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은행 빈고 선언문
우리는 돈이 있을 때도 은행으로 가고, 없을 때도 은행으로 간다. 돈이 남는 사람은 은행에 예금을 하고 이자를 받을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은행으로부터 필요한 돈을 대출받을 수도 있다. 은행은 자금의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해서, 양쪽 모두를 만족 시키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서비스다. 은행은 어떤 위기에도 지켜져야 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의 흔들림 없는 기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는 정반대가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짜여진 은행 시스템 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종속되어 있다. 우리는 은행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은행 시스템 내부의 닫힌 화폐 흐름이 잠시 우리의 계좌를 거쳐 갈 뿐이다. 우리가 남는 돈을 적절히 보관하고 활용할 다른 방법이 있는가? 우리가 필요한 돈을 빌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우리의 돈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디에 투자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누가 우리의 이자율과 투자처와 신용등급과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가? 우리는 도대체 언제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것을 동의했단 말인가? 다른 대안은 정말 불가능한 건가?
은행이 안정적이라고? 그건 일차적으로는 국가가 안정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가 그럴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국민 즉 우리로부터 세금을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수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수익성이 높다고?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은행이 수익성 높은 거대자본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대자본의 수익성이 높은 것은 거대자본이 노동자와 소비자 즉 우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은행이 안정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벌고 있다면, 결국 그것은 모두의 주머니를 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은행시스템은 우리의 욕망과 삶의 양식마저도 바꾸어 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느새 저들의 욕망과 저들의 규칙을 따르게 되었다. 무심코 은행에서 권유한 펀드 상품에 가입하면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돈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갖고 저절로 불어나길 바라게 되었다. 돈이 어떻게 쓰이고, 누구를 위해 쓰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나에게 돌아오는 이자 또는 투자 수익률뿐이다. 은행의 낮은 이율을 합리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그 돈을 빌려 부동산을 매입하고, 투자를 하고, 사업을 벌이면서 레버리지라는 이름의 더 높은 수익률을 얻고자 한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수탈당하고 착취당하는 노동자와 소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예금자, 채권자, 투자자, 채무자, 자산가, 사업가가 되어 간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잃어버리고 그들 중의 하나로, 은행시스템의 지지자 또는 공범자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변해버린 우리의 욕망과 신체는 어떠한 다른 삶도 상상하거나 감행할 수 없게 돼버렸다. 우리는 신용협동조합과 대안 금융운동의 소중한 역사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시도가 초기의 훌륭한 문제의식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기존의 은행과 닮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도 직시하고 있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만, 돈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율배반에 빠지고 만 것이다. 기존의 은행과 똑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 더 높은 이율과 수익을 바라는 자산가, 더 낮은 이율과 높은 레버리지를 바라는 대출자, 안정성과 수익성과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은행가, 이들이 만들어내는 은행에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을까?
돈이 우리의 삶의 모든 곳에 개입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게 되면 될수록 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노동자로서 정당하게 수입을 얻고, 소비자로서 올바르게 지출을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현대 금융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개인의 수입과 지출 외에 자산과 부채가 갖는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한 사람의 부는 노동시장에 나가기도 전에 자산과 부채의 차이로 대부분이 결정된다. 집을 사는 것은 더는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산을 상속받는 문제, 대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레버리지를 노리는 투자와 자산운용 전략의 문제다. 우리는 오늘 하루 소비를 위해 노동하는 것만큼이나, 과거의 부채 때문에 노동하고, 미래의 자산을 위해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로서 단결하고, 소비자로서 연합하는 만큼, 금융의 영역에서도 단결하고 연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한 경험과 이론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노동자는 어떻게 저축해야 하나? 실업자는 어떻게 생활해야 하나? 소비자는 금융상품을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자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소비자는 어떻게 집을 구해야 하는가? 우리는 노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우리는 어떻게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는 다르게 돈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노동자와 소비자로서 그들과 투쟁해서 돈에 여유가 생겼을 때, 우리가 그들과 같은 부자가 되고 말 것인가?
우리는 가난하다. 하지만 거대자본에 맞서 미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받는 노동 수입과 원하지도 않는 거짓 욕망을 전방위적으로 강요당하는 우리의 소비 환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겨우 저축한 돈을 투자로 날리고, 보험에 쏟아붓고, 대출이자로 빼앗기는 우리가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조건에 대해 분노하고 투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가난하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공동체와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빚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빼앗기는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몰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도 먼저 협력하고 먼저 내어주는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익을 바라지 않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 받을 기대 없이 주고, 주는 티 내지 않고 주고,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나눠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찌 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함께 가난하기로 한다. 가난한 우리들이 모여서 함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이런 우리가 갈가리 찢어져 홀로 하나둘 그들이 되어가지 않고, 언제까지나 우리로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은행은 어떠한 은행일 수 있을까? 반대로 이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은행은 어떤 은행이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그들의 은행이 아닌 우리의 은행을, 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을 만들 것인가?
