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5.11.] 3년차 거주자 햄이 아는 만큼만 소개하는 핀란드 ⑤ 핀란드 교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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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äiväkoti(어린이집)에서의 하루

지난달 학교 근처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견학을 다녀 왔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린 사람과 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상당히 긴장되는 견학이었습니다.

견학 간 어린이집의 하루는 아침 9시에 시작해서 보통 오후 5시 반에 마무리가 됩니다. 9시까지 와도 되지만 8시부터 8시 40분 사이에 오면 아침밥을 먹을 수 있기에, 저희가 도착한 8시 반에는 이미 많은 어린이가 밥을 먹고 놀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집마다 운영시간은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요, 더 일찍 출근하는 부모들을 위해 6시에 문을 여는 곳, 야간 근무를 하는 부모들을 위해 24시간 운영되는 곳도 있습니다. 제가 견학 간 곳은 추가로 밤 10시까지 돌봄을 받는 어린이도 있었습니다. 어린이집은 보통 교사, 사회복지사, 보육사, 도우미, 이렇게 4명이 한 팀이 되어 반을 맡습니다.

견학 갔던 어린이집 벽에 있던 주간 주요 일정표, 일정이 영어로도 쓰여있는 이유는 영어교육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핀란드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보호자를 위한 것입니다.

간단한 소개를 들은 뒤, 저 포함 3명의 조원은 2.5-3세 반의 12명을 만났습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고, 태블릿 영상을 따라하는 아침 체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른들만 헐떡거리는 체조가 끝나고, 체조는 아니지만 체조와 다름없는 춤과 노래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노래 중에는 수어 단어를 배우는 것도 있었습니다(이날의 주제는 ‘아니라고 말해요’ 였습니다, 영상링크). 선생님은 대화하는 도중에 계속 수어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어린이들도 말할 때 곧잘 따라 하고, 의사 표현 시 사용하더라고요. 보조수어라는 것인데, 말할 때 좀 더 집중시키는 효과와 어린이의 서툰 의사 표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보다 말도 잘하고 수어도 잘하는 어린이들은 실컷 뛰어논 다음에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린이집에서는 날씨와 상관없이 오전과 오후에 무조건 1시간 이상의 야외 활동을 해야 합니다. 영하 15도 이하에서는 실내 활동으로 대체 됩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목도리, 우주복 같은 모양의 외출복, 장갑, 모자, 부츠를 착용하고, 어린이집 주소가 쓰인 형광 조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옷을 입을 때 선생님이 거의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3살부터는 혼자 해야 하는 거라고 돕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3살이 되지 않은 어린이도 최대한 혼자 해냈습니다. 한 손에 장갑을 끼고 나머지 손에 장갑 끼는 걸 도와달라고 하던가, 지퍼를 올리다가 마지막에 마무리를 부탁한다던가 하는 식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렸습니다. 밖에 나가기까지 한참이 걸렸고, 1시간 놀고, 돌아와서 다시 옷 벗고 나면 점심시간, 점심 이후에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잠깐 놀다가 간식 먹고 다시 밖에 나가서 놀다 보면, 퇴근한 부모님이 데리러 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또 놀겠죠. 대단한 체력! 부러웠어요 ㅜㅜ)

견학에서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안전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선생님이 뭘 하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못 들었다는 것입니다. (놀이터에서 ‘00야, 돌 먹지 마’랑 ‘벤치 등받이에 올라가지 마’라고 말하는 건 들었습니다) 다 같이 기차놀이를 하다가 흥미를 잃고 옆에 누워있어도, 화장실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도 선생님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견학 간 저희만 당황하는 상황 속에서,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어린이집 방문 경험이 있었다면 좀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어린이보호를 위해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구글에서 ‘päiväkoti ulkoilu’로 이미지를 검색하면 다양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의무교육의 확장

핀란드는 1921년 초등교육(6년) 의무화와 1968년 종합학교(9년제) 의무화를 거쳐, 2021년 가을부터 의무교육을 18세까지 확대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의 의무교육기간(16세까지)보다 긴 것입니다. 의무교육 기간의 확대 전에는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은 취약계층이거나 이주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이 경우 일자리의 질과 임금 수준이 낮아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물론 고등교육 이전의 교육은 모두에게 보장된 권리라서 고등학교나 직업학교로 진학하는 청소년들이 내는 학비는 그때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학비만 없을 뿐, 수업 교재, 점심값, 직업학교의 경우 실습 장비 비용 등은 부담해야 했고, 그 금액이 상당히 컸습니다. 의무교육이 된 후로는 교재·교통비·급식비 등 학교에 다니면서 필요한 비용들은 모두 지원됩니다.

