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사람을 살리는 집을 달라
"저렴하고 열악한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단순히 그 환경의 어려움을 견디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주거권의 요구> 이재임. 907기후정의 주거권행진단 사전모임, 2024.9.6.
그런 집이 있었다.
4년 전 겨울, 한파경보가 내린 경기도 포천.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피를 토한 채 침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자주 끊겼던 전기와 난방은 그날도 들어오지 않았다. 침실에서 캄보디아행 비행기표가 나왔다. 티켓 주인 누온 속헹(Nuon Sokkheng, 31세)은 3주 뒤면 고향에 다녀올 참이었다. 그 집은 농장에서 내준 비닐하우스 숙소였다.
6년 전 겨울, 서울 종로. 화마가 세입자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중 3명은 일용직 노동자, 4명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30Ⅹ호에서 틀었던 전기난로가 화근이라고 했다. 그 집은 도심 한복판에 있던 고시원이었다.
그런 집도 있다.
쪽방. 고작 한두 평의 좁은 방들이 벌집처럼 붙어 있는 집. 보통 보증금 없이도 월세를 내고 일세로도 살 수 있는 집. 재래식 화변기에 수도꼭지가 딸린 공동화장실이 있는 집. 일고여덟 명이 좁은 화장실 한 칸에서 알아서 씻고 볼일도 보는 집. 열에 일곱은 공동취사장이 없고, 열에 여덟은 세면장도 없는 집. 그런 집에도 사람은 산다.
그런 동네가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자동. 남산 아래 서울역 앞 빌딩 숲에 가려진 조그마한 동네. 전국에서 가장 큰 쪽방촌이 거기 있다. 흔히 '동자동 쪽방촌'이라 부른다.
그들은 우리를 모른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지난 9월과 10월, 세 번에 걸쳐 차재설 님을 만났다. 그가 들려준 삶의 이력은 이러했다.
1958년생 개띠(만 66세). 인천 부평, 가난한 집에 6남매 중 막내아들로 출생. 중학교 때 맹장에 찬 고름을 빼다가 다친 허리. 등록금이 없어서 가지 못한 고등학교. 70년대 석유파동 때 망해서 접은 구멍가게. 물품 상하차, 음료 포장, 공장일 따위를 했지만, 허리 탓에 매번 3년을 못 넘긴 직장생활. 노가다, 포장마차 뒤 봐주기(영업 보조), 굿당 관리를 전전하다 접어든 노숙 생활. 자활 일자리 참여. 동자동 쪽방 거주…
그는 정부로부터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기초생활 수급비를 받는다. '주거급여' 30만 원은 그대로 쪽방 월세로 나간다. '생계급여' 약 71만 원이 한 달 생활비다. 빠듯한 살림은 정부와 서울시의 여러 복지제도와 지원 정책이 거들고 있다. 아래는 노숙을 거쳐 쪽방에 이른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수녀님이나 목사님들은 우리를 너무 모른다. 옷을 나눠줘도 다 색깔이 같은 걸로 주거나 멋이 별로 없다. 그런 옷도 말끔한 노숙자는 노숙자가 아니라고 안 준다. 그래서 노숙자들은 일부러 더러워진다. 먹을 걸 나눠줘도 간도 안 맞고 유통기한이 거의 다 된 걸 줄 때도 있다. 길거리에 사는데 그런 걸 받으면 그냥 버린다. 금방 상하고 맛도 없으니까.
공무원들도 우리를 너무 모른다. 서울시에서 에어컨을 쪽방 복도에 설치해줬다. 용량이 작아서 가까이 있는 방만 냉기가 간다. 몇 년 전 여름에는 목욕차가 와서 쪽방 사람들을 씻겨줬다. 차에 들어가면 봉사자들이 씻겨주는데 한 20~30분 만에 나온다. 차는 한 대밖에 없는데 할 사람은 많으니까 줄을 선다. 나는 탕에도 들어가고 오래 씻고 싶은데…….
