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 조합원이 소개하는 일본 시골에 있는 한 빵집인데 노동자를 혹사시키지 않으며 이윤을 남기지 않는 빵집이라고 합니다. 경제를 부패시키고 자본론을 굽는 빵집. 빵집 사장님 말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데 자본주의 세상엔 부패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첨가물, 농약 같은 식품가공 분야의 기술혁신도 ‘부패하지 않는 경제’에 해당하는데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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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지음·정문주 옮김 | 더숲 | 235쪽 | 1만40000원
일본 오카야마현 가쓰야마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올해 마흔넷의 와타나베 이타루란 이름의 이 남자, 여느 빵집 주인과는 다르다. 시골빵집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굽고 있다고 말한다.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한다”는 레닌의 말로 시골빵집의 의의를 설명한다. 소리 없는 혁명에 ‘창조경제’도 ‘투명경제’도 ‘혁신경제’도 아닌, ‘부패(하는) 경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빵집 직원들을 착취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한다. 급진적 혁명가가 일본의 한적한 시골로 흘러들어온 걸까.
■ 시스템 바깥으로
이타루는 혁명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마르크스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일본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빈둥거리기도 하고 반항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정한 직업도 없는데 나이는 서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되기는 해야겠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애가 탔다. 그나마 시골 사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다. 농학을 전공한 그는 서른 먹은 ‘중늙은이’일 때 교수 소개로 직원 스무 명 정도 되는 작은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들어갔다. 월급도 나쁘지 않았고 동경하던 시골과 농사에 관한 일이라 흡족했다.
하지만 이타루가 맞부닥뜨린 건 불합리한 세상이었다. 사과 작황이 좋지 않자 다른 산지에서 가져온 사과를 담아 납품했다. “이건 원산지 허위 표시 아닌가?” 어느 날 상사가 자재업자에게 뒷돈을 받자고 제안하자 바로 부정을 보고했다. 직장 왕따가 됐다. 무엇보다 생산자에 대한 경의, 자연의 결실을 고마워하는 마음 없이 “매입자가 없어서 토마토는 3t이나 또 썩고 있네요” 같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직원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이 회사의 거대한 유통 시스템에, 자본의 논리에 농업이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목격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날,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 꿈결에 나타난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빵을 만들자.” 2002년 12월 다시 백수가 되었다. 2007년 4월까지 네 군데 가게를 옮겨다니며 제빵 기술을 배웠다.
■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한가운데의 빵집
빵집을 열었지만 시스템 밖으로 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바깥세상이어야 할 빵집 공장마저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기후변화, 중국·인도의 곡물 수입 증가로 재료값이 급등했다. 1345엔 하던 호두 1㎏은 2450엔까지 올랐다. 재료 가격의 엄청난 변동에 농락당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이타루는 작물 시황을 악용해 한밑천 잡으려는 투기 자금에 분개했다. 미국발 리먼 사태는 일본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업을 중단한 공장에서 기간제 종업원, 파견 직원들이 우선 해고됐다. “국경을 초월한 이윤창출을 노리고 대규모 자본을 들이붓는 투기세력은 서민의 일자리를, 나아가 서민의 삶을 망치고 있었다.”
개점 직후 악전고투하던 중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이타루, 너 마르크스를 읽어보지 그러니?” “예? 우리가 아는 그 마르크스 말씀이세요?” 학자인 아버지 권유로 서점에 갔다. 그때서야 <자본론>이 총 13권(원작은 3권)짜리 대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세계에, 과연 시스템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2008년 12월 이타루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르크스와 마주했다.
<자본론>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빵집 수련 시절이 떠올랐다. “서른한 살이고 빵집 경력은 없습니다”라고 입을 떼는 순간 번번이 거절당하다 다섯 번째 찾아간 빵집에 채용됐다. 새벽 2시에 출근해 빵 반죽을 자르고 뭉치는 작업을 하고 오후 5시 청소를 마지막으로 일이 끝났다. 13시간의 고된 노동이 이어졌다. 도쿄의 ‘빵집 잔혹사’는 19세기 런던에도 존재했다. 마르크스가 묘사한 런던 빵집의 노동조건은 더 처참했다. 밤 11시부터 빵을 반죽하고 두세 시간 얕은 잠을 잔 뒤 다섯 시간 동안 빵을 굽고, 그 뒤 손수레를 밀며 구운 빵을 배달했다. 오후 1시, 늦을 때는 오후 6시까지 일해야 했다. 가혹한 노동환경 탓에 빵집 기술자 대부분은 건강을 해쳤다. 마흔둘을 넘기기 힘들었다.
