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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자료 201226 빈고 활동가대회 자료 및 기록

  • 빈고
  • 작성일시 : 2020-12-28 14:59
  • 조회 : 1,977

공동체은행 빈고 2020 온라인 활동가대회를 잘 마쳤습니다.

관련 기록들 공유합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안타깝게 참여 못하신 분들도 참고하시고, 2021년 빈고 활동 같이 계획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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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결정사항

1. 총회 날짜 : 2월 6일 토요일 오후2시~5시
2. 총회 장소 : 온라인 ZOOM
3. 총회 방법 :
    온라인으로 자료 배포 및 사전 설명을 충분히 진행하고,
    1주일간 의견 및 위임을 받고,
    오프라인 총회와 같은 방법으로 참가자들이 의결한다. 
4. 운영위원 및 활동가 지원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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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발제 : 공동체들의 공동체에 대하여 (우중산책)

1. 왜 지금-여기에서 “공동체”를 다시 이야기하는가

1) 빈고가 서 있는 상황들의 복잡미묘한 현실들

- 조합원의 양적 확대

- 상대적으로 조합내의 조합원간, 공동체간 관계형성이 느슨해지는 점.

- 은행으로서의 단순 이용수준에 머무는 현상들에 대한 우려

- 자본에 대한 이야기들이 확대되고 다양화 하는 것에 비하여 가장 중요한 가치지향중 하나인 “공동체들”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는 경향

- 공동체가 단순한 “다수의 모임”을 벗어나서 현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동체들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와 논쟁, 더 나아가 해소되는 공동체들과 새롭게 등장하는 공동체들에 대한 정체성 논의 자체가 사라진 풍경.

- 이는 조합내에서 공동체와 공유지를 둘러싼 논쟁과 고민들이 사살상 전무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


2) 빈고 선언문에서의 공동체- 반자본-꼬뮨적 경향들

“우리는 가난하다. 

이 척박한 환경에서 공동체와 공유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어떻게 빚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빼앗기는 사람들, 투쟁하는 사람들,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몰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도 먼저 협력하고 먼저 내어주는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익을 바라지 않고 공공의 목적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는가? 받을 기대 없이 O주고, 주는 티 내지 않고 주고,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나눠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찌 홀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

“ 만약 그런 은행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에 반하는 반자본은행, 서로 돕고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들의 공동체(共動體), 꼬뮨을 만들어내는 꼬뮨은행(Commune Bank), 은행(銀行)이 아닌 은행(恩行), 가난해서 행복한 빈민들의 금고(貧庫), 모든 것을 나눠주고, 모든 것을 받아 안을 수 있는 비어 있는 금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공동체은행 빈고는 그런 은행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빈고를 만들어가는 우리는 공동체은행 빈고의 조합원으로서 출자자=이용자=연대자=운영자로서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 ”

“이용자 : 우리는 빈고의 공유자본을 요긴하게 이용해서 공동체 공간과 공유지를 만들고 가꾸면서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를 통해서 더 많은 공유지와 더 많은 공동체 구성원이 생겨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 사람이 모은 공유자본을 이용하고 공동체를 꾸리는 일은 수많은 노력과 다짐,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하면서 점점 더 잘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채무자나 사업가가 아니라 빈고의 공유자본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이용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는 공유자본의 힘으로 줄어든 월세, 절약한 이자 등의 이용수입은 자신과 모두를 위해 공유한다. ”

3) 우리가 목도한 꼬뮨 혹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

코뮌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모여 함께 살며 공동의 이익, 재산, 소유, 자원(일부 코뮌에서는 노동과 수입까지)을 공유하는 공동체이다. 많은 코뮌에서는 공동체 경제 뿐 아니라 합의를 통한 의사 결정, 위계가 없는 사회 구조, 환경 친화적인 삶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공동체현상들은 대게 이러한 우리들의 고민과는 매우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한국사회에서의 공동체(꼬뮨)은 사실상 경제적 능력을 중심으로 하면서  매우 실용주의적 경향들을 가지는 사회적 경제내의 협동조합 수준에 머무는 것은 아닌가 ?

공산주의 정치 이론에서 다루는 행동주의나 정치결사체 혹은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가진 대안체의 모습들을 가진 꼬뮨과는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일까 ?

심지어 우리가 현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공유지운동들은 과연 전국각지의 마을회관과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

전국각지의 마을회관은 마을의 공유 재산으로서 존재한다. 마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을 논의, 결정 및 집행과 결산 등을 위하여 집회를 갖는데, 마을회관은 이들의 집회를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마을회관의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부계 혈연관계를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하는 동성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친족 집단의 공유 재산인 정자나 재실이 마을 주민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된 듯하다. 또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사는 각성마을이나 민촌(民村)에서는 개인의 사랑방이나 동구(洞口), 정자나무 밑의 넓은 곳이 집회 장소로서 마을회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마을이 공유하는 집회기관이 건립된 것은 전라도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모정(茅亭:짚·새 따위로 인 정자)과 기타 지방에 분포되어 있던 농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모정은 우산각이나 시정(詩亭)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부터 건립되었다. 농청은 농장이라고도 하며, 그 건립 시기는 모정과 유사하다. 이들은 다 같이 두레라는 노동조직을 운영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두레조직의 잉여금이 건립 기금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촌락공동체의 집회 장소로서의 기능과 휴식처의 필요성도 건립의 주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마을회관은 사실상 일제시대부터 현대의 새마을운동에 이르기까지는 마을 행정기관으로서, 또 주민 전체의 집회 장소로서 필요하여 관의 주도 아래 마을회관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규모가 큰 마을에 우선적으로 건립되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는 행정 단위의 각 리·동에 마을회관 건립을 추진하여, 거의 모든 마을에 마을회관이 건립되었다.

그것은 결국 지배권력이 가장 작은 곳에서도 그 위력을 확립하고자하는 욕망으로서 존재하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이러한 마을회관과 우리가 생각하는 공유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


2. “지금-여기”에서 다시 호출되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

공동체는 자본주의 이전에 선행하던 사회경제적 구조라는 일정한 역사주의적 경로를 가지고 있다.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내부에 대한 도덕(對內道德)과 그 외부에 대한 도덕(對外道德)과의 괴리현상이 생겨, 양자가 상반적(相反的)인 성격을 보이게 된다”는 막스.베버의 지적부터 블랑쇼에게서 보여지는 과정으로서의 공동체의 죽음이라는 숙명까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공동체를 소환하는 네그리부터 심지어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을 재편하려던 박근혜정권까지.

공동체는 마치 선한 얼굴을 한 붉은 사과처럼 우리에게 던져지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 독이든 사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동체”를 당연한 무엇, 변하지않는 선의 영역에 올려놓고 경배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란 무엇이고 이 공동체가 자본주의사회의 대안이기 위해 가져야할 것들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논의하고 논쟁해야할 주요한 과제중 하나지 않을까 ?

그래서 항상 질문해보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

내가 보고있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

우리는 무엇으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

공동체에 속한 공유지란 무엇인가 ?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사슬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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