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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시장은 반순환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안정화하려는 내부 속성이 있다. 즉 물건값이 오르면 그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적어지고, 그 때문에 가격상승이 둔화된다. 그리고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일반적으로 바닥까지 추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싼 가격의 물건을 사려는 새로운 구매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금융시장은 선순환적으로 반응한다. 민스키는 이러한 선순환적 반응의 치명적인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
민스키는 오래 지속되는 호경기 속에서 어떻게 자금조달의 습관이 '위험성이 없다'가 '위험한' 방향으로 옮겨가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오래 지속되는 시스템의 안정성은 그 자체적으로 불안정성의 결과를 낳는다. "금융시스템은 그 기반이 승부를 알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에 내적으로 불안정하다."
투자자들은 투자를 함으로써 자산을 불릴 수 있고, 시장이 호경기를 이루면 이윤은 증대되고 대출이자는 하락한다는 사실을 오랜 기간 동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대출을 받아 투자자금을 마련하기로 결정한다. 따라서 그는 훨씬 더 큰 자본을 굴릴 수 있게 된다. ... 그는 스스로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언제 시스템이 불안정한 적이 있었던가? 투자자는 그것을 기억할 수가 없다. 다른 투자자들도 이와 비슷한 행동을 취한다. 그들은 모두 더 이상 자기자본으로만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융자금으로, 그것도 단기대출금으로 투기를 한다. 초기에는 물론 모든 것이 잘 굴러간다. 정확히 말하면 최상의 경우에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민스키는 이를 두고 이렇게 설명한다. "자금조달이 투기목적으로 넘어가는 동안 전체적으로 이익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자금을 대출해주거나, 받은 사람은 그들의 결정이 결국 투기목적의 자금조달을 위해 한 것이다. " 그러나 시스템은 건전하던 상태에서 점점 취약한 금융위기 구조로 밀려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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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의 사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속임수가 즉시 나타나지 않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은행은 고객의 즉각적인 신뢰상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두번째는 귓가에 속삭이는 유혹이다. 물론, 단순히 몇 천이 아니라 수십억을 벌어다줄 수 있다고 하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우리 경제의 내적 방식의 결과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상품시장과 달리 금융시장은 냉각장치 없이 작동할 때 대형사고가 발생될 수 밖에 없는 원자력 발전소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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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너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1970년대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이 결합한 이후부터 자본의 지배력은 완전히 굳건해졌고, 특히 미국에서는 임금상승을 매우 효과적으로 압박했다. 국가의 긴축정책이 도입된 것이다. 국가는 여러 번의 세금감소로 이익을 얻었다. 기업 규제는 점점 완화되었고, 반면에 노조는 약화되었다. 세계 자본의 흐름은 더욱 자유로웠고, 다국적 기업과 은행들은 그들의 활동을 위해 세상을 이윤창출이 가장 많은 곳으로 몰고 갔다. 금융시스템은 고삐가 풀렸으며, 돈으로 돈을 벌고자 매우 왜곡된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위하여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더욱 심각하게도 자본이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 정도와 예전의 자본주의적 국민경제의 생산력이 점점 저하되었던 속도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자본가는 승리했을지 모르나 그 승리는 '자본주의가 이룩한 피루스(그리스의 에피루스의 왕 피루스가 로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잃은 것이 더 많음을 의미함)의 승리'였다. 기업들은 임금상승의 억압과 복지재정의 감축으로 이득을 보았지만 기업이 이것을 통해 얻은 이윤은 적은 주문, 적은 고용, 미미한 자본부담절감, 판매부진으로 인한 매출감소로 상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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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난 10년간 어마어마한 가계채무를 통하여 소비의 수준을 억지로 유지했고, 이로써 미국이 2007년까지 세계경제의 동력으로 머물 수 있었다. 영국의 사회역사학자 콜린 크라우치는 이러한 예를 '개인화된 케인즈주의'라고 비꼬았다. 여기에서 개인화는 국가가 일차적으로 적자지출, 즉 적자재정에 의한 경기부양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채무를 통한 가계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말한다. 결국 많은 미국 가계의 과도한 빚은 그 가능성에 재갈을 물리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독특한 케인즈주의는 단순히 개인화된 것만은 아니다. 고질적인 적자재정과 더불어 서유럽 복지 선진국가들의 적자 재정정책도 동일한 효과를 거두었다. 모든 경우에 그러한 조정이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늘어나는 채무상황은 금융시장에서 늘어나는 자산과 맞서 있다. 반면에 경제성과는 침체되거나 매우 느리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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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성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1인당 경제성장률, 즉 생산성과 기술발전, 그리고 생산의 확대에 의한 '실질 성장'은 지난 200년 동안 연간 1%를 넘은적이 드물었고, 대부분 0.5 내지는 0.6% 미만이었다. 현실세계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항상 느리다고 피케티는 지적한다. 다만 1950년 후 몇 년 동안 현저하게 높았을 뿐이다. 이 때의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원인 가운데 절반은 인구가 급속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높은 인구의 성장은 두 배의 평등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즉, 그것은 높은 경제성장의 결과를 만들어냈고 부의 집중의 제동을 걸었다. 왜냐하면 셋 내지 네 명의 자녀가 있는 사회에서는 많은 유산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지고 이로 인해 세대 간의 부의 집중을 막을 수 있었다. 부동산이 아니고 동산일 경우에 여러 자녀들에게 동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높은 생산성의 성장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 통계학적 요인이 더이상 아무것도 성장에 기여하지 못했다. 잘라 말하면 우리는 이제 느린 성장의 체재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 경제 상태에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1%가 넘는 성장률에도 기뻐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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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갤브레이스..."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삶의 표준을 위한 '실제의 ' 장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 기술은 무엇보다도 비용을 줄이고 영세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시장의 몫을 빼앗아가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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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제가 오로지 거래, 이윤, 돈, 물질적 풍요 그리고 이로부터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자조그룹, 역할교환, 협동조합, 창조적 아이디어, 이타주의적 후원프로그램과 또 다른 경제의 형태는 비경제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쓸데없는 짓으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의 자기만족 내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자 하는 연대의식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잘 못 이해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프로젝트들이 우리에게 구조의 길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의 이 프로젝트들을 우리가 잘 어루만져주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발전시켜야만 정부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악한 신자본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프로젝트도 방지 장치도 아니라고. 오히려 이것은 변하는 과정의 새로운 삶의 모습이며 상호협동적인 생산을 위한 새로운 길을 마련해 줍니다."
영국의 경제전문 저널리스트인 폴 메이슨은 말한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이 세상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수입과 사회적 지위, 지도적인 위칭 따라 자신들의 직업을 택하지 않는 예를 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적성에 맞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워크플로(workflow) 와 같은 개념은 오늘날 매니지먼트 분야에서는 매우 일반적이다.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묘한 감정의 집중을 의미한다. 직업에서의 '자기실현'과 '독창성'은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면서 공동작업을 즐겨하는 사람,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고 같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대신 집세를 내고 먹고 사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면 낮은 임금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도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과 권력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제 무의미하다. "네트워크로 구성된 경제 안에서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