만약 그런 은행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에 반하는 반자본은행, 서로 돕고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들의 공동체(共動體), 꼬뮨을 만들어내는 꼬뮨은행(Commune Bank), 은행(銀行)이 아닌 은행(恩行), 가난해서 행복한 빈민들의 금고(貧庫), 모든 것을 나눠주고, 모든 것을 받아 안을 수 있는 비어 있는 금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공동체은행 빈고는 그런 은행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빈고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공동체은행 빈고의 조합원으로서 출자자=이용자=연대자=운영자로서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
출자자 : 우리는 돈이 돈을 벌고,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금융자본의 질서에 반대하며 자본을 위한 저축을 거부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돈이 은행과 투자를 통해 금융자본이 되어 행하는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이 지배하는 은행에 종속된 예금자나 투자자가 아니라 빈고의 출자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노동과 투쟁을 통해 얻은 수입과 현명하고 소박한 지출 계획을 바탕으로, 출자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이용자 : 우리는 빈고의 공유자본을 요긴하게 이용해서 공동체 공간과 공유지를 만들고 가꾸면서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를 통해서 더 많은 공유지와 더 많은 공동체 구성원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 사람이 모은 공유자본을 이용하고 공동체를 꾸리는 일은 수많은 노력과 다짐,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하면서 점점 더 잘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채무자나 사업가가 아니라 빈고의 공유자본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이용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공유자본의 힘으로 줄어든 월세, 절약한 이자 등의 이용수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해 공유한다.
연대자 : 우리가 출자를 통해 자본을 공유자본으로 만들고, 공유자본을 잘 이용한다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잉여금이 발생한다. 우리가 빼앗겼던 돈을 다시 빼앗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우리는 만인이 빼앗기는 질서에 반대하며, 우리 외부에 여전히 빼앗기는 세상 만인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이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어느새 빼앗는 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빼앗기던 돈을 다시 빼앗아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원래의 주인인 세상 만인과 모든 생명과 공유할 것이다. 우리는 외부의 또 다른 우리와 연대하는 사람이자, 연대의 상대자이기도 한 연대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만인을 수탈하는 자본의 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함께하며 서로 닮아갈 것이다.
운영자 :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즐겁게 함께할 것이다. 돈의 다른 흐름, 사람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더욱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적절한 활동비가 적절히 분배되는 것은 빈고의 비용이 아니라 노동이 재밌는 일이 되기를 바라는 목적 중에 하나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은행을, 다른 질서를 만들어 내는 운영활동가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고된 일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 협력하고, 재밌는 일을 개발하기 위해 궁리하고, 노동시간을 줄여 나감으로써 일하는 우리의 삶이 재밌어 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공동체은행 빈고의 출자자=이용자=연대자=운영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우리의 구호는 다음의 두 문장으로 정리된다.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
기쁘게 연대하고, 재밌게 운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삶을 닮은 세상이 될 것이다.
조합원들의 노동의 결과가 소비되거나 수탈되지 않고 모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돈이 그들만을 위해 쓰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빼앗기던 월세와 이자와 수익금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누구도 집을 소유하지 않지만, 모두가 집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아무도 가지려 하지 않지만, 그래서 모두가 가지게 될 것이다.
한사코 사양하지만 더욱 풍요롭고 요긴하게 돌아올 것이다.
풍요로운 부는 내부에 머물지 않고 외부의 연대자에게 넘쳐흐를 것이다.
우리 외부의 연대자는 곧 우리가 될 것이다.
공유지는 넓어지고,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다시 공유지가 넓어질 것이다.
모두가 가난하지만 누구도 빼앗기지 않고, 아무도 쫓겨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연금과 보험을 하지 않아도,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자본수익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자본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이 위기를 겪어도 아무도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본에 의지하지 않는 생산과 소비를 만들어갈 것이다.
돈은 무소불위의 신이 아닌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혀 다른 돈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미래를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지금 여기서 살아간다.
우리는 미래에 함께하기 위해 지금 이미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곧 또 한 명의 우리가 될 것이다.
당신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다.
당신, 또 다른 우리여. 함께 가자!
은행에서 빈고로! 자본에서 꼬뮨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오직 자본에 대한 도착이라는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이다.
