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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달동네 철거민 공동체에서 신협, 그리고 마을공동체로

  • 손님
  • 작성일시 : 2011-05-31 21:21
  • 조회 : 8,400

벚꽃이 만개한 4월 중순 금호동에 있는 논골신용협동조합을 찾았다. 금호동도 서울의 봉천동, 신림동, 쌍문동, 상계동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정겹게 모여 살던 달동네였다. 그러나 90년대 재개발 바람을 타고 이곳에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지난해 봄 아나바다 행사에서 나온 물품을 전하기 위해 횡성의 윤종상 이장을 만나러 왔던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논골신협의 김지유 이사장과 장동성 과장으로부터 논골신협과 지역 활동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논골신협 이야기는 금호동지역 달동네 재개발에 맞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철거싸움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재개발을 하게 되면 한동네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곳의 세입자들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임대주택을 요구했고, 임대주택에 입주될 때까지 머무를 가이주 단지를 요구하였다. 철거싸움의 처절한 과정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얻어맞고 끌려가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의 조직된 힘으로 하나가 되어 싸웠다. 마침내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 지역을 떠나지 않고 새로운 집에서 살게 되었다. 철거싸움 중에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을 주민들은 더욱 끈끈한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투쟁으로 뭉쳐진 굳은 동지의 관계를 이루면서 지역과 사회을 새롭게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지금까지 신협과 지역운동을 이어온 가장 큰 힘이 라고 한다.
 

주거권 실현을 위한 싸움을 하면서 논골신협의 유영우 초대이사장은 몬드라곤의 협동운동을 알게 되어 주거권 운동을 넘어 협동조합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3년 동안 철거운동의 결과 마침내 가이주 단지 요구가 받아들여져 공원에 간이주택을 짓고, 열악한 환경 속이지만 주민자치 협동체 활동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생산복지, 생활복지, 경제복지, 사회복지 분과로 나뉘어서 각각의 활동을 해 나갔다. 생산복지 활동은 지역특성을 살려 봉제공장을 운영하였는데, 40여명이 일하고 년 간 수억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생활복지활동은 구판장에서 성동우리생협으로 이어오고 있으며, 경제복지 활동은 지금의 논골신협으로 이어 오고 있다. 사회복지활동은 새로 건립되는 아파트 상가를 확보하여 사회복지관으로 공부방과 주민활동의 근거지로 운영하려 했으나, 기대와는 다른 공간이 되어 당시는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초창기 공원의 간이주택에 살면서 형편이 여의치 않아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저녁에는 바구니를 들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푼돈을 거두어 출자금을 모았다. 비록 당장의 생활은 어렵더라도 우리의 생활이 자립을 이루고, 우리가 주인인 은행을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출자금을 모았으나, 신협인가에 필요한 3억 원의 출자금을 가난한 철거민들이 마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지난날 목동 개발로 철거당하여 시흥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신협을 운영하고 있는 복음신협에서 대출을 받아 다시 논골신협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3억을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1997년 11월 정식으로 논골신협이 인가를 받아 창립하게 된다. 자칫 한발만 늦었어도 IMF 환난 후 신협 인가가 되지 않는 상황을 맞아 창립이 어려워졌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힘겹게 창립된 신협은 아파트가 완공되어 입주가 되고, 그 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자산이 2008년에 100억이 넘고, 지금은 200억이 넘어서고 있다. 은행권보다 신협의 유리한 예금조건도 한 요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초기 힘든 시절의 부실이 아직도 남아 있어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해 주지 못함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이제 한두 해만 지나면 그간의 부실도 해소될 수 있고, 배당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비록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지역 사업을 위해서는 여러 곳에 후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면 서민들에게 소규모 신용대출을 할 수 있고, 지역 활동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신협의 장동성 과장이 실무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요즘 적금을 드는 경우가 드물고 특히 젊은이들이 그렇단다. 이것은 소득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소득이 적든 많든 적금을 들어 살림을 늘리고, 집을 사고, 결혼을 하는 등 목돈을 활용했었는데 말이다. 지금의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인지는 미처 몰라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사회의 앞날이 암울하기만 하다. 요즘 직장인들은 펀드에 많이 가입하고 있다. 그 펀드로 조성된 자금이 3세계에서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매점하거나, 노동착취에 이용 되기도 한다. 그러니 생태환경, 정의,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이를 자각하고 펀드 가입을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펀드에 가입할 여유가 있으면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신협을 이용하면 간접적이나마 지역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작게라도 지역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2007년 신협은 자체건물을 마련하여, 아래층은 성동우리생협 매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동우리생협은 인드라망생협에 꾸러미를 보내주는 횡성 농민으로부터 꾸러미와 농산물을 공급받기도 한다. 지금하고 있는 지역 활동도 여럿 있다. 동네 어르신들께 매월 시원한 공원에서 국수로 점심을 대접하고 있으며 단오 때는 지역 단체들과 함께 주민잔치를 크게 열고 있다. 한편, 신협과 생협 종교단체 주민회 등이 함께 지역 자치네트워크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이번에 팔천 여만 원을 모아 지역 활동을 위한 사랑방을 마련하였다. 여기에서 북카페, 놀이방, 소극장, 동아리, 문화 활동을 할 것이다. 또 사회적기업 형태로 급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대담이 끝나고 점심을 그곳에 가서 국수와 탕수육으로 푸짐하게 먹었다. 내일 모레가 개소식이라고 한다.

 

“하던 일이니까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죠. 이사장이 아닐 때는 잘될 것이다 생각했지만, 막상 와서 도장을 찍어보니 마음이 더 안 좋더라고요. 그래도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되니까... 지금의 바람은 우리 자식들이 빨리 신협에 들어와서 뿌리가 됐으면 하는데 아직까진 그런 놈들이 없네요. 우리 신협도 더 키워서 이 지역 아이들 쓰고, 성장과정이 있었고 하니 여기 아이들 교육을 하면 빠르지 않을까 해요.” 김지유 이사장은 지난 15년 세월과 경험을 앞으로도 이어줄 사람들을 지역에서 자란 세대에서 보고 있었다. 앞으로도 2세대, 3세대 이렇게 이어가길 바라본다.  인드라망 05.

댓글 1

우마 11-06-01 02:46

빈고가,빈집이 이렇게 될수있을까. 감동적인 삶을 살아가고 계신 그분들께 존경의 박수를 보내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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