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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자료 좌파를 위한 재테크?!

  • 빈고
  • 작성일시 : 2018-05-16 15:35
  • 조회 : 3,294

좌파를 위한 재테크?!

 

김성구 교수는 <경제무식자, 불온한경제학을 만나다>에서 ‘경제무식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부동산투자, 주식투자, 주식배당, 채권, 연금, 보험, 펀드, 계모임, 부동산임대 까지 차례대로 검토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서 수탈과 착취에서 벗어난 윤리적 재테크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Q) 주식, 채권, 펀드, 연금 보험은 투기니까 못 하고, 부동산 임대는 돈이 없어서 부동산을 못 사니까 할 수 없고…, 그래도 뭔가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고 싶은데, 윤리적으로 재산을 축적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A) 그런건 없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얻으려면 자본가들처럼 행동해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수익을 얻을 수 없죠. 그런데 좌파가 그렇게 투기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느냐, 이런 원칙적인 문제가 있네요.”

 

심지어 은행에 저금해서 이자수익을 얻는 것도 그 원천은 사실 생산 부문에서 노동자들이 창출한 이윤의 일부를 분배받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개개인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백하게만 살 수는 없다고 한다.

 

“좌파 단체나 조직이 이윤 증식이나 투기 이득을 추구하는 건 물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좌파라는 이유로 그 개인이 공산주의적 도덕, 가치대로 살기를 요구하기는 어렵죠. 재테크에 윤리는 없겠지만, 재테크로 얻은 수익으로 사회 운동에 기여한다면, 그나마 나은 재테크가 아닐까요?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테크를 하면서 빠르게 자본가를 닮아 가거든요. 그리고 사회운동으로부터 멀어지죠”

 

결국 결론은 노동자는 자신의 돈으로 할 수 있는 윤리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고, 재테크를 하면 윤리적으로 살 수가 없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도 적지 않은데, 재테크에 뛰어들었으나 실패해서 돈도 윤리도 모두 잃어버리는 경우다.  

 

우리는 누구나 재테크를 한다. 얼마나 의식을 하고,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전월세계약을 하고 예적금과 보험과 펀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은행에 넣어두는 것도 수익성을 다소 포기하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재테크의 일종이 아닌가. 윤리적인 재테크가 불가능하고, 재테크를 하면서 자본가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사실 우리는 모두가 자본가를 닮아가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윤리를 유일한 윤리로 받아들이면서도 자본가와 대결할 능력은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우리에게 남은 방법은 재테크에 성공하되 자본가를 닮아가지 않고 그 수익을 사회운동에 기여하는 공산주의적 윤리와 동시에 자본주의의 능력을 가진 주체가 출현하는 실낱 같은 가능성에 기대는 것 뿐일까? 이런 뛰어난 개인은 나타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운동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인가도 불확실하다. 자본주의의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그의 권력을 좌파 단체나 조직은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공산주의적 윤리를 갖고 있다고 한들, 그의 권력은 결국 자본의 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재테크가 사람을 자본가로 만든다면, 그 역시 다음 순간에는 자본가로 변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공산주의적 윤리와 자본주의의 능력을 동시에 가진 뛰어난 개인을 마냥 기대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방향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공동체와 조직의 문제로 풀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같은 꿈을 가진 개인들이 모인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함께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공산주의 윤리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공산주의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윤리적인 돈의 사용이 가능한 기반과 조직을 만드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재테크 담론의 확산이 보여주는 것은 개인이 재테크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이 오로지 개인의 미래를 개인이 온전히 책임지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효과도 개인들이 서로 경쟁하고, 성공과 실패와 책임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서로 관계하지 않고 연대하지 않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자본의 시스템 아래 지배되지 않을 수 없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세계, 그 세계의 이름이 자본주의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윤리적인 재테크를 묻는 것의 한계는 명확하다. 맞다. 그런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윤리적인 원칙과 행동을 모르거나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각자 개인으로서 갈가리 찢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개인에게 윤리를 요구하기 어렵다면 단체에게는 어떻게 공산주의적 윤리를 요구할 수 있는가? 단체가 재테크로 얻은 수익으로 사회운동에 기여하는 방법은 그나마 나은 재테크가 아닌가? 자본가를 닮아가지 않는 재테크는 어떻게 가능한가? 혁명이 부분적으로 성공해서 좌파 단체가 기업과 은행을 접수했다고 하자. 그 좌파 단체는 접수한 자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실 김성구 교수는 부동산 문제에서 재테크로서 월세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답하며 한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임대료라는 게 가격이어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된다고는 하지만, 국가가 상한선을 둘 수 있어요. 이자도 법으로 상한선을 두거든요. 임대료라고 시장에서만 결정하라는 법은 없다는 얘기죠. 국가가 서민들의 주택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월세 상한선을 둬서 3% 이상은 못 받게 한다든지 현행 이자율과 연동시킨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규제하면 돼요.”

