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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자료] 박승옥, <왜 협동조합 운동인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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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 : 2012-12-08 18:35
  • 조회 : 18,706

지난 화요일 12월 4일

<해방촌, 빈마을, 길을 묻다> 연속강연회 두번째 자리...

박승옥 선생님 강연이 있었습니다.


그 때 공유했던 자료입니다.


1. 박승옥 선생님이 쓰셨던 글 <왜 협동조합 운동인가?> : 일부가 강연 내용과 관련됩니다.

2. 강연 시작 전에 축약판으로 상영했던... <쿠바는 어떻게 피크오일에서 살아남았나? How.Cuba.Survived.Peak.Oil>

3. 그리고 참고 자료로 주셨던 특임장관실에서 만들었다는 협동조합 소개 프리젠테이션자료. <협동조합이 뭐지요?>


2번은 파일이 커서 올릴 수는 없고... 필요하신 분은 메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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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협동조합운동인가

박승옥(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대표)

1.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와 특성

노동운동과 협동조합 운동

- 모든 사회와 공동체, 협동조합은 결핍의 사회, 결핍의 공동체, 결핍의 협동조합이다. 사람은 결핍이 없으면 잘 협동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화의 결과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넘치는 풍요 속에서 사회가 갈갈이 모래알처럼 파편화되고 공동체가 해체되고 수많은 협동조합들이 살아남지 못하고 실패한 것은 거의 모두 이런 풍요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 협동은 인간의 핵심 본성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경쟁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성 동물인 사람은 종으로서의 출현 당시부터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약한 존재였다. 또한 다른 공동체하고도 일정하게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다. 수렵채취 경제에서는 수렵채취의 영역과 세력권이, 농경사회에서는 농토가 협력과 경쟁의 대상이었다. 사람은 처음부터 개별자로는 약한 존재였고, 협동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자급자족과 결핍의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했다.

- 자본주의 사회는 이런 결핍을 일거에 극복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물론 이런 자본주의 근대화 산업화의 풍요는 지상의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마구잡이로 수탈 착취한, 미래세대의 저금통장까지 까먹는 약탈의 풍요, 도둑들의 풍요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풍요는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극단화시켰다.

- 자본주의의 무한성장과 자본의 무한 확대 증식력은 착취와 수탈의 여지가 있는 영역이 남아 있는 한 암세포처럼 계속 강한 생존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의 무한증식 원천이었던 새로운 시장, 새로운 영토, 새로운 산업은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대량 상품생산의 원동력이었던 값싼 에너지와 천연자원은 남김없이 고갈돼가고 있다. 가짜 돈을 만들어 무한 이윤을 창출해낸 카지노 금융독점자본주의도 그 자체의 논리로 붕괴를 목전에 두고 있다.

-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 정치 체제를 변혁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주의 사회혁명운동은 정확히 이같은 자본주의의 산업화와 근대화, 성장과 풍요에 조응하는 운동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노동계급 운동은 전세계에 걸쳐 명확히 실패한 실험으로 끝나고 말았다.

- 현재 한국의 노동계급은 마르크스가 말한 바 대자적 계급이 아니며 그런 대자적 계급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국의 노동자 계급의 의식이란 철저히 기업별로 분단된 종업원의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풍요의 과실을 좀 더 많이 분배받고자 하는 배부른 돼지들 또는 상대적으로 배고픈 돼지들의 먹이다툼 투쟁이지 사회와 국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삶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전환과 변혁의 투쟁이 결코 아니다.

- 한국의 노동계급운동은 지금 어떠한 새로운 대안의 사회운동 의식이나 실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정규직의 투쟁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투쟁 또한 그렇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자체는 결코 그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생존권 투쟁 자체에 머물러 있는 투쟁으로는 어떠한 새로운 사회도 창조해낼 수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대응능력과 내성을 강화시켜주는 역작용까지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의 초기부터 로버트 오웬, 생시몽, 크로포트킨 등 근본에서부터 자본주의를 변혁하고자 한 실천운동이었다. 맑스가 폄하하고 왜곡한 것처럼 공상적인 운동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노동계급 중심주의의 사고 자체가 자본주의의 풍요와 결합해서 노동계급은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의 지지자로 만들고 말았다.

- 협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의 풍요 속에서 결핍의 조건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인민들이 생존하기 위해 경쟁을 넘어선 협동과 연대의 사회경제를 실천한 운동이었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대자본을 무너뜨리는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한 반면, 협동조합운동은 자본과 국가의 착취와 수탈로부터 인민들의 일상생활을 탈환해오는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 실천 운동이었다.