작년부터 하루 한 끼 식권을 받았다. '동행식당'이라고 서울시가 정해준 식당에 가서 한 끼 딱 8천 원에 맞춰서 사 먹어야 한다. 그날 안 쓰면 그냥 없어진다. 아껴뒀다가 더 비싼 걸 사 먹을 수도 없다. '문화누리카드'라고 1년에 한 13만 원을 넣어주는 카드가 있다. 그 카드를 갖고 가면 극장이나 야구장 같은 데에서 쓸 수 있단다. 내가 그런 데를 잘 가는 사람도 아니고 잘 안 쓰게 된다. 쓸데없이 그런 카드 같은 거 만들지 말고 그냥 알아서 쓰게 현금으로 주면 좋겠다.
예전에는 자활 사업으로 일했는데 이제는 일을 안 한다. 자활 일자리는 돈도 너무 적게 주고 계속해서 할 수 없다(자활근로사업. 2024년 현재 최대 5년 참여 가능, 월 급여 약 72만 원 ~ 150만 원). 일을 해서 돈을 벌면 수급비가 깎인다. 목돈을 모아서 전세보증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설령 목돈을 모아서 재산이 너무 많아지면 수급이 끊길 수도 있다. 그럴 바에 일을 안 하고 저금도 안 하게 된다. |
대본 없이 10분 동안 발언했던 그날
차 이사는 주민 자치 조직인 동자동사랑방(이하 사랑방)과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이하 협동회)에서 활동한다. 협동회는 제도권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조합원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대출해준다. 마을에서 다양한 공동체 활동도 펼친다. 그는 협동회를 창립한 이듬해(2012년)에 조합원이 되었다고 했다. 3년 전부터 협동회에서 교육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한 3년 전에 동대문에서 노동자들이 하는 집회에 갔어요. 사랑방에서 발언해야 하는 사람이 발언을 못 하게 돼서 땜빵으로 제가 대신 했어요. 누가 써준 거 보고 하라고 해서 하는데, 바람이 불어서 그 종이가 날라갔어요. 그거 없이 그냥 한 10분 정도 얘기했던 것 같아요. 원래 3분 정도만 하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다음부터 나보고 계속 이런 거 할 때마다 앞에 나가서 얘기하라고 하고, 또 취재하러 오면 인터뷰도 하라고 하고 … 그러다가 교육홍보이사를 맡게 된 거죠."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불어버린 비빔라면과 얼어버린 김밥
3시간만 지나면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늙고 아픈 쪽방 주민들이 겨울마다 당하는 낙상 사고… 차 이사는 쪽방에서 여름과 겨울을 날 때 힘든 점을 남들 이야기처럼 말했다. 아주 가끔은 그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귀가 솔깃해졌다.
"내가 비빔라면을 좋아해요. 국수를 삶아갖고 찬물에 씻으려고 갔는데 화장실에 누가 있으면 어떡해요? 다 불죠. … 을지로 지하도에서 노숙할 때, 절간에서 김밥을 해왔길래 한꺼번에 서너 개 받았어요. 근데 겨울이니까 몇 시간 지나면 딱딱하게 얼어버려서 다 버렸어요."
그는 여름과 겨울을 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그는 여러 쪽방촌 공동체에 적을 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유대 관계도 좋았다. 수요일과 일요일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평일 점심은 사랑방 밥상공동체 '식도락'에서 도시락을 싸게 사서 먹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하면 협동회에서 대출하면 된다. 낮에는 사랑방이나 협동회 사무실에 나가서 활동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지인 집에서 밥을 함께 해서 먹었단다. 마스크 쓰는 일 말고는 힘든 점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동자동 주민들은 쪽방에서 보통 어떻게 지낼까? 차 이사와 달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거나 관계망이 좁다면? 더군다나 거동이 불편해서 쪽방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잘 안다
그런 집이었다.
동자동 쪽방. 지은 지 30년에서 90년도 넘은 "꼬진 집". 자주 물이 새고 하수구가 막혔다. 여름에는 '사우나'가 되는 방 때문에 방문을 열어 놓았다. 보일러가 동파되면 복도와 계단을 얼음이 뒤덮었다. 공과금을 따로 내면 수급비 절반을 월세와 공과금에 써야 했다. 심야전기를 쓰는 집들은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난방을 틀었다. 온수가 안 나오는 쪽방에 살면 커피포트로 물을 데워서 씻거나 설거지했다. 온수가 나와도 사용 시간을 정해 놓은 쪽방도 있었다. 쪽방에 도시가스도 가스레인지도 없으면 방에서 가스버너로 조리했다.
