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2일 여섯번째 책읽기 모임이 해방촌 온지곤지/빈고 사무실에서 열렸습니다.
파스, 디디, 서원, 소연, 지음 5명이 모여서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의 후반부를 함께 읽었습니다.
다음 책은 네그리와 하트의 <선언>을 같이 읽습니다.
장소는 레드북스, 요일은 화요일로 변경되었으니 착오없이시길 바랍니다.
다음 빈고 책읽기모임 (7회차)
- 시간 : 2018.07.17 화요일 7:30
- 장소 : 서대문 레드북스
- 함께 읽을 책 : 네그리 & 하트, <선언>
- 문의 : 빈고폰 010-3058-1968
- 모임 소개 : 2018 공동체은행 빈고 책읽기모임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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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p
커먼즈에 대한 충분한 논쟁은 두가지 협소해진 사고방식들로 인해 방해를 받는다. 하나는 1790년대로 돌아가서 낭만주의 운동에 반대한 사고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20세기 공산주의 운동에 반대하여 발전한 사고방식이다. 첫째는 유토피아를 조롱했고, 둘째는 전체주의를 비난했다. 하나는 어리석은 모든 것을 딱하다는 듯이 가리키는 용어가 됐고, 다른 하나는 끔찍한 모든 것을 거창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커먼즈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사고방식들이 부적절했다. 그런데도 이 사고방식들은 정신을 편리하게 식민화했고 논쟁이 시작될 필요가 있는 곳에서 논쟁을 차단했다.
"평민 남성들에게서 고르게 발견되는 훌륭함은... 노동, 고통의 경험들을 통해서 그리고 주된 인간관계들을 통해서 발전된, 도덕적 정신적 속성들에 있었다." 평민 남성은 평민 여성과 그리고 공유지와 분리되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었다.
커먼즈가 파시즘의 민족주의적 안개 속에서 온통 희미해졌을 때, 커먼즈는 생계를 제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반을 상실했다. 오히려 국가가 생계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영국의 복지정책, 미국의 뉴딜 입법, 소련의 5개년 계획의 약속들, 혹은 국가사회주의.
커먼즈를 마치 천연자원인 듯이 말하는 것은 최선의 경우에라도 뜻을 오도하며 가장 나쁜 경우에는 위험하다. 커먼즈는 활동이며,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를 표현한다. 이 단어를 명사로 사용하기 보다는 활동을 나타내는 동사로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함정이다. 자본가들과 세계은행은 우리가 커머닝을, 가난을 사회화하는 수단으로, 따라서 부를 사유화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과거의 커머닝, 즉 우리의 선조들의 노동은 자본의 형식 속에 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이 또한 우리의 구성체의 일부로서 되찾아져야 한다. '나라 공동체 전체'에 자유를 허용하는 61조는 슬럼들, 경비원이 문에서 출입을 감시하는 주택단지들 그리고 끝없는 테러가 존재하는 이 지구의 현실에 대한 저항의 권리를 부여한다.
저 지구 공동체에 기여하는 주체, 아이디어들, 그리고 기꺼운 태도와 관련하여 세 가지 제안이 나온다. 첫째, 현재 지구상에는 절대적으로보나 상대적으로보나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역사의 종말'을 떠들어대는 그만큼 모든 계급을 폐지할 수 있는 계급이 바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담지한다. 둘째, 도시에서 정원을 가꾸는 데서 대륙 간의 석유 교환, 실제적인 자율적 코뮤니즘의 노력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에서 커머닝의 활발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부를 공유하고 공동의 자원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셋째, 미국 제국주의와 교전하는 전투적 운동이 존재한다. 이 세 제안은 방관하면 패배나 재난이 오기 때문에 우리가 일어나서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자유헌장들은 아쉬움이나 향수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중세 찬미의 복구를 요구하는 것도 분명히 아니다. 물론 이 헌장들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는 아니다. 다만, 이 헌장들은 우리가 우리의 약속들을 이행하는 것을 도울 준비가 늘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