한국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강한 국가주의 경향
 
- 협동조합은 사업체이자 동시에 결사체이다. 협동조합은 사람들 사이의 협동과 상부상조, 연대와 연합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이는 대안의 경제운동 조직이자 동시에 대안의 사회운동 조직이다. 조합원들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고 연합하는 현장이 다름아닌 지역 사회이다. 협동조합 경제가 지역공동체를 재조직하고 지속가능한 선순환의 지역경제를 구축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영리회사가 지역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지역 주민들을 파편화되고 개별화된 모래알같은 소비자들로 머물러 있게 강제함으로써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는 것과 뚜렷하게 반대로 나아가는 경제운동 조직이 협동조합이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가 그렇고 한국 신협운동에 강한 영감을 불러 일으켰던 캐나다의 안티고니시 협동조합 운동이 그렇고 한국의 원주 지역 협동조합운동이 그렇다.

- 한국에서 협동조합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미 1960년대부터 한국의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주의 성향의 진보운동을 이끌어왔던 활동가들이 협동조합운동을 투쟁력을 약화시키는 내부의 개량주의 운동, 또는 한가한 중산층의 운동 정도로 배격한 데 기인한 바가 크다.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일부에서는 오직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의 이념만 강하게 부각되고 있었지 사실상 풀뿌리 민주주의, 자립자치의 지역공동체 운동 이념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대체로 극우주의자들과 똑같은 강한 국가주의자들이었다.

- 맑스는 국가주의자가 아니었다. 맑스는 철저한 공동체주의자였다. 맑스는 국가를 폐지하고 자유인들의 연합체로서의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공산주의로 번역한 코뮤니즘(communism)은 사실 공동체주의로 번역했어야 마땅했다. 이에 비해 레닌과 스탈린은 철저한 국가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솔직히 공동체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국가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전략에서 협동조합운동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을 때는 ‘사회주의의 학교’로서 협동조합운동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한편, 일단 국가권력을 잡은 다음에는 또 철저하게 협동조합운동을 개량주의 운동으로 부정하고 아예 국가 권력에 종속된 어용 조합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 한국에서 유포된 사회주의 운동 이론은 대부분 대체로 구소련의 관제 국가주의 성격의 사회주의 혁명 이론이었다. 러시아혁명의 원동력이었던 협동조합운동과 미르공동체 운동을 구소련은 혁명 초기에는 사회주의의 학교로 지칭하면서 우호관계를 유지했지만, 1930년대 신경제정책을 취하면서 곧바로 인민들의 자립자치 공동체는 모두 해체시켜 버리고 말았다. 협동조합은 이름뿐인 관제 협동조합으로 형해화되어 버렸고 소농 공동체인 미르공동체 또한 해체시킨 뒤 소농들을 집단농장에 속한 농업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자립자치의 인민 소비에트와 자율-독립의 협동조합이 사라진 전체주의 국가, 관료 독재 국가가 자유인들의 연합체로서의 사회주의 사회일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결국 구소련은 국가가 식량조차 해결하지 못할 때 어떤 위기 극복의 대안 공동체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해체되고 말았다.

- 한국의 진보운동 가운데 일부는 이런 구소련의 낡은 국가주의 사회혁명 이론을 학습하면서 이른바 교조적인 혁명의 실천을 꿈꾸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이후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던 노동자 스스로의 민주노동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협동조합은 투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개량주의 운동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한살림생협운동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자 모두를 비판하고 성장과 생명파괴의 근대화-산업화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모심과 살림의 생명운동을 제창하면서 노동운동 진영에서는 완고한 보수-진보의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생협운동을 중산층 운동으로 매도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 노동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의 강력한 근거지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협동조합운동을 중산층 운동으로 배격하는 풍토에서 협동조합운동이 뿌리내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 한국의 진보운동과 전혀 별개로 가톨릭을 중심으로 신협운동이 스스로 민간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때문에 매우 소중한 민간 협동조합운동의 싹이었다. 그런데 이런 신협운동이 그만 관제화되고 말아 협동조합운동의 토대가 무너지고 만 것은 이후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상당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 한국에서 풀뿌리 인민들의 노동운동과 협동조합운동의 연대와 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비극이었다. 노동조합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을 개량주의 운동으로 배격하면서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세계를 오히려 국가와 독점재벌의 지배 종속에 방치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는 1980년대 중후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한 편향이었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폐해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고립된 정규직 중심의 이기주의로 치닫게 되면서 급속하게 영향력을 잃어버리면서 쇠락의 길로 축소되고 있는 중이다.

