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거주자 햄이 아는 만큼만 소개하는 핀란드 ⑦ 교육은 언제나 실습과 함께 (1)

빈고게시판

핀란드에 와서 들었던 교육에서 마지막 과정은 항상 실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근에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이수해야 하는 세 번의 실습 중 첫 실습을 마쳤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저의 실습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보겠습니다.

– 첫 직업실습: 이주민 통합과정에서 경험한 3주간의 실습

전문적인 일을 한다기보다는, 핀란드의 직장 문화를 접해보고, 이제까지 배운 핀란드어를 핀란드 사람에게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주민 통합과정에 포함된 실습의 목표였습니다. 물론 이후에 취업을 원하는 직군을 경험하는 것이 좋으니 최대한 각자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교육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바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더라도 직업학교 지원 시 그 분야에서의 실습 경험은 다른 지원자보다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어필하는 근거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토목과 운전 부분을 지원해서, 건설업에서 일할 때 필요한 직업안전카드도 받고, 포클레인 실습도 하고, 지게차 면허도 땄습니다.(학교에서 모든 비용 부담)

지게차를 운전해 보고 있는 햄

실습할 곳을 학교에서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구해야 하기 때문에 구하기 전까지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말도 잘 못하는, 게다가 짧은 3주라는 기간을 일하게 해주는 장소는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우리의 실습기간이 여름휴가 기간이라 휴가로 문을 닫는 개인 가게들이 많아 자리 찾기는 더 힘들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서만 100명, 다른 교육기관에서 이주민 통합과정을 듣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인구 25만 명의 탐페레에서 실습할 곳을 찾아야 하니 가는 곳마다 이미 자리가 다 찼다는 대답도 심심치 않게 들었습니다. 직원은 휴가를 가지만, 회사는 휴가가 없는 곳, 대형 마트, 프랜차이즈 카페, 큰 식당 등이 우리의 주요 구직 자리였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고, 관리자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아니면 전화로 면접을 보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원했던 건설 분야나 창고 물류 관련 업무는 당연히 구할 수 없었고, 말을 잘 못하는 저를 서비스 업종에서는 받아주지 않았지만, 운 좋게 집 근처 도서관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장님과의 면접 때 카트 가득 실려있는 책들을 알파벳 순서대로 분류해 보라는 요구에 긴장으로 손을 떨면서 책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긴장할 거라 예상하고 내준 과제는 아니었을 텐데(관장님 당황하심 ㅋ), 뭐 그랬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대출 신청된 책들을 책장에 꽂고, 다른 도서관에 보낼 책들을 정리하고, 반납된 책들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들은 꽤 재밌었습니다. 이런 것도 빌려주나 싶은 것(기타, 야구배트, 요가볼 등)도 빌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고요.

어린이들이 책을 읽고 반납하면 이 종이에 사서가 도장을 찍어줍니다. 9칸을 다 채우면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티커 세트를 한 장 통으로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일이 가위로 오리는 것도 직원들의 소소한 일거리 중에 하나였습니다.

도서관 운영시간이 길기 때문에 오전 근무하는 직원들은 7시에 출근하고, 오후 근무하는 직원들은 2시쯤 출근하는 터라 저는 어정쩡한 출퇴근이었지만, 할 일은 많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오전에 출근한 직원들의 커피 휴식시간이 9시라 저는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마시며 쉬었습니다. (핀란드에서 점심시간으로 주어지는 30분은 임금으로 계산하는 노동시간이 아니지만, 하루 2번 15분씩 가질 수 있는 커피 브레이크는 노동시간에 포함됩니다.) 저는 출근하자마자 일도 안 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 어찌나 민망하던지, 초반에는 15분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하다가 함께 커피를 마셨습니다. 한 삼일 그렇게 했을 때쯤, 제게 일을 가르쳐 주던 분이 일찍 올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도서관의 상황을 공유하고, 그날 할 일을 점검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것도 일하는 거라고요. 그렇구나… 그다음부터는 좀 더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커피에 두유도 팍팍 넣고 마셨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도서관에서 오래 일하다 최근에 그만둔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분은 도서관 도우미로 일을 했는데, 사서가 되기 위해서 일을 그만두고 대학을 가셨다고 했습니다. (핀란드에서 사서는 석사학위가 필요합니다.) 핀란드인에게 대학은 학비가 없고, 학생 수당도 나오니 경제적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그래도 딱 보기에 저랑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데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대학을 나와서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일하다 적성을 발견하면 대학 갈 결심을 할 수 있고, 실제로 갈 수 있다니 부러웠습니다.