대부분 공과금을 월세에 포함해서 받았다. 어떤 달은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공과금을 따로 더 걷었다. 겨울에는 난방기구와 전기장판을 못 쓰게 했다. 세입자들은 공과금 폭탄을 피하려고 알아서 아껴 쓰고 서로 감시했다. 샤워나 빨래는 되도록 빨리 끝냈다. 화장실도 자주 안 갔다. 변기 레버가 망가져도 관리인한테 수리해 달라고 못 했다. 알아서 해결하고 알아서 고쳤다.
1평에 30만 원 안팎의 월세. 5개~150개의 방을 가진 집주인들. 어떤 집주인은 공과금을 내고도 월 수익이 세전 4500만 원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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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주거급여가 34만 원까지 올랐는데 집주인이 방세를 34만 원까지 올린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계약서를 고치는 거예요. 방 계약서를 동주민센터에 갖다줘야 주거급여가 나오니까. 쪽방은 거진 다 임대업 등록도 안 했고 사실 불법이죠. 우리가 수급자증명서 떼주면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다 할인받지. 집주인은 앉아서 코 푸는 거야. 그러니까 정부에서도 이 방을 1년에 한 번씩은 와서 점검을 해줘야지. 이 방세가 합당한지. 그리고 제대로 안 하면 세금을 물리든가 해야 되는데... 진짜 저런 방은 10만 원짜리 방도 안 돼요. 우리가 없이 사니까 마지못해 사는 거지." (차재설)
쪽방 집주인들은 세입자들 처지를 너무 잘 안다. 그들은 쪽방이 보증금 없이 조금 더 싼 월세를 내려는 이들에게 최선의 집이라는 사실을 안다. 빈방이 생기면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채워준다. 사실 시설에 비해 월세가 싼 편은 아니다. 30만 원에 육박하는 평당 임대료는 강남 고급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그럼에도 세입자들이 수리해달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딴 데 가라며 구박한다. 어느 쪽방이나 다 고만고만하니까. 소수지만 어떤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쪽방 환경을 개선하기도 한다. 집주인들은 거의 다 쪽방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다. 동자동에 공공개발 발표가 나고부터는 어차피 새로 짓는다며 더 그랬다.
그런 집은 있으면 안 되나.
"내 무덤 위에 공공임대를 지어라" "제2의 용산참사 피바람 각오하라"
살벌한 현수막들이 쪽방촌 건물을 뒤덮었다. 공공개발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빨간 깃발도 내걸었다. 2021년 2월 5일, 정부가 발표한 동자동 공공주택사업 계획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부 동자동 쪽방 소유주들이 민간개발로 전환하라며 들고 일어났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드세게 집단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 눈치를 보느라 정부는 3년이 지난 지금도 '공공주택지구 지정(지구지정)'조차 못하고 있다.
민간개발을 하면 임대주택 호수는 원래 계획보다 8배나 줄어든다(1250호→156호). 대신 분양주택 호수가 늘어나므로 소유주들의 이익은 10배 넘게 껑충 뛴다(세대당 1억 4198만 원→ 최대 13억 7826만 원). 현재 쪽방 세입자는 모두 1천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럼 쪽방 세입자 십중팔구가 동자동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없다. 900명에 가까운 세입자들이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나는 셈이다.
모두를 위한 집
"수급자나 노숙인들한테 야단만 칠 게 아니라 임대주택 지어서 방 하나씩 주고 작은 일자리라도 줘서 함께 가는 나라가 돼야 되는데. 진짜 우리가 8평만 돼도 그 안에 세탁기 넣고도 한 서너 평 공간에서 쉴 수 있고… 우리도 일해서 돈 벌면 수급 안 받아도 사는데. 우리도 돈 모아서 해외여행도 가고 그럴 수 있잖아요." (차재설)
그런 집이 많단다.