- 이처럼 한국의 진보는 강한 국가주의 경향을 갖고 있었다. 진보세력이 국가권력을 탈환하면 진보의 세상은 저절로 올 것이라는 확신을 공유하고 있었다. 노동운동 또한 작업장 안의 대자본 투쟁과 국가정책을 바꾸고자 하는 대국가 투쟁에 집중되어 있었고, 마찬가지로 강한 국가주의 사고에 지배받고 있었다. 때문에 협동조합운동에는 별 관심조차 없었다. 인민 스스로 자립 자치를 지향하는 지역공동체 운동과 인민 스스로 상부상조하는 협동조합의 결사체 운동과 사업체 운동, 인민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대안의 사회운동과 경제운동으로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의 진보는 여전히 20세기의 낡은 국가주의 사고에 갇혀 오히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사회운동의 걸림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국가주의-복지국가론과 공동체 풀뿌리 공동체주의-공동체복지론
 
- 진보주의자들의 강한 국가주의 경향은 그대로 복지국가론으로 이어지며, 인민 스스로의 자립자치 운동에 대한 경시로 이어졌다. 복지국가론은 대부분 미흡한 국가 복지의 확대와 기존의 독점자본과 민간 영리보험 시장이 장악하고 있던 복지 영역을 국가복지로 탈환하는 과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 19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또한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의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정치권을 통해 실천하려 한 일종의 대변인 운동, 전문가 운동, 성명서 운동, 시민없는 시민운동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복지국가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가와 시장이라는 사고 틀에 철저하게 갇혀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 대안의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상상력이 없는 복지국가론의 극단은 결국에는 파시즘과 국가사회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조차 하다. 그리고 사실 서구에서 자국의 모든 인민들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강력한 복지 체계를 제공해주었다는 영국과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도 따지고 보면 이들 국가가 제3세계 국가와 인민들을 착취하지 않았다면 성립 불가능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근대 조세국가 체제는 근본에서부터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에 대응한 체제이다. 복지국가 또한 경제성장 시기에는 잘 유지 작동되지만 경제성장이 멈추면 금방 와해될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론은 애써 이런 사실을 외면한다. 철저한 자본주의자들이 국가 축소를 주장하는 것과 달리 사회주의자나 사민주의자들이 오히려 더 국가 확대를 주장하고 복지국가를 내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이다.

- 요컨대 국가가 아무리 강력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놓는다 하더라도 경제성장이 지속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 국가복지이다. 구소련이나 북한의 국가 복지 역사를 보면 이는 명백해진다. 요컨대 가장 강력하고도 지속가능한  사회안전망은 인민들 스스로 만드는 사회안전망일 수밖에 없다.

- 1987년 6월 항쟁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은 대체로 이와 같은 복지국가론을 사회개혁의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시민사회운동 또한 자립자치의 협동조합운동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이런 시민사회운동의 흐름 속에서 여성민우회가 1989년 비교적 일찍이 여성민우회 생협을 창립하고, 2002년 환경운동연합이 에코생협을 창립한 것은 매우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 한국의 생협운동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의 발효와 함께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생협운동은 신규 협동조합들과 연대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주의와 복지국가론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풀뿌리 공동체주의와 복지국가론을 극복하는 공동체복지론의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활로가 열릴 것이다.

2. 협동조합운동은 결사체 정체성의 확립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협동조합운동은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인민들이 스스로 상부상조해서 살아남기 위해 절박하고도 필수불가결하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운동이자 경제운동이다. 오직 경쟁만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 경제가 협동사회경제 체제이다. 때문에 강한 사회운동 성격을 띄지 않으면 결사체로서도 사업체로서도 성공하고 성장하기 어렵다.

- 한국의 협동조합운동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떠한 사회운동이건 국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일부 지도자들의 국가 권력기관 진출 이외에 결국에는 사회운동 자체의 쇠락과 소멸로 귀결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강력한 투쟁력과 전투력을 자랑하던 한국의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이 그렇게 소멸되었고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그렇게 몰락했고, 쇠락하고 있는 중이다.

- 거의 모든 공동체들과 결사체들이 해체되고 몰락한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풀뿌리 인민들이 스스로 자립 자치 결사체를 재형성하지 못하면, 자립자치의 지역공동체를 재조직하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취약한 대의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강한 국가주의의 파시즘이 도래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 그리고 그런 풀뿌리 인민들의 결사체 기반이 없는 모든 사회운동 또한 허망한 신기루로 사라지고 말 가능성이 너무도 많다.

