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p, <비노바 바베, 거룩한 걸인> 중
"선친께서는 제게 우리 땅 200에이커 중 절반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저에게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제가 바치는 100에이커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덕행에 대해서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기적이란 말인가? 하리잔들은 80에이커를 요구했는데, 기부자가 자발적으로 100에이커를 내놓다니. 비노바는 다시 한 번 하리잔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애초 자신들이 바랐던 대로 80에이커만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 대지를 성심껏 섬길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거기에서 탐욕이나 유혹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노바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빈손으로 왔고, 내일이면 또 다음 마을을 향해 빈손으로 갈 것입니다. 기부한 사람과 기부받은 사람이 모두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땅을 주고 받도록 합시다. 기부자는 이들 하리잔 친구들이 땅을 협동적인 방식으로 경작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돈과 도구 또한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비노바는 그 자리에서 다섯 사람을 임명, 위원회를 구성하겼다. 기부자와 하리잔 대표 두 사람, 그리고 오랫동안 그 마을에서 살아온 경험 많은 농부 두 사람이었다. 비노바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사람은 자기 생각과 힘만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아름다운 행동 뒤에는 항상 신의 손길이 있습니다. 나는 신앙의 사람이고 신의 이름으로 일합니다. 만일 신의 섭리가 나를 통해 작용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마을과 마을을 걸어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땅을 기부받는 일을 할 것입니다."
포참팔리의 이 사건이 위대한 토지헌납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살며,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신을 발견하는 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짓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 비노바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동정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불행과 굶주림의 덫으로 밀어 넣으면서 자기 자신을 해쳐왔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또한 우리 인류의 한 가족이며, 우리의 일부이다. 만일 당신이 아들 다섯을 두었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여섯 번째 아들로 생각하고 당신이 소유한 것 중 6분의 1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라.
112p, <권력의 분산>
자본주의는 사랑이나 투쟁으로는 종식시킬 수 없고, 오로지 올바른 생각으로만 종식시킬 수 있다. 투쟁은 더 큰 투쟁을 부른다. 사랑은 열광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올바른 생각만이 혁명을 주도하고 효력을 발휘하게 만들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은혜를 구걸하지 않으며, 가난한 자들이 정당하게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을 나누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에서는 땅이 모든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발전시키고 관철시키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어떤 생각의 힘에 의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이 필요하게 되면, 우리는 그 문제를 비폭력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투쟁은 진보의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투쟁은 본질적으로 혁명을 가져오게 될 올바른 생각을 전파하는 일이다.
117p, <부자와 빈자 모두를 위한 혁명>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패는 오늘날의 경제체제가 끌어안고 있는 해악들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이런 외부의 해악에 휩쓸려 부패와 타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경제생활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인도 사람들은 세계에 독특한 모범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착취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창출해 내는 일에 성공하게 되는 그 순간에, 지금은 묻혀 있지만 인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재능과 영적인 역량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의 친구이자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나는 부자가 가난한 자를 한 가족으로 존중하도록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진실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사명은 혁명을 피해 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막고 싶어하는 것은 폭력적인 혁명일 뿐, 나는 비폭력적인 혁명을 이루어 내기를 원한다. 우리나라의 장래의 평화와 번영은 땅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따라 좌우될 것이다. 만일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토지 개혁을 위한 올바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대안은 피의 혁명밖에 없게 된다.
나의 목적은 삼중의 혁명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첫째,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한다. 둘째, 그들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한다. 셋째, 사회구조가 변화되기를 원한다. 억압과 강제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
사람들이 땅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땅을 내어 놓으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안 가는 곳이 없다. 가난한 자의 오두막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궁전도 찾아간다.
만일에 내가 지주의 친구로서 그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가지고 그가 가지고 있는 100에이커 중에서 50에이커를 내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이 그를 해치는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곧 그에 대한 나의 진실한 사랑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일 그가 이전의 방식대로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비만한 친구에게는 몸무게를 줄이라고 충고하는 것이 그에 대한 선의와 우정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납득시킬 것이다. 이는 너무나 마르고 여윈 친구에게 몸무게를 늘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또한 의무인 것과 같다. 비만한 사람은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종래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는 적선을 구걸하는 게 아니다. 만일 내가 땅 대신에 가난한 자들에게 조리된 음식을 준다면, 그 일은 분명히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당연스레 물을 요구하고, 물을 얻어도 비굴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을 받는 일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헌납자는 기부를 받아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땅을 받는 것이지 곡식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노동을 해야만 수확하게 된다. 그래서 땅을 받는 자는 어떤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느낄 이유가 없다.
비노바 바베, <<버리고, 행복하라>>, 산해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