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일에 있었던 수유+빈고 수다회에 가져갔던 자료입니다.
앞부분만 부족하나마 이번에 준비해본 거구요...
나머지 자료는 과거에 있던 자료들을 첨부했습니다.
아. 빈고 게임 1,2는 이번에 생각해 본 건데... 재밌었는지는... ㅠㅠ
대략 그동안의 빈고 자료를 정리한 의미는 있겠네요.
<꼬뮨은 자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빈마을금고 취지문(초안)>
<빈집과 반자본운동>
<11월 5일 Occupy Bank! 전세계적 은행전환의 날 운동에 동참합시다!>
<돈 없이 살 궁리>
<집 공유하기, 가족 되기>
<주거비를 아끼는 이유>
<전세에서 월세로, 빈집에서 해방촌으로...>
<해방촌 프로젝트>
<빈고 게임 1>
<빈고 게임 2>
초대해주신 수유R 분들...
멀리까지 와주신 조합원분들.. 손님들...고맙구요.
버벅대는 발표 끝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ㅠㅠ
앞으로 더 자주 보고... 더 얘기해요.
아.... 아래 글에서
0-1은 고미숙 선생님
0-2는 이진경 선생님
0-3은 고병권 선생님
의 글을 발췌 인용한 겁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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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2 수유 + 빈고 수다회
꼬뮨은 자본을 어떻게 할 것인가?
0-1.
“대형 아파트는 날로 늘어나건만 청년백수나 인생초짜들은 점점 더 살 데가 없어진다. 큰 집에 사는 이들은 우울증에 빠지고 집이 없는 이들은 궁상에 찌드는 이 기막힌 현실! 여기에 맞서는 최상의 전략이 바로 더부살이 프로젝트다. 원리는 간단하다. 택도 없이 비싼 원룸이나 궁상맞은 고시원 쪽방이 아니라, 서너 명씩 혹은 10명 이상씩 팀을 짜서 같이 사는 것이다. 돈도 절약될 뿐더러 주거 공간의 질도 아주 높아진다. 거기다 친구들까지 생기니 금상첨화 아닌가.
보증금만 해결되면 월세는 멤버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 나 같은 스폰서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물론 이익이다. 천만 원으로 이렇게 많은 청년들의 숙소가 마련되는데, 이보다 더 멋진 돈의 용법이 어디 있겠는가. 천만 원을 은행에 저축했을 때 돌아오는 건 약간의 금리 뿐이다. 하지만, 이 돈을 더부살이에 쓰면 하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12명의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이. 여럿이 같이 사는 공동주택들이 서로 연결되면, 그것이 곧 마을이다. 일단 마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개별 주거공간은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다. 이것이 야기하는 경제적 효과는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엇보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마음 놓고 묵어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는 뜻있는 중년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꼴랑 서너명의 식구가 4,50평 넓은 집에서 살지 말고 알맞은 평수로 줄인 다음 그 차액으로 주변의 청년들이나 독신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운영해 보라고. 그게 아니면 두 세 가족이 공동으로 집을 마련해서 함께 사는 것도 좋겠다.”
0-2.
