 성소수자 거리행진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참가자의 안전을 우려한 많은 사람이 함께 한 역대 최대 인파(18~20만 명 추산)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많이 모이면 잡아갈 수 없다는 진리!! 원래는 헬싱키 프라이드가 근처 나라들에서도 오는 가장 큰(?) 프라이드인데, 올해는 헝가리에 앞자리를 내줬습니다. 이번에 저는 헬싱키 프라이드에 다녀 왔습니다. TV 중계로만 보던 (공영 방송인 Yle에서는 생방송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온라인으로 중계해줍니다) 축제에 간다고 생각하니 살짝 두근두근했어요. 한국에서 열리는 퀴퍼랑 비교도 해보고 싶었고요. 짧은 감상을 말씀드리자면, “아주 좋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게와 관공서 건물마다 걸려있는 무지개 깃발, 행진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내는 연대의 미소, 소수의 사람이 들고 있는 혐오 문구를 쿨하게 지나갈 수 있는 여유, 베란다에서 무지개 깃발과 꽃을 흔들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행진 사이에 낀 아시아 단체 관광객들은 좀 어리둥절했을 거 같긴 하지만, 긴장감 없이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좌] “We can be everything” 프라이드 광고 (헬싱키 기차역) [우] 행진 막바지에 신난 햄과 체력이 바닥나는 중인 날맹](https://bingobank.org/wp-content/uploads/2025/07/1.jpg)


핀란드의 차별금지법
굳이 이번 글 제목에 ‘도시에서’라고 말을 붙인 이유는, 제가 도시에서의 경험만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탐페레는 핀란드에서 두세 번째에 해당하는 큰 도시입니다. 인구수가 늘어나는 속도는 아마 가장 빠른 도시이고요. 수도인 헬싱키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이민자가 사는 도시입니다. 영어만 사용해도 기본 생활에 무리가 없고, 대학교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탐페레 시민들이 진보적인 주제들을 받아들이는데 이 나라 국민의 평균보다는 좀 더 열려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에는 반차별법(Yhdenvertaisuuslaki)과 성평등법(Tasa-arvolaki)이 있습니다. 핀란드는 1995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는데요, 회원국들은 EU의 지침(Directive)에 따라 국내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반차별법(2015년)이 발효되었고, 1987년에 발효된 성평등법은 여러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차별법은 국적, 인종, 언어, 종교, 신념, 정치적 활동, 노동조합 활동, 가족관계, 건강, 장애, 성적지향 등 개인의 특성을 이유로 하는 직접/간접 차별, 괴롭힘, 합리적 조정거부, 차별 지시등을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금지하는 법입니다. 성평등법은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공공 및 민간 영역 모두에서 젠더와 성적지향과 관련한 차별에 대한 금지로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사회 수업 시간에 반차별법을, 노동교육 시간에 성평등법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필수 이수 과목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본 자료에서 새삼 좋다고 느낀 것은 법을 소개하는 홈페이지였습니다. 반차별법을 소개하면서 덧붙여 ‘무엇이 차별인가?’라는 항목이 있고, 그다음에 ’무엇이 차별이 아닌가? (Mikä ei ole syrjintää?)’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 항상 차별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과 함께 ’평등을 증진하고 의도적으로 차별을 예방할 목적으로 누군가를 긍정적으로 다르게 대우하는 경우‘는 차별이 아니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설명이 더 있고, Q&A 꼭지도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클릭해보세요~, Yhdenvertaisuuslaki)
이 나라에 와서 처음에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참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넷플릭스 드라마나 K-pop의 인기 덕분에(!)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다들 굉장히 좋게 봐줬거든요. 제가 메고 다니는 가방에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각종 배지가 꽂혀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지 중에 무엇 하나도 의미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어. 10년 전에 배를 타고 여행을 가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아직 진상규명이 다 끝나지 않았어. 밀양이라는 곳에서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이 있는데…’ 제 언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우호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도무지 한국을 좋게 소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의 친구가 충청도 어디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같은 반 사람에게는, 지레 찔리는 마음에 더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핀란드에서도 다양한 차별과 심각한 범죄들이 있습니다. 혐오범죄로 목숨을 잃은 성소수자들, 특정 민족(Romanit)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한 가게(관련기사, 그 가게는 결국 문을 닫았습니다), 여권을 뺏기고 열악한 상황에서 저임금으로 노동하다 구출되는 이주 노동자, 남초 직장에서 성희롱을 견디다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인터뷰, 육아 휴직 후 부당 대우를 받아 회사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하게 되면 제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어도 위축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차별과 배제가 은근하게 깔린 법들이 보수 정부에서 하나씩 통과될 때마다 이 나라가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하는 섭섭함(?)도 들고요.