-두 번째 직업실습: TUVA에서 경험한 12주의 실습

직업학교에 지원하고 싶지만 언어 수준이 살짝 모자란 사람은 언어 시험과 면접 후에 TUVA에서 공부할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TUVA는 9개월의 교육 기간 중 3개월은 직업실습이었습니다.

TUVA부터는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라 담당 선생님과의 면담도 더 꼼꼼하게 진행됩니다. (모든 대화는 문서 기록으로 남아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건설 중장비 직업 학교에 지원했다가 면접은커녕 서류 전형에서 떨어져서 자신감이 하락한 상태였습니다. 실습 장소를 어떻게 구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상담 중 선생님이 탐페레에 있는 이케아의 물류팀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물론 면접을 통해서 자리를 얻는 것은 제 몫이었지만 면접 기회를 얻은 게 어딘가 싶었습니다.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저는 자리를 얻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면접관들에게 죄송하게도, 정말 형편없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제가 좀 더 준비하고 면접에 갔다면, 그때 이케아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요.

아주 완곡하게 표현된 거절의 이메일을 받은 후, 학교 수업을 마치면 프린트한 이력서를 들고 탐페레 시내의 가게를 돌았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가게마다, 쇼핑물 지하부터 꼭대기 층까지 대부분의 가게를 방문했습니다. 가는 곳 마다 ‘valitettavasti(안타깝게도 라는 뜻)’로 시작하는 거절의 말을 듣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대략 20번의 valitettavasti를 듣고 기력이 거의 없었던 어느 날, 최최최최후의 방문지로 남겨 놓았던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문을 두드렸습니다. 탐페레에 korean이라 쓰여있는 가게들은 제법 있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은 여기 김밥집 하나입니다. 김밥과 비빔밥을 파는 곳인데, 가본 적은 없는 가게였습니다. (김밥과 비빔밥은 집에서 해먹어도 되니까요;;) 면접에서 외국살이의 어려움을 서로 토로하고 공감하다 (물론 한국말로!) 바로 채용이 됐습니다.

날맹이 지나가다 찍은 오픈 준비 중인 햄

사장님과 영어로 소통하는 스리랑카인과 핀란드인이 직원으로 있는 작은 식당에서 영어와 핀어 모두 어정쩡한 제가 실습생이 되었습니다. 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손님들이 거의 핀란드인이었거든요. 제가 주문을 받을 때 손님이 영어와 핀어 중 어떤 말로 주문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보였지만, 저는 영어로 물어봐도 핀란드어로 대답하는 패기(?)로 응대했습니다. 다양한 결제 수단(카드+카드, 현금+카드, 앱+카드, 쿠폰 등등)과 변칙 상황들(계란 프라이를 바싹하게 구워 달라, 떡볶이에 어묵을 빼달라, 김밥에 왜 와사비간장을 안 주나 등등)에 당황하는 날들도 많았습니다. 바빠서 허둥댈수록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는 잘 터지고, 김밥 옆구리는 더 잘 터진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제가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는 사람을 보는 것을 괴로워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개인 창업은 저와 맞지 않는다는 아주 중요한 자기 성찰도 하게 됐고요. (저는 사업소득보다 월급이 좋아요.)

사장님은 저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valitettavasti’ 저는 그때 간호 직업학교에 합격 소식을 들은 참이었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매일 맛있는 비빔밥과 김밥, 떡볶이를 점심으로 먹으면서 일한 3개월이었습니다.

– 공채가 드문 나라 핀란드에서 경력 쌓기

경력은 핀란드 취업에서 중요하게 고려됩니다(경력같은 신입!!). 게다가 좋은 일자리는 공채가 드물고, 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추천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 직원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추천했다는 점을 이력서의 스펙보다 신뢰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같은 학교를 나온 선배, 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또는 친척이 “여기서 같이 일해볼래?” 하고 제안해서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점이 있으니 이 방식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겠지만, 새 삶을 꾸려보려 이주한 이민자에게 이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취직을 해야 경력과 직장 동료가 생길 텐데,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취직을 할 수 있는 뫼비우스의 띠의 과정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직업실습(인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인의 경우 저처럼 학생 신분으로 실습을 통해 경력을 쌓을 수도 있지만, 학습노동계약(opisopimus)을 통해서도 경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구직자가 직접 회사에 연락해 자리를 따 낸 후 교육을 받을 학교에 지원하는 형태인데요, 회사에서 일하면서 학위에 필요한 부분을 공부하게 됩니다. 일주일이나 한 달에 몇 번씩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나머지 기간은 회사에서 실무를 합니다. 이 경우는 회사에서 기본임금의 60~70%를 받으면서 일을 하게 되고, 임금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습니다. 100%의 임금은 아니지만 계약이 끝나고 나서 바로 이어서 채용될 가능성이 높고,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보다는 많은 돈을 받기 때문에 인기가 많습니다. 문제는 요즘 경기가 나빠서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직업실습이 아니라도, 정규직이 휴가 가는 5-7월에 여름 일자리(kesätyö)라는 형태로 일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일자리는 보통 공개 채용을 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1-2월에 지원을 받습니다. 방학 중 대학생이 모자란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구직자도 이때 일한 경력과 인맥으로 다음 일을 구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 일할 수 있으면 당연히 일합니다.