“이런 점에서 “월가를 점령하라!”고 외치며, 1%의 돈과 권력을 비판하며 시작된 뉴욕의 시위는 지금 자본주의와 경제위기의 이러한 본질을 정확하게 겨낭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시위와 투쟁이 단지 뉴욕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금융자본가들을 향해 확대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 역시 현재 상황의 요체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월가’로 상징되는 전세계 금융자본가들이야말로 지금의 위기의 주범이면서,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로 막는 최대의 적이다. 또한 이 위기 상황에서도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는 것은(한국의 은행들이 작년에 남긴 이윤은 10조2천5백만원이었다!), 이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개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흡혈귀 같은 착취자임을 입증한다.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죽음, 그것은 모든 이의 죽음이 아니라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는 사건일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금융기업에 쏟아부을 돈이 있다면, 그걸 직접 우리들을 위해 사용하라고 말해야 한다. ‘월가를 점령한다’는 것, 그것은 그들 금융자본가들이 선 자리를 점령한다는 것이고, 그들이 만든 거품의 힘을 점령한다는 것이며, 그들이 행사하는 힘을 제압하고 점령한다는 것일 게다. 다시 찾아온 죽음의 신 앞에서, 돈과 자본에 점령된 자들이 아니라 그것을 삶을 위해 쓸 줄 아는, 삶의 기쁨을 위해 이용할 줄 아는 광대가족들처럼 현명하게 빠져나가 살아남아야 한다. 월가를 점령하는 것은 지금 이 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0-3.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 우리 모두 ‘돈 없이 살 궁리 좀 해보자’는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해 두자면, 나는 사장한테 받아야 할 월급이나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복지 수당은 악착같이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마땅히 내놓아야 할 돈을 줄여주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집 장만한답시고 인생을 대출이자와 바꾸고, 연구비 없어 공부를 접고, 대관료 없어 작품을 묵히고, 돈 없어 공연을 못 보는 현실이다. 일부는 고립된 채로 잘 살고 다수는 가난한 채로 고립되어 있는 이 이상한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복지 수당을 요구하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돈에 더 적게 의존하는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돈으로 살 길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돈 있는 사람만 살 수 있게 된다. ‘웰빙’조차 돈으로 사야 하는 현실에선 돈 있는 사람만 ‘웰빙’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돈에 대한 내 결론은 간단하다. 돈 벌어 살 궁리하는 것보다 돈 없이 사는 게 우리 모두가 살 궁리라는 것.”
1.
우리는 꼬뮨주의자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반대한다. 자본이 우리의 힘을 빼앗는 것에 반대한다. 자본은 우리의 힘을 빼앗아 점점 더 그 힘을 키운다. 우리는 자본가를 혐오한다. 자본은 무엇보다도 그 소유자를 자본의 담지자, 즉 자본가로 만든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힘, 우리를 끊임없이 자본가로 만들고야 마는 그 힘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유물론적이기 때문에 단지 자본주의에 이성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반자본주의자가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기뻐할 수 있을까?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반자본주의자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삼성에 노조가 생기는 것을 찬성할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한미FTA를 거부할 수 있을까?
중국 펀드를 소유한 사람이 중국의 고속성장에 따른 폐해를 걱정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나는 자본가가 아니라고 위안해도 좋을까? 과연 그럴까?
2.
좌파가 주식투자를 해도 좋은가? 라는 질문이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좌파의 윤리, 좌파의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지적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좌파는 반자본주의자는 자기의 자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은행에 넣어두면 좋은가? 장롱에 넣어두면 좋은가? 누군가에게 줘버리면 좋은가? 아예 갖지 않아야 하는가?
스스로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자본의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단지 회피하기란 쉽지 않다. 돈 문제는 신경쓰지 않고 은행에 넣어둔다? 은행에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돈의 출처를 묻지 않는다. 보통예금이든 정기적금이든 펀드든 최대한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곳에 투자될 뿐이다. 그리고 그 수익금의 분배방식의 차이가 생길 뿐이다. 나는 잠시 여유분을 보관해달라고 했을 뿐 재벌기업에 투자하라고는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할 수 있나? 어려운 사람들에게 투자해달라고 할 수 있나? 같은 이유로 장롱에 넣어두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 자본을 파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는 할 수 있지만 자본이 없어진 자리에 무엇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현명하지 않은 자본가에 가깝다. 누군가에게 주는 것? 자신은 자본가에서 벗어나겠지만, 이제 상대방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당신이 돈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자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좋을 것인가? 돈을 주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기란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다. 노동하지 않는 것? 정말 좋은 선택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본이 아닌 다른 안전망이 필수적이고, 또 그렇게 비굴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노동을 한 이상, 자본으로부터 최대한의 임금소득을 쟁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소비를 최소화해서, 자본이 우리의 돈을 뺏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최대한의 소득을 얻고,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남은 차액은 어떻게 되는가? 저축을 한다. 예비비는 항상 필요한 것이므로 좋은 일이다.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되도록 안정적이고 되도록 높은 수익을 주는 곳으로? 현명한 자본가의 선택이다. 우리의 돈은 곧 자본이 된다. 이 자본은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여기서 기로에 선다. 이 기로에서 현명한 자본가와 꼬뮨주의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3.
