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6.04.] 단단담담: (6) 마음을 응시하는 시간

빈고게시판

안녕하세요, 빈고 가족 여러분.
한 주 사이에 다른 계절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가스 요금에, 봄은 대체 언제 오는 건가 쓴소리 했는데 봄이 웬말인가요. 곧장 여름으로 데려다 주는 한낮의 기온이 야속하네요. 사람 마음이 이래요. 이렇게 사부작 바람이 바뀌면 그제서야 가까워오는 줄 아는, 저의 한 계절을 떠올립니다.

책상 앞에 있는 펜꽂이의 과거는 한때 아끼던 컵이었습니다. 몇 가지 펜을 비롯한 문구류와 홍삼스틱 같은 것들이 꽂혀 있어요. 근처에는 연필깎이와 자주 쓰는 3M 테이프가 있고요, 자개 무늬 문진 위에는 반가사유상이 고요한 시선으로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된 아빠를 추억하는 일은 일상 곳곳에 잠복하고 있는 버튼 때문에 갈수록 잦아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점점 잊혀진다고 하는데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슬픔이나 그리움이라는 감정은 흔한 이름값에 비해 크기나 무게가 때마다 낯설어져서 종종 당혹감을 줘요. 문득 귀에 머물다 가는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번쩍 떠올라 일상의 모서리에 겹치는 몇 개의 장면들, 그리고 보고 싶어지는 얼굴, 임종의 순간까지. 현실의 틈을 비집고 등장하는, 이제는 없는 사람의 큰 존재감이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계절. 기일이 가까워지면 조금 더 자주, 구체적으로 다가오네요.

10년 전까지는 아빠 생각을 하는 것이 마치 해서 좋을 것 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빠 생각이 날 때면 조금 단호하게 생각을 떨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저와 또 달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살던 집에서 여전히 살고 계시기도 하고, 그래선지 엄마는 여전히 대부분의 일상을 아빠가 있을 때와 다르지 않게 합니다. 누구보다 없음을 매순간 느낄 엄마가 가끔씩 들려주는 아빠와의 추억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했습니다.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아빠는 다양한 감정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한 편으론 아빠가 살아 계셨다면 두 사람 이제 마주보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시절인데 짝을 잃고 혼자가 된 엄마가 더 안쓰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특유의 넉살로 기꺼이 즐겁게 추억해요. 처음 만난 선자리에서 아빠의 촌스러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후로 전화를 피하다가 결혼을 속행하려는 외할머니를 피해 서울로 (도망)간 이야기, 서울에 내려 큰이모집을 찾아 가는 지하철 안에서 전재산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고 하는 수없이 하루만에 다시 고향집으로 유턴한 이야기, 외할머니께 승낙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아빠가 ‘하나보다는 둘이 생각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살아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제가 이야기해도 엄마와 거진 다르지 않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들었던 레퍼토리지만 그 이야기를 늘어놓는 엄마의 얼굴에 20대 어느 처녀의 얼굴에 내려 앉은 홍조를 보면 기꺼이 처음 듣는 것처럼 함께 깔깔댈 수 있어요. 앞으로도 수십 년은 거뜬히 할 수 있고요.

이제는 세상에 ‘없음’으로 존재하는 사람을 추억하는 계절이 옵니다. 보고 싶은 사람. 나를 너무 많이 예뻐해 주었던 사람. 그 정도의 말로도 다 못할 사랑을 주고 간 사람. 책상 귀퉁이에 나의 학사모를 쓰고 세상 환하게 웃고 있는 저 사람. 나의 사계절. 보고 싶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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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곰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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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마

    엊그제 아빠의 전화 투정(?)에 괜스레 짜증을 부렸는데 한 번 전화 드려야겠어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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