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부비정규센터 준비모임, 은평 '우리동네 노동자 인권찾기모임'에서 열린
홍기빈 소장 강연회 속기록 중에서...
http://cafe.naver.com/voice2008/2051
빈고와 생각이 나는 구절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
(속기록이라서... 문장이 좀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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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 옛날에 빈곤은 공장에서 시작됐다. 따라서 빈곤 문제도 거기에서 푸는 것이
시작이었다. 오늘날 터지고 있는 빈곤에서 공장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활의 빈곤을 풀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은 거의
없다. 공장 안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조직화가 가능한 문제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작업장 단위에서 투쟁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가라는 고민이 있다. 맑스주의 방법도 눈 앞에 작업장 자본과 투쟁하는 것이 핵심은
아니었다. 맑스주의 레토닉을 쓰는 사람들도 생띠칼리즘 같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운동이 어떻게 해야 할까? 19세기 중반 오웬주의는 영국 노동운동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처음 목표는 단체협상이 아니었다. 30-40
년대 노동조합은 상호부조운동이었다. 노동조합들끼리 서로 계를 부으면서 잘리면 도와주었다. 그리고 소비자 협동조합 같은 것이
있었다. 생협의 시작은 오웬주의였다. 영국의 협동조합은 그렇다. 처음의 노동운동은 단협하는 그런 운동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이 공장이 아니라 삶의 영역을 회복하는 운동이었다. 농민과의 직거래나 계 같은 보험을 하는 것. 문화운동, 독서써클, 음악감상 등이 생겨났다.
지금 빈곤이라는 문제를 노동운동이 대처하려면 노동자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 전체를 풍부하게 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무상의료로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집값이 올라가는 것을 그대로 둔채 임금인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계속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한계가 있다.
노동자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빈곤을 발생시키는 저비용 구조를 우리 스스로 모여보자. 힘을 합쳐보자....이것이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필요하다면 투쟁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세 월세로 인생을 살다가 죽을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전 국민이 자기 집을 갖는 나라가 오히려 가능한 꿈인가? 옛날에 노동운동은 렌트 제도를 개선해서 전월세로 살더라도 일생을 살 수 있도록 제도에 제한을 가했다. 그래서 그것으로 비참해지지는 않는다.
전월세 제도를 고치면 된다. 전월세가 내 집만은 못하겠지만 전월세를 살더라도 내 집이 아닌 설움을 없애고, 전월세 가격 인상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집에 대한 욕망을 줄이자는 것이다. 비용 발생 구조를 줄이자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전월세라는 것을 인간이 인생을 보낼 수 있는 주거형태로 만드는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그런 것을 다 뛰어넘은 경우가 많다. 한 번도 근대화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욕망을 제한하거나 규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본주의가 욕망, 소비의 주체로 만든다라고 하는데 우리가 거기에서 객체인가? 우리도 공범 아닌가?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냈다. 욕망은 우리가 만들었다. 구조가 재생산될 때에는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다. 이것을 주체/객체로 구분하면 해결책이
어렵다.
노동운동은 초기 금지운동으로 시작한다. 술부터 끊자..로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명품 끊기 운동을 해야 한다.
인민 다수 사이에서 이런저런 욕망은 상스러운 것이라고 만들어야 한다.
삶의 영역을 회복한다는 것이 마음에 콕 하는데. 빈집이 그런 모습인 것도 같고...그랬으면 좋겠고.
근데 술부터 끊어야 하는 건가? 난 이제 시작인데. ㅎㅎ - 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