이미 우리는 돈을 벌고 착실히 모아서 자본을 만들고 자수성가하는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청년들은 이미 자기 노동으로 돈을 벌어서 부모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 청년들은 이미 자기 돈을 모아서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월급을 모으고 아껴서 부자가 된다라는 기대를 누구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의 자본을 어떻게 상속받을 것인가? 부모가 남긴 자본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이미 있는 자본을 어떻게 현명하게 관리하고 투자해서 살 것인가? 어떤 보험을 들어서 위험과 불안정성을 해소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우리에게 더 가까운 질문은, 저축을 못하고 살아도 괜찮을까? 큰 돈 나갈 일이 생기면 어쩌나? 어디서 돈을 빌릴 것인가? 있는 부채를 어떻게 상환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다.
이미 문제는 수입과 지출이 아니라 자본과 부채다. 경제가 어렵다. 소비할 돈이 부족하다. 지출을 줄여야 한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차이는 각자가 가진 자본과 부채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각자가 가진 자본과 부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자본의 힘을 키우고, 자본 수익을 늘려서 돈으로부터 해방될 것인가?
자본의 힘을 줄이고, 자본 수익을 나눠서 돈으로부터 해방될 것인가?
우리의 삶의 방식과 지향이 갈라지는 중요한 차이는 여기에 있다.
4.
100만원짜리 월세집에 사는 사람과 1억짜리 전셋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
1억짜리 전셋집에 사는 사람의 주거비는 얼마인가?
0원. 맞나?
전세 보증금은.... 집 주인에게 집을 빌리는 조건으로 잠시 맡겨뒀다가 돌려받는 돈이다?
천만에! 전세보증금은 자신의 자산을 부동산에 투자(투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함으로써 자본수익을 얻는 가장 보편적인 불로소득을 얻는 투자행위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동산 투자 자본수익의 전액을 그대로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소비행위이다.
지극히 구조적인 투자행위와 소비행위의 결합.
1억을 부동산 시장에 투자해서 월 100만원의 불로소득을 벌고, 동시에 100만원을 소비하는 셈이다.
우리는 남는 돈도 없는 것 같고, 쓰는 돈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본의 소유자이자 채무자이며, 합리적인 투자자이며, 상당한 소비자로서 자본의 흐름 속에 들어와 있다.
이대로 좋은가?
5.
자본가를 위해서 노동하지 말고
자본가를 위해서 소비하지 말라
월급쟁이나 자영업자로 사는 건, 회사와 국가와 은행 좋은 일만 할 뿐이다.
노동하지 말고, 소비하지 말고, 교육받지 말고, 세금내지 말고, 저축하지 말고, 이자내지 말라.
남들이 짜놓은 판에서 애써봐야 뻔히 남들에게 돈 뺏겨가며 살 수 밖에 없다.
나의 부채는 다른 사람의 자본이다.
누구의 말일까?
반대로 나의 자본은 다른 사람의 부채이다.
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통제해서, 차액을 자본으로 현명하게 투자하라.
남들이 자기를 위해 돈을 벌어주는 시스템을 고안하라!
뺏기며 살지 말고, 뺏으며 살아라!
결론이 맘에 들지 않는가?
자본가가 돈을 뺏는 것이 좋지 않다면, 자본가에게 돈을 뺏기는 것은 좋은가?
다른 선택은 있는가?
6.
반자본주의자들조차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자본.
반자본주의자들 조차도 합리적인 자본가로 행동하게 만들어버리는 자본의 힘.
반자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원죄에서 어떻게 구원될 수 있을 것인가?
꼬뮨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본과 부채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꼬뮨은 자신의 자본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자신의 자본에서 발생한 수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까?
자신은 1000만원을 출자하고, 1만원을 출자한 사람과 같은 권리를 행사해도 좋을까?
자신의 전세 보증금을 빼서 다른 사람의 보증금에 넣을 수 있을까?
자신의 보증금을 빼서 마을 공공의 공간에 투자할 수 있을까?
친구에게 빌려 주고 잊어버릴 수 있는가?
은행 이자보다 적은 이자만을 주는 신용협동조합에 투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이것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7.
어차피 돈으로 돈 벌기는 쉽지 않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뺏기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어차피 작은 이자율의 차이는 무시할 수 있다.
어차피 돈이 버는 돈은 애초부터 없었어야 할 것, 꼬뮨의 구성을 방해하는 힘이었을 뿐이다.
