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6.04.] 단단담담: (6) 그리움을 응시하는 시간

빈고게시판

안녕하세요, 빈고 가족 여러분.
한 주 사이에 다른 계절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가스 요금에, 봄은 대체 언제 오는 건가 쓴소리 했는데 봄이 웬말인가요. 곧장 여름으로 데려다 주는 한낮의 기온이 야속하네요. 사람 마음이 이래요. 이렇게 사부작 바람이 바뀌면 그제서야 가까워오는 줄 아는, 저의 한 계절을 떠올립니다.

책상 앞에 있는 펜꽂이의 과거는 아껴 쓰던 컵이었습니다. 현재는 본래의 용도를 다 하고 은퇴, 자주 쓰는 몇 가지 펜과 홍삼스틱 같은 것들을 품고 있어요.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근처에는 연필깎이와 자주 쓰는 3M 테이프가 있고요, 반대쪽 자개 무늬 문진 위에는 반가사유상이 고요한 시선으로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 우리 아빠의 사진.

친구가 지난 주말에 쌍둥이 아이들을 데리고 미술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 제 기억은 빛이 바랜 앨범 속 어떤 사진 한 장에 가 닿았습니다. 어느 미술관의 잔디밭에 서 있는, 2~3살 정도 되었을 법한 저의 사진인데요. 그림을 좋아했던 엄마의 아이디어로 주말이면 저를 데리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엘 자주 가셨다고 해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그때는 가난해서 셋방 살던 시절이라 주인집 눈치 본다고 저를 마음껏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게 마음이 아파서 미술관 넓은 풀밭에 저를 풀어놓고 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그렇게 좋으셨대요. 사진 속 부모님은 지금의 저보다 훨씬 앳됩니다. 두 분이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주신 이 딸은 아침저녁으로 엄마하고 통화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로 수다꽃을 피우는 중년으로 자라났습니다. 별 거 아니라도, 시시콜콜해도 하루 시작과 끝을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제 나이도 잊고 여전히 엄마의 딸로 험난한 세상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된 아빠를 추억하는 일은 일상 곳곳에 잠복하고 있는 버튼 때문에 갈수록 잦아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기도 한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슬픔이나 그리움같은 감정이 참 흔한 것 같은데 그게 때때로 새롭게 느껴지고 또 어떨 땐 더 깊어지기도 하더라고요. 문득 귓가에 울리는 저의 아이일 적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가만 있다가 번쩍 떠올라 일상의 모서리에 겹치는 몇 개의 장면들, 그리고 보고 싶어지는 얼굴, 임종의 순간까지.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등장하는, 이제는 없는 사람의 큰 존재감이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계절. 기일이 가까워지면 조금 더 자주, 구체적으로 다가오네요.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아빠 생각을 하는 것이 마치 해서 좋을 것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빠 생각이 날 때면 조금 단호하게 생각을 떨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와 또 달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살던 집에서 여전히 살고 계시기도 하고, 그래선지 엄마는 여전히 대부분의 일상을 아빠가 있을 때와 다르지 않게 합니다. 누구보다 없음을 매순간 느낄 엄마가 가끔씩 들려주는 아빠와의 추억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했습니다. 이제는 수시로 엄마하고 같이 아빠 이야기를 해요.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아빠와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엄마는 아빠가 미웠다가 그리웠다가 하시나 봐요. 저도 비슷해요. 더 잘할걸 후회도 하다가 마냥 보고 싶기도 하다가 그럽니다. 물론 이런 추억 토크의 지분은 엄마가 훨씬 많겠습니다. 제가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의 모습을 맘껏 상상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두 사람 이제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시절인데 짝을 잃고 혼자가 된 엄마가 더 안쓰러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특유의 넉살로 기꺼이 즐겁게 추억하신답니다. 처음 만난 선자리에서 아빠의 촌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후로 전화를 피하다가 결혼을 속행하려는 외할머니를 피해 서울로 (도망)간 이야기, 서울에 내려 큰이모집을 찾아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전재산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고 하는 수없이 하루만에 다시 고향집으로 유턴한 이야기, 외할머니께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아빠가 ‘하나보다는 둘이 생각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제가 이야기해도 엄마와 거진 다르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들었던 레퍼토리지만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의 얼굴에 20대 어느 처녀의 얼굴에 내려 앉은 홍조를 보면 기꺼이 처음 듣는 것처럼 함께 깔깔댈 수 있어요. 앞으로도 수십 년은 거뜬히 할 수 있고요.

그럼에도 현재의 빈자리는 참 쓸쓸합니다. 이 글을 쓰다가도, 또 고치다가도, 모니터를 앞에 두고도 눈물이 자꾸 나서 그때마다 조금씩 울었어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늘 곁에 있어준 존재였는데 이제는 세상에 ‘없음’으로 존재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나를 너무 많이 예뻐해 주었던 사람. 이 정도의 말로는 평생 해도 다 못할 사랑을 주고 간 사람. 나의 늦깎이 학사모를 쓰고 세상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사람. 나의 사계절. 보고 싶은 아빠. 아빠를 추억하는 계절이 올해도 어느덧 곁에 와 있네요. 저도 제 마음을 도닥여 봄 옆에 둡니다. 봄과 함께 아빠도 와 계실 테니까요.

23빈고게시판
최곰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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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마

    엊그제 아빠의 전화 투정(?)에 괜스레 짜증을 부렸는데 한 번 전화 드려야겠어요..

    • 최곰

      우마 님. 너무 부럽잖아요 🙂 히히. 더 많이 조르고 투정부리세요! 꼭이요! 감사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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