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5.8] 7월30일 어느 외로운 영혼들의 노래 번개

빈고게시판

 

양군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다.

사람이 좋다, 애가 착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늘 떠오르는 사람.

애는,  착하다.  -_-;;;

요즘 부쩍 외로운지 빈고 단체방에서 자꾸 시를 지어 올리더라.

양군을 아끼는 나는 참 그게 걱정이 됐다.

아니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한두 명도 아니고 백 명이 모인 공지방에서

소식도 의견도 아닌… 넋두리인지 시인지 모를… 말줄임표들을 하염없이… 취한 게 분명한 밤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어느날 또 이어진 넋두리에 누군가의 추동으로 양군은 개인ㅋㅋㅋㅋ 대화방을 개설했다.

방 제목은 ‘그냥 들려주고 싶은..’

말 그대로 그냥 들려주고 싶은 노래, 이야기 등을 올리는 방이다.

방 개설 소식에 좋아요를 누른 자들을 모두 초대하겠다고 예고했고

아마 몇몇은 양군에 대한 의리로, 몇몇은 그 방은 대체 어떤 방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몇몇은 (분명)실수로 눌렀으리라.

 

그렇게 17명이 모여든 방에서 대부분은 침묵했지만

종종 음악 추천의 물결이 일어나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추천하고 추천받고 호응하고 호응받으며

별 대화 없는 꽤 산뜻한 단체방의 구색이 갖춰졌다.

 

그러던 어느날 두둥))  외로운 영혼들의 번개가 시도된다.

음악 추천은 주로 (양군 만큼 외로워 보이는) 쏭이 주도했는데

어느날 문득 그가 한 날을 점지했고 이후로는 물 흐르듯 번개가 확정되었다.

언제나 문을 활짝 열어 사람들을 반겨주는 비루의 초대가 한 몫 했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바쁜 일정 사이에 낑겨있던 (자칭)번개 요정인 연두(네, 접니다)는

끝없이 고민했지만

고민은 지하철 탑승을 늦출 뿐. 후훗.

결국은 번개에 참가하기로 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비루의 집에 가장 먼저 도착해 벨을 눌렀다.

띵동-

엘리베이터를 탔음에도 호흡이 가빴다.

얼마나 설렌거야 대체… 번개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대체…

 

 

여름의 오후 햇살이 뉘엿해지는 고즈넉한 어느 고층 아파트에서

차례로 도착하는 외로운 영혼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비루네집 대빵 큰 테레비와 스피커로 영상과 음향의 세례를 받음)

나는 오래된 나의 노래들을 떠올렸고

대화방에서의 침묵이 무색하게 이 곡 저 곡 신청해가며 흥이 나기 시작

흥이라면 또한 빠지지 않는 켄짱과 숟가락 마이크를 들고 온갖 노래를 열창

비루는 이 와중에도 빈고 생각 뿐이라 총회공연에 걸맞는 노래들을 엄선

 

창문 너머에서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며 져가는 여름해와

유튜브로 음악을 틀고 숟가락을 들고 노래를 부르던 번개는

멍구와 아이스크림의 등장으로 살짝 진정되며 그렇게 마무리됐다.

 

집이 멀어 갈길이 바빠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번개 자리를 떠나왔지만

마지막 인사는 잊지 않았다.

 

“얘들아! 오늘 너무 재밌었어!!!”

 

 

어느 무더운 여름 오후

외로운 영혼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나눠 마셨다.

음악은 우리의 영혼을 달래준다.

그렇다면 사람은?

사람은 듬성듬성 서로의 곁에 서서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어차피 모두 외로우니, 그럴듯하게 함께 외로워보자.

 

양군이 이 방에서만 넋두리를 하니

양군을 아끼는 나는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래.. 여기서 해… 여기서…

6빈고게시판
연두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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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바지

    썸네일로 쓸만한 한 컷의 사진이 아쉽지만.. 너무나 물 흐르듯 동료에 대한 애정과 번개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저에게까지 흘러오는 것만 같은 후기 감사합니다!

    • 연두

      답변을 달 수 있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어요. 반바지 댓글 쌩유 🙂

  • 우마

    외로운 사람이라 했지만, 외롭지않은 사람들 같은 느낌!! 먼 거리의 번개 참석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 연두

      후후 대단하지?! 내가 생각해도 좀-_-;;; 그렇긴 해 ㅋ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 아닙니까? 가끔 스치고 공존하고 부대끼면서 가끔 그 사실을 잊어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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