어차피 우리는 돈이 별로 없다.
어차피 우리는 꼬뮨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본이 없다고 못 살 것은 없다.
다만 문제는
자본의 급속한 소멸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것,
자본을 천천히 소멸시켜가면서 동시에 공유지를 넓혀가는 것,
자기 자본에 의지하고 있는 삶의 불안정성을 꼬뮨이 보완하는 것,
꼬뮨이 변질되거나 실패했을 때에 개인이 받을 타격과 위험성을 줄이는 것,
수익을 공유하는 것이 자선이나 시혜나 부채를 안기는 방식이 아니게 하는 선물의 기술을 배우는 것,
강제나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기쁘고 자발적인 선택으로 자기 자본을 공유하는 것,
하찮은 돈 계산에 지나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는 것.
큰 틀에서 재정원칙을 정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자본의 힘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8. 빈집의 재정고민
• 보증금을 유무 다소에 무관하게 어떻게 동등한 주인으로서 함께 살 것인가?
• 많이 낸 사람은 어떻게 손해보고 아깝고 인정받겠다는 생각을 지울 것인가?
• 적게 낸 사람은 어떻게 주눅들고 미안하고 책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것인가?
• 당장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 손님에게 돈을 얼마를 어떻게 받는 것이 좋을 것인가?
• 잉여금은 누구의 돈인가?
• 집이 여러 개가 되었을 때 각 집의 월세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 집 간에 사람의 이동이 가능할 때 보증금의 이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 계약 이후에 보증금을 빼야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
• 계약 이후에 보증금에 출자하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 구성원들이 유동적인데 어떻게 안정적인 계약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 가족 같은 사람이 아닌 사람들, 다른 집 사람들과는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인가?
•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 각자의 재정상황은 프라이버시의 영역인가?
9. 빈고의 돈 움직이기
• 자기 집 보증금에 출자하는 것이 아니라 빈고에 출자한다.
• 저리로 빌릴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빌려서 빈고가 대신 차입하게 한다.
• 집이나 공간을 구할 때는 같이 살 사람들과 빈고로부터 다시 대출받는다.
• 빈고와 함께 분담금을 정하고 같이 살 사람들과 모아 낸다.
• 전월세 계약과 독립적으로 보증금을 자유롭게 뺄 수 있고, 또 넣을 수도 있다.
• 출자한 금액과 무관하게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 출자한 금액과 무관하게 동등한 조합원으로서 집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 각 집의 분담금 및 개인 분담금을 원칙과 합의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 여유자금은 조합원들의 상호부조에 이용할 수 있다.
• 고리의 채무가 있는 사람은 빈고가 대신 갚아주고 이자 지출을 빈고로 넘긴다.
• 공동의 비상금을 운영해서 단기간 쓰고 다시 넣어둔다.
• 은행예금에 넣어두느니 출자를 하면 전체적으로 훨씬 높은 이율, 개인적으로 괜찮은 이율.
• 저리로 빌릴 수 있는 돈은 적극 활용한다.
• 공동체 사업과 행사에 돈을 융통하거나 지원할 수 있다.
• 잉여금은 지역사회와 지구와 다시 공유한다.
• 출자자에 대해 적절한 지지/배당을 할 수 있다.
• 배당금을 다시 빈고에 남겨서 공동의 기금으로 운용할 수 있다.
• 차입 또는 출자 이벤트 등으로 은행 이율 이상의 이율도 얻을 수 있다.
• 차입한 돈의 경우 이자를 늦게 지불하거나 원금을 손실한 경우는 없다.
• 안정적인 운영과 적지 않은 잉여금을 남기고 있다.
10. 신용협동조합으로서의 빈고의 특징
• 전재산의 대부분을 출자한 조합원들이 많다.
• 자본 수익과 배당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운용하고 최대한 공유하면서 자본을 서서히 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 자산의 90% 이상을 빈집, 빈가게, 공동체 전월세보증금에 대출하고 있다.
• 출자 배당이 은행이율보다 낮다.
• 예금 적금 상품이 없다.
• 예대마진 3%
• 외부 지원이 없다. 반대로 외부에 잉여금의 10%를 지구분담금으로 낸다.
