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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알베르토 토스카노, 페터 슬로터다이크 발췌, <<맑스 재장전>> 중

  • 지음
  • 작성일시 : 2017-11-22 03:02
  • 조회 : 3,715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과 관련해 아주 이상한 것들 중 하나는 자본주의의 한계와 만행, 가정/자연환경/노동/사회적 삶의 무의미한 파괴나 쇠퇴 등, 이 모든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점이지요! 그러니 이것은 아주 독특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이며, 일상생활의 종교라는 맑스의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줍니다. 우리는 특정한 사태가 견딜 수 없는 것임을, 혹은 특정한 형태의 경제 행위가 완전히 파국적인 결말을 낳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삶 전체는, 이것이 사실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행동에 어떤 차이도 가져오지 못하는 방식으로 조직됩니다. 맑스주의자들도 빚을 지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요. 돈을 충분히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무엇인가에 투자할 것이고, 연금으로 모아둔 돈도 그 액수를 불리려고 투자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의 행동에 삼투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박에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야 말로 매력적일지는 몰라도 관념적입니다. 그런 생각 자체는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 중 많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음에도 개혁 같은 온건한 것에 참여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변형이나 혁명에 참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 <알베르토 토스카노와의 대담 : '코뮤니즘'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맑스주의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가 세계의 모든 관계를 움직이는 제1운동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종의 착시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오해이지요. 왜냐하면 실재하는 긴장, 그 대단히 역동적인 힘은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적대, 더 정확하게는 협력적 적대에서 파생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맑스가 노동이 아니라 신용체계의 측면에서 자본 분석을 발전시켰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노동 중독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그 이론의 강조점에 있어서 근본적인 오해를 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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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오늘날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개념은 코뮤니즘 communism 이 아니라 코-이뮤니즘 co-immunism, 다시 말해서 공동면역주의입니다. 사람들이 집단적 삶에서 면역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코뮤니즘은 공동면역체 co-immunity 의 원리가 아직 철저하게 사유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함께 모여 치명적인 것에 맞선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호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지구적인 규모의 연대 공동체가 되어줘야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인 자기파괴가 가능한 상황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코뮤니즘을 말하기 전에 '이뮤니즘 immunism'의 원리를, 더 정확하게는 상호 보장을 가장 심층적인 연대의 원리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공동체 community 와 면역체 immunity 를 충분히 깊게 파고들었다면, 미래를 나타내는 진실한 일차적 개념이 코뮤니즘이라고 불릴 수 없으며 코-이뮤니즘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그리고 가장 먼 거리를 가로질러 면역체 동맹, 즉 상호 연대의 동맹을 맺는 것이 핵심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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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치경제학 역시 공동면역체 개념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면역체는 자원 분배나 연대 협정을 토대로 구축되니까요. 그런 동맹은 자기 번영의 생산자 또는 창조자로서 진정으로 인정받는 협력자들 사이에서만 유의미하게 조직될 수 있습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와의 대담 : 코뮤니즘이 아니라 코-이뮤니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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