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잔잔입니다.
11월 첫주에 빈고소풍을 다녀와서 후기를 씁니다. 작년 변산반도에 이어 올해 두물머리까지, 두 곳에 소풍을 다녀왔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함께 나눈 대화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당시의 대화들을 나눠야 할 것 같아, 씁니다.
목포에서 출발한 저와 쌩쌩이 가장 늦게 도착했고, 올 해 마지막 두물뭍농부시장이 열렸던 컨테이너에서 운영회의를 마치고 두물머리 강변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유명하다는 연잎핫도그도 먹고요. 걷다가 추워질 때 쯤 블루의 진하고 따뜻한 배달 밀크티를 마시며 저녁노을을 감상하고, 반찬이 맛있는 꿀순이네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중간 중간 두물머리에 살고 계시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기도 했고요.
그리고 연두네 집에 모였습니다. 새집의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에서 아직 이사 중일 거라 짐작했는데, 연두의 이사가 몇 개월 째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집에서 옮기지 못한 짐들로 인해 이전 집도 계약을 연장했다고 했을 때, 누군가 이사를 돕겠다고 했지요. 연두는 두물머리 친구들도 이미 수차례 돕겠다고 했지만 혼자서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올지 정하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했죠. 사실 이사 후 몇 개월 동안 그 물건들 없이 지내고 있으니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결코 쉽게 버릴 수 없는 어떤 것들이라는 것이었죠. 살구와 양군의 증언에 의하면 빈집 시절부터 버리지 못한 물건들의 박스들을 연두는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쓰다 보니 연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그녀는 맥시멀리스트라고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물 받고 사용하지 않는 것, 모아둔 예쁜 마스킹테이프들을 나눔하기도 했어요. 버리지 못하는, 그런데 사실 쓸모없는 물건들은 삶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죠. 그래서 연두는 다락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맥시멀리스트들의 고민과 공감들, 해결안을 제시하는 친구들,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그저 지켜보거나 응원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죠. 그러던 와중에 연두가 작은 목소리로 했던 한 문장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게 없는 건지도 모르지. 멍해지면서도 술이 깨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변산에 살고 있는 바다네로 빈고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맛있는 팥칼국수를 먹고 커다란 스탠드 모니터가 있는 바다네 집에서 운영회의를 하고 사람들이 거의 없는 아주 작고 숨겨진 해변에서 바다유리도 주우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정훈과 현영의 맛있는 두부파스타와 꽃게탕, 꽃게찜, 전어구이, 부침개까지 먹었죠. 아 바다의 커피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이야기들을 나눴던 것 같아요. 기억이 많이 희미합니다만 모두가 굉장히 열띠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바다네 집은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다락방이 있는 곳이었고 제 기억에는 개인적인 짐이 많이 없어 보여서 게스트하우스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왜 이렇게 짐이 없는지. 바다가 원래 짐이 별로 없다고 답했었는지, 아니면 그 질문을 내가 입 밖으로 꺼냈던 게 맞는지도 사실 불분명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 주제 중에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당시 19세기 말 어느 선비의 일기 모음을 보며 흥분하고 있었고 그래서 태양력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시기에 장흥에 살던 선비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게 너무 좋다고 떠들었고, 누군가는 오늘 날짜에 맞는 옛 신문 기사를 보여주는 온라인 사이트에 대해서도 말해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 바다는 기록하거나 모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그 순간에만 집중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했던 것 같아요. 아 제 기억이 잘못되었다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오래 흘러 당시의 분위기와 명확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좋아하는 곳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실 때 그 순간에만 그저 집중하는 것이죠. 사진을 찍거나 어떤 기분인지 생각해 기록하거나 그러지 않고요. 그런데 그 때 저는 띵, 하고 한 방 맞은 기분이었어요.
사실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것. 온전히 즐기는 것의 멋짐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만, 잘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과거의 어떤 것들을 붙잡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반성하면서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놓치고 싶지 않다고 동시에 생각하는 거죠.
저 역시 우리집의 맥시멀리리스트입니다. 겨울에는 러닝용 장갑과 팔목까지 덮는 도톰한 외출용 장갑, 히터없는 사무실에서 사용할 손가락이 없는 핸드워머도 필요합니다. 어렸을 땐 하나만 필요했던 겨울용 장갑이 지금은 세 개나 필요한 사람이 되었어요. 어느 해에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며 아름다운가게에 잔뜩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그게 어디 갔지, 를 연신 외치는 저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옷이며, 물건들의 목록을 만들고 사진도 찍고, 그게 어떻게 나에게 와서 쓰이고 있는지 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이제 잃어버리거나 누군가를 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그러니까 물건을 덜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점과 효율을 떠나 무엇보다 저는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좋았습니다.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결국 이런 기록이 스스로에게 의미 있다, 라고 여기면서 더 강화시키고 있죠.
진짜 중요한 게 뭘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도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닐 겁니다. 그런 걸 이야기하려고 쓰기 시작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냥 이렇게 빈고에서 모여 소풍을 가서 비슷한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영향을 받고 있는 나에 대해서 떠들어보았습니다.
내년 소풍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고요. 소풍을 준비하며 집과 마음을 내어준 연두와 바다에게 다시 고맙습니다. (양평의 연두와 변산의 바다라니, 왠지 시를 써야 할 것 같은 제목이 된 것 같아요, 누군가 써주면 좋겠고요^^*)


고마워요 잔잔
역시 잔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