만국의 빈민들이여 단결하라
2016.03.05
공동체은행 빈고 6차 총회
조합원 일동
우주생활협동조합 빈고(빈마을금고) 취지문
집은 곧 돈이다. 집을 사러 돈을 벌고, 돈을 벌러 집을 산다. 재산, 소득, 지출, 저축, 대출, 투자, 상속 등 돈과 관련된 생활의 중심에는 집이 있다. 보증금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사는 쪽방과 고시원에서 시작해서, 어떻게든 보증금을 마련한 월세방에서 저축을 통해 보증금을 늘려가다가, 전세집을 구해서 결국 월세에서 해방되고, 저축과 투자를 늘이고 대출을 더해 마침내 내 집 마련, 여기서 더 나아가 부동산 투자를 더 가속화해서 늘어난 자본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 이 과정을 차례 차례 밟아 나가는 것이 우리 삶의 표준 경로이고, 발전 단계이며 어느 단계까지 왔는가가 그 사람이 속한 현실 계급이다. 우리의 삶은 돈을 벌고 집을 사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집은 닫혀있다. 집은 개인의 소유물 중 가장 큰 것이며, 그 내부에 나머지 소유물의 대부분이 들어있다. 그래서 집은 자신만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며, 집 문은 굳게 닫혀있어야만 한다.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혈연과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뿐이다. 자신의 소유물, 자신의 집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가족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인데, 현실에서 가족은 흩어지고 사랑은 흔들린다. 모두가 홀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그러나 사람이 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가 오직 돈을 매개해서만 관계하고 있다는 것, 돈이 우리의 관계를 절단하고 억압하고 왜곡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다른 관계를 모두 잃어버렸고 새로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은 답답하고 길이 없어 보이지만, 거꾸로 보면 진실이 보인다. 모두가 집으로 돈을 벌고자 하기 때문에 집을 위해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 모두가 돈을 집에 투자하기 때문에 집값은 올라가고 집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모두가 자기 집의 물건을 함께 쓰지 않기 때문에 제각각 집에 물건들을 쌓아놓지 않으면 안된다. 서로가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소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구에게도 집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도 함께 살 수 없다. 가족 간에라도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은 소멸된다. 자기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나누지 않기 때문에 사랑도 없다. 모두가 집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이웃이 없고 친구도 없다. 각자가 집 문을 굳게 걸어 잠그기 때문에 물건이 필요해서 문을 여는 자는 도둑이 되고 도둑만이 문을 연다.
......
빈집은 만인에게 열려 있는 집, 만인과 공유하는 집입니다. 빈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고, 가난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입니다. 빈집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과 재능을 만인과 공유하며, 그로 인해 모두가 즐겁고 풍요롭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빈집의 분담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수 있는 이유는 첫번째 우리가 모여서 같이 살기 때문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두번째 이유는 누군가는 자신이 모은 돈과 그 돈에서 비롯된 수입을 타인과 함께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돈 가진 것이 자랑이 아니고,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돈에서 비롯된 수입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공유의 실천이 빈집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이 독특하고 기발하고 정의롭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살림살이의 방법을 자랑해도 좋을 것입니다. 집 문턱을 넘어서 마을로, 세상으로 넓혀가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자신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삶을 희생하고 노동을 착취당하면서 모으지 않으면 안 되었던 돈, 원하지도 않는 불필요한 소비로 하염없이 빼앗기고 말았던 돈, 부동산 주식 펀드 등 위험하고 비윤리적이며 대부분은 손해로 귀결되는 투자에 사용되던 돈, 불안하고 위험한 미래를 홀로 외롭게 감당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돈, 은행을 통해서 환경과 생명과 노동을 파괴하는 돈의 순환에 말려들어가던 우리의 돈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진정 우리를 위해서 이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노동이 만들어 낸 돈의 가치를 존중하지만, 그 돈이 다시 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으로 보이는 것의 실상은 돈이 만인을 억누르고 만인이 생산한 것을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이 돈을 벌어 오는 것에 현혹되는 것은, 그 돈이 사실 우리가 빼앗겼던 수많은 것의 단지 일부만을 돌려주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돈이 만들어 낸 돈을 그 원래의 주인들인 세상 만인과 공유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의 가치는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공유할 때 더욱 빛을 발하며, 미래를 살아갈 모든 사람들도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돈은 우리를 옥죄고 억누르는 지금의 위치에서 내려와, 원래의 위치 즉 우리의 삶을 위한 단순하고 유용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올바르게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적게 쓰고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오히려 돈을 적게 써야만 행복하고도 올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게 벌어도 충분하고, 적게 일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갉아먹고, 세상을 망치는 일들을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일, 온 세상이 기뻐하기 때문에 우리도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기발한 놀이이자 창조적 예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과와 작품을 그 자체로 만인과 함께 즐길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돈도 함께 만들어 진다면, 조금씩 꾸준히 모아서 그 돈을 마을 사람들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사람들과 모든 생명들과 공유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빈집은 비어있는 집, 언제나 비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더라도 그 다음 사람을 위한 빈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빈집을 유지한다는 것은 빈집을 확장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게 빈집은 계속 늘어나야 합니다. 빈집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세상 모든 생명들을 다 받아 안은 후에야, 빈집이 온 세상이 되고서야 확장을 멈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빈마을금고는 사람들의 힘을 모으고 나누고 주고 받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