• 상근자 없음, 최소 운영비.
11. 지금 빈고는
• 빈집을 위한 빈고. 빈집이란 무엇인가? 빈집을 넘어서기.
• 공동체 공간 대출의 확장
• 전세에서 월세로
• 빈집에서 해방촌으로
• 공동체 주거공간과 모임공간 보증금을 공유하는 주거협동조합으로
• 공동체들의 연대와 상호부조를 위한 공동체은행으로
•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조직으로 체계화하기.
• 교육 프로그램 만들기.
• 홍보 방안 만들기.
• 출자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 제공하기.
• 정관 규약 등 정비하기.
• 조합원 활동을 활성화하기.
• 일꾼 키우기.
• 빈고에서 확장된 형태로 개편 / 개명
12. 수유+빈고?!
• 조합원 가입
• 출자
• 대출
• 운영회의
• 연구/교육
• 꼬뮨네트워크
• 해방주거협동조합
• 돈으로부터 해방된 마을, 해방촌 만들기
• 해방촌장
13.
잉카. 화폐가 없었던 문명.
공동창고에 일해서 같이 모으고, 필요할 때 갖다 쓴다.
구체적인 양의 계산과 기억은 불필요하다.
돈의 경우는?
번 돈은 한 데 모은다. 필요할 때 갖다 쓴다. 불가능한가?
14.
다람쥐는 겨울을 대비해서 열심히 도토리를 모으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상징이다. 개미와 함께 저축을 잘하는 현명한 동물의 대표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실제로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아서 수십 곳에 저장해 두는데, 대부분의 장소를 기억하지 못해서 찾아 먹지 못한다. 이걸 보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먹지도 못할 것을 모으는 다람쥐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다람쥐가 모아둔 도토리는 숲의 다른 동물들이 소중한 양식이 되기도 하고, 싹이 터서 새 도토리나무로 자라나기도 한다. 다람쥐야 말로 숲을 키우고 생명을 보듬는 숲의 경작자이자 살림꾼이다. 다람쥐의 훌륭함은 일을 열심히 하고, 저축을 잘 하고, 잘 나누는데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단순함과 무심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
15.
우리나라의 장래의 평화와 번영은 땅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따라 좌우될 것이다. 만일 땅을 소유한 사람들이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토지 개혁을 위한 올바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대안은 피의 혁명밖에 없게 된다.
사람들이 땅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땅을 내어 놓으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안 가는 곳이 없다. 가난한 자의 오두막뿐만 아니라 부자들의 궁전도 찾아간다.
만일에 내가 지주의 친구로서 그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가지고 그가 가지고 있는 100에이커 중에서 50에이커를 내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이 그를 해치는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곧 그에 대한 나의 진실한 사랑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만일 그가 이전의 방식대로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비만한 친구에게는 몸무게를 줄이라고 충고하는 것이 그에 대한 선의와 우정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납득시킬 것이다. 이는 너무나 마르고 여윈 친구에게 몸무게를 늘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또한 의무인 것과 같다. 비만한 사람은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종래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나는 적선을 구걸하는 게 아니다. 만일 내가 땅 대신에 가난한 자들에게 조리된 음식을 준다면, 그 일은 분명히 그들을 비굴하게 만들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당연스레 물을 요구하고, 물을 얻어도 비굴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땅을 받는 일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헌납자는 기부를 받아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땅을 받는 것이지 곡식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노동을 해야만 수확하게 된다. 그래서 땅을 받는 자는 어떤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느낄 이유가 없다.
- 비노바 바베, <<버리고, 행복하라>> 중에서 발췌
댓글 2
지음 고생 많았어요. 많은 분들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초청했으면서 정작 우리쪽에서 준비가 많이 부족했어요. 말하는 입은 많았던 반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참 적었지요. 가만히 지켜보거나 앉아서 들을 줄 아는 능력을 좀 길러야겠어요. 빈집의 상황과 조건에서 비롯된 고민에서 빈고가 만들어졌던만큼 이 점 또한 지식이 주가 되는 공동체라는 상황과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알에서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요. 저는 그게 제가 분투해야 할 상황의 일부라고 여기고 있어요. 다음에는 조금 더 좋은 만남이 되도록... 되도록... -ㅎ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