핀란드 교육과정, 그림에서 빨간 동그라미 표시가 된 과정은 제가 수강했거나 수강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okm.fi/koulutusjarjestelma

의무교육은 아닌 유아교육 varhaiskasvatus

한국으로 치면 유아교육이라고 볼 수 있는 varhaiskasvatus는 생후 9개월부터 6세 전까지의 어린이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의무교육은 아니라서 반드시 이수할 필요는 없지만 보통 별일이 없는 한 어린이집에 다닙니다. 어린이집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보육사(lastenhoitaja)가 하는 보육(본인 자녀 포함 최대 4명)이나 어린이집에서 하는 특정 프로그램만 참여하는 방법 등도 있습니다. 의무교육이 아니기에 비용은 내야 합니다. 보호자가 내는 비용은 소득과 자녀 수 등에 따라 다른데, 현재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정의 55%는 무료로 다니며, 내는 가정도 15~20만원 정도의 금액을 부담합니다.

어린이집의 운영은 모두 지자체의 책임입니다(한국은 국비와 지방비 공동부담). 그래서 어떤 지자체는 어린이집을 짓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부모가 집에서 자녀를 돌보면 수당을 주기도 하고, 어떤 지자체는 인구 유입을 위해 어린이집을 추가로 짓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나라라서, 어린이집과 초중등 학교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원래 18세 이하의 자녀가 있는 가구는 자녀 수에 따라 국가에서 수당을 받습니다. 앞서 말한, 부모가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볼 때 주는 수당은 지자체에서 추가로 주는 것인데, 얼핏 보면 좋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보통 집에서 돌봄을 하는 사람은 부모 중에 엄마인 경우가 많아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가져오기도 하고, 핀란드어나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여성들이 가정에 고립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의무교육의 시작, esiopetus

6살이 되면 매일매일 신나게 놀았던 어린이집을 떠나 유치원에서 esiopetus(예비교육)를 1년간 받게 됩니다. 어린이집은 의무가 아니지만 예비교육은 의무이기 때문에, 보호자는 반드시 어린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합니다. 보통 유치원은 어린이집이나 초중등학교와 함께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보내는 4시간 동안 어린이들은 수학, 자연환경, 미술, 체육 등을 배웁니다. 그렇다고 덧셈 뺄셈을 연필을 잡고 계산하는 건 아니고요, 피자 만들기 수업을 하면서 ‘피자를 반으로 나누면 몇 조각이 될까, 그 다음에 또 반으로 나누면 총 몇 조각일까’ 같은 방식으로 숫자를 배우게 됩니다. 알파벳 대문자를 배우기는 하지만, 읽기와 쓰기를 배우지는 않습니다. 읽기와 쓰기를 하지 못하는 상태로 1학년이 되면 학습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를 초등 자녀를 둔 같은 반 학생에게 물어봤었는데, 완전 처음부터 배우기에 읽고 쓰지 못해도 어려움은 없었다고 알려줬습니다.

교육의 방향

다른 나라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핀란드의 유아교육은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와 여성의 사회진출이라는 두 흐름 속에 변화해왔습니다. 일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집의 운영시간이 길어졌고 어린이집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어린이를 능동적인 학습자로 대하면서 교육 체계와 돌봄의 방향이 결정되었고, 어린이집은 단지 보호자가 일할 때 아이를 맡겨놓는 곳에서, 어린이에게 필요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졌습니다.

유치원까지의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것, 모두가 똑같은 방식과 속도로 도달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감각을 배우는 것, 안전을 경험하는 것, 독립성을 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핀란드 교육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지만, 연수로 와서 보고 가거나, 사용하는 교재를 연구하는 거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도 문화의 일부라서 학교 안에서의 배움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성취의 영역이 있는 것 같고요. 여기서 직접 경험하며 느낀 것은, 핀란드 교육은 어린 존재를 단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와 문화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7세~18세들이 받는 의무교육에 대한 소개를 하려 합니다. 제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교육이기도 해서, 입시교육 그 자체로 살아온 저의 개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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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교육을 받는 대상에 집중해서 글을 쓰다보니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현실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습니다. 핀란드도 성별 임금 격차가 큰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같은 직종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돌봄 노동 서비스 부분을 여성들이 담당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나타납니다 (직종별 성별 분리에 의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83% 수준입니다). 특히 유아교육과 간호는 여성 노동자가 많고, 노동의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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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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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구

    선생님이 꿈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면 어때야할까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어서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아이들이랑 지내는 것은 여전히 즐거운 일로 생각되서, 핀란드의 아이들이 뛰노는 걸 마구 상상하면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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