앞서 말한 실습기간 동안 저는 도서관에서 주 30시간, 식당에서 주 40시간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없었습니다. 직업실습은 노동이 아니라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나라에서 실업 수당으로 하루 37유로 정도를 받았습니다. 임금이 낮은 편인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초보자의 시급이 9유로이고, 보통 시급 10~13유로 정도로 일을 시작합니다. 주 35시간을 일했다고 하면 거의 2배의 돈을 받을 수 있으니 대부분은 일할 수 있으면 일을 합니다. 친구 중에는 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에 파트타임 일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나라에서 받는 돈은 줄어들게 되는데 그래도 총 소득은 늘어나는 것이라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죠. (한 달에 13일 이하로 일하면 실업 상태로 간주됩니다.)

특히 자녀와 함께 이주한 이민자 가족의 경우 일자리는 아주 중요합니다. 배우자 중 한 명이 대학(원)이나 직업전문대학에 입학해서 비자를 받아 함께 이주한 경우, 배우자가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비자를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구직을 고려해 졸업 후 2년 비자 연장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 기간이 1년으로 줄었습니다. 또한 취직을 해서 비자를 받아 핀란드에 와도 해고될 경우 3개월 안에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비자가 취소됩니다. 하지만 겨우 1-2년 살아보려고 온 가족과 함께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래서 모두 월 최소 2주 이상의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씁니다. 나머지 배우자도 마찬가지로 배우자의 졸업 전에 취직할 곳을 찾습니다. TUVA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 한 명은, 부인이 직업전문대학 졸업 후 레스토랑에 직장을 구했지만 6개월쯤 후에 가게의 사정으로 일하는 곳이 바뀌면서 임금 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노동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담당 공무원은 모자라는 시간에 대해 실업 수당을 신청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다음 비자 심사 때 불리한 조건이 될 거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버스 운전 직업학교에서 공부해 직업을 찾을 계획이었던 친구는 계획을 미루고, TUVA 졸업 후 같은 나라에서 온 지인의 지인이 소개해 준 LED 간판을 만드는 회사의 6개월 단기 일자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외국 배경의 사람들이 취업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다

2025년 11월 EU국가별 실업률, 출처: https://yle.fi/a/74-20203184

25년 11월 EU 국가별 실업률 자료에서 핀란드가 10.6%의 수치를 기록했습니다(EU평균은 6%). 이후 12월 실업률은 더 높아졌다는 기사도 나왔고요. 모두가 놀란 가운데, 그리 걱정할 만한 건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그 근거로 핀란드 배경 사람들의 실업률은 7% 정도인데, 외국 배경 사람들의 실업률이 20%에 육박해서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왜 덜 걱정할 일인지? 나는 더 걱정되는데! (작년 통계청 보고서(출처 링크)에서도 외국 배경의 사람들이 취업에서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황기를 누리고 있는 나라가 요새 있나 싶기는 하지만, 어쨌든 저는 실업률이 높은 이 나라에서 직업을 구해보려 공부 중입니다. 다행히 앞가림을 잘하는 배우자와 살고 있는 덕에 저만 잘하면 되는, 핑계 댈 구석이 별로 없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고요.

다음 글에서는 제가 최근에 마무리한 직업실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과는 다를 것 같은 실습생의 처우도 설명할까 합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만나요~

수업 중 침대에 눕고 싶어서 자원한 환자역할. 사진찍는다는 말에 굳어버린 친구와 웃음 참기에 실패한 햄

이전 글
⑥ 핀란드 교육 (2)
⑤ 핀란드 교육 (1)
④ 사회 시스템은 다정할 수 있을까요?
③ 전쟁 중인 나라에서 온 사람들
② 핀란드의 도시에서 약자/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
① 핀란드의 선거 그리고 투표 경험

2빈고게시판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

The maximum upload file size: 80 MB. You can upload: image, audio, video, document, spreadsheet, interactive, text, archive, other. Links to YouTube, Facebook, Twitter and other services inserted in the comment text will be automatically embedded. Drop files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