정권이 바뀌면서 달라진 것들을 좀 소개하자면, 일단 시민권을 받기 어려워졌습니다. 시민권을 신청하려면 4년을 살면 되던 것이 올해부터 8년으로 바뀌었습니다 (EU 대부분의 나라가 4년 거주를 기준으로 합니다). 핀란드어 능력 시험은 원래 봐야 했지만, 여기에 추가로 사회와 역사 시험 등을 보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고급(?) 인력 중심으로 이민자를 받는다는 명분 아래, 노동 비자로 들어온 사람이 실직 후 3개월 이내에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비자가 취소되고, 그 기간 실업급여를 받으면 비자 갱신이 어려워졌습니다. 재정 부족을 이유로 지역의 공공병원들을 통폐합 하거나 특정 요일에만 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은 병원이 멀어져서 전보다 쉽게 이용할 수가 없고, 줄어든 병상 수로 입원이 필요한 경우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이번 헬싱키 프라이드에서 신나게 행진했지만, 2주 정도가 지난 지금 프라이드와 관련된 비판적 뉴스 기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행사 실무진과 자원봉사자를 부당하게 대우한 프라이드 대표, 행사 공지와 달리 지켜지지 않은 장애인 이동권과 배리어 프리 약속, 그리고 이어진 거짓 해명은 뉴스를 접하는 제게 실망감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더불어 그 날 행진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제가 가진 특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더 살아보고 싶은 마음
마냥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닌 이곳에, 그래도 저는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전히 합니다. 앞에서 핀란드의 문제점을 쓰긴 했지만, 직접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는 이런저런 걱정이 덜 든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저에게 외모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고, 저도 제 몸에 대한 강박이 줄었습니다. 여기서 성중립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한국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생긴다고 했을 때 마음 한쪽 구석에서 올라왔던 불편함이 ‘성중립’ 때문이 아니라 공공 화장실 불법촬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됐고요. 그리고 한국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더라도 훨씬 빈도가 적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핀란드의 연간 산재 사망자 수는 평균 20~30명입니다. 관련자료) 소소하게는 미세먼지가 없다는 것, 그리고 큰 이변이 없는 한 2027년에는 정권교체가 일어날 거라는 작은 기대도 있습니다(투표권이 없는 이의 간절한 소망!!).
이건 좀 웃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작년에 탐페레 시내를 걷는 중에 할머니 한 분이 제게 핀란드어로 길을 물어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전 주에 학교에서 길 찾기 대화 연습을 했던지라 더듬더듬 말하면서 알려드렸지요. 사실 아무리 실눈을 뜨고 봐도 제가 핀란드인(?)처럼 생기지는 않았잖아요. 그런데도 저에게 길을 물어봐 주셔서 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가게에 물건을 사러가면 점원이 일단은 핀란드어로 먼저 말을 하고, 영~ 못 알아듣는 것 같으면 영어로 말해줄 때 기분이 좋습니다. 반대로 직원이 영어로 말을 시작하면 별로더라고요. 모든 외국인이 영어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외부인으로 취급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너무나 친절한 나머지, 계산이 끝나고 ‘아리가토~’하고 인사해주는 직원에게는 직원이 민망할까 봐 일본인인 척하고 나온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관광객이 많이 옵니다.)
콕 집어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곳에서 내 자리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환대가 마냥 좋았던 시간을 지나니, 환대받는 존재에서 그냥 당연한 존재로 있고 싶은, 그래서 굳이 계속 내 자리를 돌아보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곳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외국인이지만, 그럼에도 제가 본인의 나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를 고르기 어려운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나은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조건들이 내가 잘나서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앞으로 저의 과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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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 너무너무너무 좋아요!
믿고 보는 햄 조합원의 핀란드 체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