와타나베 이타루는 천연 효모와 지역 재료를 사용해 빵을 만든다. 이윤을 남기지도 않고, 1년에 한 달은 쉰다. 자신은 제빵, 아내가 경영을 맡은 빵집은 동네 사랑방이다. 사진은 천연 재료와 효모 발효 과정, 반죽하는 와타나베, 그의 부인과 주민 모습. | 더숲 제공
■ 시골빵집 주인의 자본론 강의
지금 일본이나 과거 런던이나 빵집 노동자는 왜 다 혹사당했을까. 월 200시간 이상 야근하고 권력을 이용해 부당한 대우를 하는 상사에게 지속적 괴롭힘을 당하다 입사 반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왜 벌어질까. 그저 자본가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 구조에 편입돼 노동자를 학대한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의 근본이 노동력이라는 상품이고, 노동력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하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다. 제빵 기술자인 이타루는 빵과 결부해 <자본론>을 강의한다. “상품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필요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누군가가 필요로 한다, 원한다’는 성질을 마르크스는 상품의 사용가치라 불렀다. 빵으로 말하자면 먹을 수 있는 성질이다. 자신이 먹기 위해 만든 빵은 상품이 아니다. 거기에는 교환이 없기 때문이다. 만든 빵과 교환하는 대상의 크기를 마르크스는 교환가치라고 불렀다.”
도쿄 빵집을 돌며 수련할 때 이타루가 목격한 건 이스트다. 천연 효모는 균이 많아 발효 관리가 어려웠다. ‘게으른 균’, ‘부패시키는 균’까지 섞여 들어가다보니, 온도와 습도 등 주위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았다. 그래서 제빵에 적합한 효모를 공업적으로 순수 배양한 이스트를 많이 쓴다. 그런데 이스트엔 첨가물이 여럿 들어가고 약품을 쓰거나 방사선을 쏘이기도 한다. 빵 재료인 이스트도 자본주의와 떼놓고 볼 수 없는 물질이다. 1920~1930년대 이스트 제조법과 이스트를 이용한 제빵 기술이 확립되면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적 고용관계가 빵집에 뿌리를 내렸다. 이스트로 쉽게 빵을 만들게 되자 빵값은 떨어지고 노동자는 싼 임금에 계속 혹사당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시간을 늘리지 않고도 자본가는 많은 이윤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타루는 “음식은 싸면 쌀수록 좋다는 풍조가 있지만 마르크스의 말대로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 착취하지 않는 경영-이윤 제로
<자본론> 세례를 받은 이타루의 빵집은 여느 가게와 다른 점이 많다. 이스트를 쓰지 않는다. 빵집 터로 예전 방앗간으로 쓰던 100년이 지난 고택을 선택한 이유는 천연 효모를 잘 배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밀가루를 돌절구로 빻는다. 홀 푸드 개념을 좇아 겉껍질까지 낟알을 통째로 갈아낸다. 이곳에서 이타루와 그의 아내, 직원은 비효율적일지언정 더 많은 정성으로 공들인 빵을 만든다. 천연 효모와 지역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빵값은 다른 가게보다 서너 배 비싸다. 일주일에 사흘은 가게를 닫고 일 년에 한 달 장기 휴가를 간다. 또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윤을 남기지 않는 장사는 어떻게 실현할까. “이윤은 노동자가 월급보다 많이 생산하고 그만큼을 자본가가 가로챌 때 발생했다. 그 말은 곧 노동자가 생산한 만큼 노동자에게 정확히 돌려주면 이윤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이타루는 말한다. 이타루는 매출에서 비용을 제외한 영업이익을 출자비율에 따라 직원들과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직원들에게 돈의 흐름을 공개했다. 이타루의 빵집은 인건비와 재료비가 매출의 80%다. 다른 가게보다 20%가 더 많다. 시골빵집이라 임-대료가 싼 덕도 본다.
■ 부패하는 경제를 꿈꾸다
이타루는 ‘부패하는 경제’를 꿈꾼다. 모든 물질은 시간과 함께 모습을 바꾸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간다. ‘발효’와 ‘부패’를 통해서다. 이 두 가지 현상은 균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 “자연의 균형 속에서는 누군가가 독점하는 일 없이도 누군가가 혹사당하지 않고도 생물이 각자의 생을 다한다. 부패가 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엔 부패해야 마땅한데 부패하지 않는 것들이 많다. 인공 배양된 이스트는 원래 부패해서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물질마저도 억지로 일정 기간 썩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첨가물, 농약 같은 식품가공 분야의 기술혁신도 ‘부패하지 않는 경제’에 해당한다.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든다고 이타루는 말한다.
변화의 섭리로부터 벗어난 게 또 있다. 바로 돈이다. 이타루는 “부패는커녕 오히려 투자를 통해 얻는 이윤과 대금업을 통해 발생하는 이자로 인해 끝없이 불어나는 성질마저 있다”고 지적한다. 공황도 거품 붕괴도 허용하지 않는다. 적자 국채 발행이나 양적완화 같은 정책은 곧 돈이라는 이름의 비료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수법이다. 이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다.
그래서 이타루가 추구하는 게 부패하는 경제다.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춘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하는 방법이 이스트나 첨가물을 쓰지 않고 고장 재료를 사용해 제대로 만들어 정당한 가격에 파는 일이다. ‘발효-순환-이윤 남기지 않기-빵과 사람 키우기’, 이타루가 꼽는 부패하는 경제의 핵심이다. 그는 시골빵집이 구워낸 ‘자본론’을 이렇게 말한다. “자리가 잡히고 균이 자라면 먹거리는 발효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상인과 장인이 크면 경제도 발효할 것이다. 사람과 균과 작물의 생명이 넉넉하게 자라고 잠재능력이 충분히 발휘되는 경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