'사회주택(social housing)'은 보통 공공·민간·비영리조직이 공급하고 관리하는 공공주택을 일컫는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의 35%이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40%를 웃돈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사회주택 비율이 전국 평균 25%보다 높은 43%이다. 한국은 총 주택수 대비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이 5.5%에 불과하다(2020년 현재 120만 호). 이런 재고율로는 주거 빈곤층과 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주택시장 불안을 가라앉힐 수도 없다. 싼 공공주택이 많아질수록 부동산 시세를 떨어트리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홈리스(homeless)를 불쌍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보는 욕망은 그냥 동전의 양면인 욕망 같아요.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그런 욕망… 공공임대주택이 마치 최극단의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집이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지는 게 우리한테 좋은 일일까 이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왜 공공임대주택이 평범한 우리들의 대안으로 말해지지 않을까. 왜 나의 선택지는 청약 부어서 신축 건물이나 아파트 사는 게 되어 버릴까." (빈곤사회연대 이재임, 2024.9.27. 인터뷰)
기후가 아니라 ( ) 을 바꾸자
지난 9월 7일, 서울 강남 일대에서 '907기후정의행진'이 펼쳐졌다. 시민 3만여 명이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행진했다. '907 기후정의 주거권 행진단'도 행진에 가담했다. '기후가 아니라 집을 바꾸자'는 슬로건 아래 쪽방 주민, 세입자, 청년·청소년 주거권 단체, 반빈곤 단체들이 행진단을 꾸렸다. 이날 차재설 이사는 동자동사랑방 회원들과 함께 강남대로에 나섰다. 빈곤사회연대 이재임 활동가는 거리와 차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부수고 짓기를 반복하는 토건 개발은 엄청난 탄소를 내뿜고, 집 부자의 배만 불려 지구와 인간 모두에게 해롭다. 집으로 돈 버는 사회 체제에 균열을 내 모든 존재가 안전하게 살아갈 세계를 만들자. 기후가 아니라 집을 바꾸자!"
- <기후정의를 위한 반빈곤·주거권 선언> 907 기후정의 주거권 행진단 -
여름에 불지 않은 비빔라면을 먹고, 겨울에 얼지 않은 김밥을 먹을 욕망. 그런 욕망을 존중한다면 적당한 집에서 적당한 생활비를 쓰는 욕망은 당연히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세입자가 아프든 죽어가든 쫓겨나든 외면하고 임대료로 폭리를 취하며 재개발 이익마저 극대화하려는 욕망. 30년도 안 된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짓고 엄청난 탄소를 배출하며 시세차익을 노리는 욕망. 집을 에너지효율이 높고 오래가도록 짓고, 고치고 빌려서 살려는 욕망. 어떤 욕망은 그럴 만하고 어떤 욕망은 그렇지 않은가.
다가오는 12월 20일 저녁 7시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2024 홈리스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에서 살다 간 홈리스 462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이다(쪽방, 고시원 등 거주 홈리스·무연고 사망자, 홈리스 시설 이용자 포함). 한국 전체 연령별 사망률보다 노숙인의 사망률이 4배 높다는 통계가 있다. 쪽방을 통해서도 누군가는 이윤을 얻고 누군가는 서서히 죽어갔다. 기후재난이라는 유령은 집답지 않은 집에 사는 이들의 문부터 먼저 두드렸다.
아마 내년 동짓날 즈음에도 '홈리스 추모제'가 서울역 광장에서 펼쳐지리라. 내년에는 몇 분의 넋을 기리게 될까. 그 숫자가 많이 늘지 않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기후인가 세상인가 집인가, 아니면 욕망인가.
그를 기리며
그런 사람이 있었다.
지난 12월 2일, 한 지적장애인이 결핵에 이어진 폐렴으로 별세했다. 그는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에 살다가 4년 전 쪽방에서 나왔고 재작년에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유행하며 학교에 못 가는 날이 많아졌다. 무료한 시간은 점점 술로 채워졌다. 말수와 웃음도 점차 사라졌고 잘 먹지도 않았다. 재작년부터 다시 야학에 나갔지만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노들야학이 2015년부터 처음 시작한 낮수업에도 참여했다. 나는 그 낮수업을 맡았던 강사였다.
감히 이 글을 '故 정지민 형님(향년 56세)' 영전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