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5.11.] 양평의 연두와 변산의 바다 (feat. 빈고 소풍 후기)

빈고게시판

 

(수정됨. 후기 추가)

 

 

 

빈집에 살 때부터 늘 짐이 골치였다. 아니 사실 평생 짐이 골치다.

나의 맥시멀리즘은 마치 머리를 땅에 박은 타조처럼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나,

나만은 은밀하게 머리를 땅에 박고 끝끝내 모른 척 하고 싶었는데.  (눙물)

 

물건과 기억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은 나를 평생 따라다닌 숙제였다.

정리의 어려움도 이유겠지만 그보다는 정서와 부동산의 문제가 크다.

(끝없는 자학과 부단한 노력과 고통스런 자기 반성 끝에 내린 결론이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단 한 평의 땅인데. 박스를 가득 쌓아 올려 짐을 보관할 다락방 하나만 있었더라면!

가난한 도시민에겐 추억물들을 보관할 단 한 평 부동산의 여유도 없었다.

그 결핍감이 나를 더욱 피마르게 했다. 다 정리하고 버려야만 한다는 상황이 더욱 나를 집착하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떤 물건이든 쉽게 정이 들어버리는 성격이다.

어떤 물건이든 아직 버려지기엔 아깝다고 생각하는 성격이다.

제 자리를 만나면 빛나게 자기 역할을 할 텐데!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만 하다니. 역시 세상은 부당하다. (응?)

그리고 나는 늘 수치심과 결핍감에 시달린다. 부끄럽고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뇌를 지배한다.

이런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줄, 채워줄 물건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서 내가 그를 발견해 줘야 해!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이유는 묻지 말자. 그냥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형성돼 버렸다.

반 백 살, 이제는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자가 결국 (해결할 수 없는) 셋집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 보겠다며) 네집을 구했다.

(내 지분이 1프로도 없으므로 내집이 아니라 네집이다.)

추억을 운운하며, 물건들의 역할을 운운하며 여유를 부릴 계제가 아니었다.

쾌적한 쉼터여야 할 집이 점점 (잠재적)쓰레기들에 둘러싸여 운신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에게도 쉼이, 회복이 필요하고 집이 그 유일한 기지인데. 이대로는 안 된다.

다락방이 없다면 집을 넓히자. 빚을 내서 집을 구했다.

 

짐에 대한 애증은 빈집 시절 정점을 찍어 빈집을 나오면서 자포자기를 득하였다가

새집을 구한 이후 깊은 성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집을 두 개 가지고도 금세 그 집 두 개를 버젓하게 채워버리는 나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사는 인간. homo emptio 인가?

(라틴어로 emptio가 구입이라서 조합해봤다. 번역해보니 남자구입이란다. 나 이런 사람 아님. 적극 부정하겠다.)

 

아니다. 나는 기억하고 싶은 인간이다. 기억하지 않으면 무너질까봐, 부서져 흩어질까봐, 두려운. 불안한 인간이다.

끝없이 기록하고 반추하고 물건에 기억을 전이하며 그렇게 불안한 나를 그러쥐고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다.

폐허가 된, 이전의 집을 보며 날마다 깨닫는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먹고 자고 숨쉬던 공간인데 나와 반려 생명들의 부재는 집을 폐허로 만들었다.

물건들은 공간에 아무 생명도 불어넣지 못한다.

다만 흩어지고 쏟아져 내려 그 폐허를 더욱 극적인 장소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두 마음이 짓는 일이다. 

 

머리로는 이것을 평생 알아 왔다.

또한 몸이 마음이 따라주질 않아 나의 맥시멀리즘을 저주만 하며 살아온 평생이지만.

이제 폐허가 된 오래된 집, 빛을 잃은 물건들을 보며 날마다 몸에 새긴다.

나는 아마 너희들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아마 괜찮을 것이다.

아마.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_

 

연두와 바다

ㅡ 달연두

 

 

청소를 하다가 파리의 사체 두 개를 주웠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 나가 흙 위에 뿌려 두었다.

고양이가 길에서 죽으면 쓰레기 봉투에 담아 쓰레기 차를 기다린다.

생의 종착이 폐기라는 것이 애닯아 차마 그러지 못한 때가 있다.

연두의 종착은 어디일까.

마찬가지로 흙더미 위였으면 좋겠다.

비릿내 풍기며 태어나 보드랍게 빛나다가 흙더미 위에서 숨쉬며 돌아갈 수 있기를.

어쩌면 바다는 어떨까.

바다의 비린내음과 연두의 비린내가 서로 은밀히 내통해 주기를.

그리하여 연두의 종착이 바다가 되어볼 수 있기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찰랑이는 바다에 닿으면

연두도

조금쯤 출렁일까.

짧은 한 방울 떨구고

기꺼이.

 

연두와 바다는 어쩌면 동색이 아닐까?

그 비린내음.

살아보겠다고 뿜어내는,

품어보겠다고 뿜어내는.

 

 

_

 

잔잔 덕분에 후기도 쓰고 시도 씁니다 🙂

이런 녀석이 자기 어수선한 살림을 공개하고

집에 사람들을 초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상상이 가시나요?

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답니다.

진짜 내 맘 알아주셔야 해 여러분 🥹

그리고 소풍 덕분에 끝내주게 맛있는 김도 만났습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이 김 주고 가신 분,

복 받으세요.

멀리서나마 이렇게 종종 얼굴 보고 소통하니 어울려 사는 것 같고 좋네요.

빈고 친구들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

다음 소풍, 책파티(11.28.)에는 또 누가 오실까.

많이 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추신.

그나저나 자칭 맥시멀리스트 둘이서 후기를 쓴 것도 의미심장 한 것 같네요. 역시 물건 뿐 아니라 마음이…

 

13빈고게시판
연두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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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tball prediction software

    와, 저 집착의 정의를 또 다시 알게 되었네요. 집 두 개를 채워버린 homo emptio라니, 정말이지 부럽습니다. 다만, 저희처럼 집 하나에도 희생자가 몰려드는 homo fragilis에게는 조금은 아쉬울 수도 있겠죠. 물건들에 기억을 전이하며 살아가는 저희에게는 일체유심조라는 명언이 점점 현실감을 떨치고 있네요. 물론, 저희는 아마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마요. 괜찮을 거예요. 😅

  • 잔잔

    출렁이는 연두..멋지네요. 권필의 시 “봄 비 그친 뜨락에 풀빛 짙어가는 건 저들도, 우리와 같아 살아가려는 마음 春雨歇時庭草綠, 這般生意與人同.”이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연두가 아니라 초록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김..저입니다..나눠주신 복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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