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졌어요 - 공동체은행 빈고 노래
작사/작곡 - 오재환
우린 서로가 서로한테 멀쩡해 보일 정도는 되어서
멀쩡한 사람을 만나서 제법 멀쩡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집에 돌아온 뒤에야 뭐를 잊은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통장에 적힌 숫자를 보며 남은 날들을 세어 보아요.
이게 얼마나 되어야 내가 안심할 자격이 되는 건가요.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에 덜컥 겁을 먹고 내가 가진 것들을 떠올리다가
내게 무엇이 필요했고 또 필요가 없었는지를 전부 잊은 것 같아서
우린 함께 모여서 새로운 미래를 기억해 내기로 했어요.
우린 서로가 서로한테 버림 받고 싶지는 않아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매우 성실한 상환을 약속을 하고
미리 써버린 날들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나한테 매겨진 등급을 보며 벅찬 내일을 상상했어요.
무슨 생각을 하고서 내게 이 정도 자격을 허락했나요.
시간이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틀어 막고 내가 갚을 것들을 떠올리다가
내가 무엇을 책임지고 또 부탁해야 했었는지를 전부 잊은 것 같아서
우린 함께 모여서 오래된 빚을 기억해 내기로 했어요
나는 미래를 살 수 없어요. 우린 우리의 미래를 팔 수 없어요.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는 사람들에 더는 속지 않아요.
나는 더 이상 빚지지 않아요. 우린 원래 서로에게 빚을 졌어요.
자격을 잃고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에 빚을 졌어요.
(201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