- 협동조합운동 또한 풀뿌리 인민들의 결사체와 지역공동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 생협운동을 비롯한 협동조합운동은결사체운동과 사업체운동의 결합이라는 협동조합운동의 본래의 이념을 살리는 것이 사업을 성장시키고 성공시키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철저하게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또한 지역과 지역의 연대와 연합의 힘을 살려,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상부상조와 상호부조 사업으로서 나아가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리고 사실은 그런 협동조합 고유의 결사체운동 방식이야말로 월가의 거대 금융독점자본에 대항하여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대안의 협동사회경제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3. 한국 생협운동은 성장 신화를 버려야 살 수 있다

- 한국 신협중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신협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입니다.”라는 문구가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당한 이 말을 그러나 한국 신협중앙회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이완용이 조선을 살리기 위해서 한일합방을 했다고 견강부회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 신협중앙회가 중심에 두고 있는 가치는 돈벌이지 사람과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 협동조합운동의 지침서라고 부를 수 있는 레이들로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그 대부분이 협동조합운동의 결사체운동과 사업체운동의 슬기로운 결합에 관한 것이다. 특히 레이들로는 협동조합이 주식회사와 다를 바 없이 사업체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서구의 협동조합들에 대해 강한 비판과 함께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협동조합이 결사체의 정신과 조직력을 잃게 되면 결국에는 협동조합 정체성을 잃고 사업 자체도 망할 수밖에 없다고 설파하고 있다.

- 한국 신협운동은 대체로 1980년 레이들로 보고서가 발표된 바로 그 이후부터 협동조합의 결사체 정신과 사회운동 성격을 버리고 사업체 금융기관의 길로 나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신협이 지역사회 자립자치운동이라는 강한 사회운동 성격을 잃게 된 가장 큰 까닭은 신협이 1980년대 초반부터 다름아닌 사업체로서의 성장 신화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추구하면서부터였다. 한국 신협운동은 협동조합이 결사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사업체로서의 성장신화에 갇혀 사업의 성장에만 일로매진하게 될 때 그 결과가 어떤 참극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지를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는 타산지석의 모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 협동조합운동은 당연히 성장을 지향해야 한다. 사업체로서 성공하고 성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지속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의 성장은 결사체의 성장과 동시에 사업체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지, 자본주의의 성장신화에 갇힌 성장지상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때로 협동조합은 지나친 성장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를 뛰어넘는 사업의 성장은 그 자체로서 이미 결사체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사회를 뛰어넘어 다른 지역에까지 협동조합운동의 확산을 가져오는 성장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협동조합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자립자치의 지역공동체 경제 확산의 과정이야말로 풀뿌리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협동조합의 연대와 연합, 연방주의의 위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문제는 이런 협동조합 지역사회경제 연방의 기초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지역 결사체와 사업체이지, 지역결사체가 사라진 거대한 성장의 사업체는 이미 협동조합이 아니라는 점이다.

- 오늘날 한국 생협운동이 이런 신협의 성장신화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차분한 성찰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멈추면 협동조합은 망할까

- 한국 신협운동이 지역사회 결사체로서의 협동조합 정체성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새로운 형태의 협동조합운동이 태동된다. 1986년 한살림농산 매장 개설과 함께 시작된 한살림생협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강한 결사체로 연대해서 상생하는, 세계 협동조합운동 역사를 새롭게 개척한 실험이었다.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살림생협 운동이 경제사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아닌 모심과 섬김의 생명살림이라는 한살림운동의 강한 생산자-소비자 결사체 정신이었다. 한살림의 유기농 생산자들에 대한 도시 조합원들의 무한 신뢰는 유기농 농산물의 직거래 공동구매 사업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한살림생협은 결사체와 사업체의 동시 성장을 추구했고 일정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조합원과 일반 시민들의 한살림 유기농 생산자와 한살림 먹을거리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전체 한국 생협운동의 성장은 불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 한살림생협운동과는 조금은 궤를 달리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시민사회단체와 대학, 종교단체 등을 기반으로 생활공동체운동으로서 시작된 생협들이 있었다. 1988년 서강대생협과 1989년 12월 여성민우회 생협 창립을 필두로 성남 주민교회의 주민생협, YMCA의 등대생협, 대구 상인성당의 푸른평화생협, 원불교의 한울안생협 등이 그것이다.

- 동시에 또한 1990년대 초반부터 노동운동 세력이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 주민운동으로 출발한 생협운동의 흐름이 있었다. 1992년 11월 출범한 부평생협을 비롯하여 부천생협, 한마을생협, 광명한두레생협, 구로한우물생협 등이 그것이다. 이들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등의 생활공동체 생협운동과 지역사회 주민운동으로서의 생협운동은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 초기부터 강한 결사체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이렇게 결사체운동으로 시작한 한국 생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는 사업체로서 매우 어려운 경영상황에 직면하였다. 이들 생협 가운데 해마다 적자가 누적되어 문을 닫는 생협들이 숱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기야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에는 당시 231개에 이르던 생협 가운데 154개 생협이 문을 닫을 정도였다.(아이쿱생협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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