 

이러한 정책을 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국회 또는 국가를 장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마냥 미뤄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월세 상한선을 두는 문제나 수익률을 이자율과 연동시키는 정책은 정말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것일까?

 

예를들어 어떤 주택조합이 위와 같은 원칙으로 주택 가격을 조정하면 어떨까? 물론 수익성이나 시장경쟁력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은행과 자본가는 이러한 주택조합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노동자들과 주민들이 이 주택조합에 투자하면 어떨까? 노동자들이 직접 투자하기가 어렵다면 노동자들이 연합한 투자조합 또는 은행조합이 있어서 이들이 노동자들의 저축을 조직하고, 주택조합에 우호적으로 대출하면 어떨까? 각각의 돈의 흐름에서 자본에 반대하고 자본수익을 거부하는 원칙을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수익을 분배하고 활용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할까?

 

물론 투자에 따른 자본수익의 발생은 미미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노동자의 저축은 자본의 은행으로 모여서 자본의 주택으로 가는 대신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주민들은 자본의 주택이 아닌 다른 주택에 살 수 있다. 우리의 자본 수익은 감소하겠지만, 우리의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처음의 우리 경제무식자들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경제무식자들의 질문은 어찌보면 재테크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이라기 보다는, 단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대비의 방법이 ‘재산을 축적’하는 것뿐이라는 전제하에, 되도록 윤리적인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자세는 훌륭하지만, 질문의 전제가 틀린 것은 아닐까? 우리가 윤리적으로 불안하지 않게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본의 수익, 자본의 욕망을 거부한다는 원칙으로 모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재산을 축적하지 않고도 함께 불안하지 않게 윤리적으로 살 수 있는 관계와 연대의 망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김성구 교수는 계모임에 대해서 수익을 추구하다보니 고리의 사채로서 기능하고 위험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불가능한 대안이라고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원래 계의 속성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전통사회에서의 계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계가 다르고, 모이는 사람과 구성원칙에 따라서 수많은 다양한 계가 있다. 너무나 다양해서, 차라리 금융을 매개로 한 모든 형태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 금융시스템에 대부분의 자리를 빼앗겼고,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부작용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계가 문제라기 보다는 공동체가 깨졌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우리가 자본주의에 반해서, 자본주의와 다른 원리로 만나고자 한다면 초기에는 그 역시 한 종류의 계모임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전자본주의 공동체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본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본에 반하는 원칙을 견지하며, 자본주의 이후를 준비할 것이다.

 

공동체은행 빈고는 300여명의 조합원이 4억정도의 자산을 모아 반자본적인 원칙으로 운영하는 10살 정도된 금융조합이다. 은행에 반대하는 이 작은 은행은 지금까지 40여개의 공동체공간을 계약하고 현재도 10여개의 공동체들의 공간을 지켜가고 있다. 우리가 더 모여서 개인이 재테크로 자본에게 넘겨버리는 돈을 되찾아오고, 착취와 이자로 빼앗기는 돈을 빼앗아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 각자는 재테크에 실패해서 부자가 되지는 못 할지 언정, 우리는 우리의 공유지와 관계와 연대 속에 더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세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바로 이것을 다름아닌 좌파의 재테크, 반자본 재테크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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