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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가라타니 고진, <<유동론>> 1 (~p.118) 中

  • 담묵
  • 작성일시 : 2019-11-05 15:06
  • 조회 : 65

간만에 가라타니의 신간 중 하나가 번역되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연재글 형식이라 그런지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네요. 일전에 지음과 나누었던 얘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도 있어서, 포함하여, 빈고에 공유해볼 만한 부분만 발췌해 봅니다.


"후진국에서는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우선 자본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여러 의미에서 농민의 수탈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우선 토지(생산수단)를 잃은 농민이 임금노동자가 되고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 나아가 농촌은 실업한 노동자를 일시적으로 받아들이는 저수지이기도 하다. 또 국가에 병사를 제공하는 모체이기도 하다. 그런 뜻에서 농업/농촌은 산업자본주의 국가에 불가결 했다 ... 그{야나기타}의 농업정책은 농가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협동자조自助'를 꾀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메이지국가도 협동조합을 촉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농업생산력의 증진이라는 관점에서만 고려되고 있었다./ 본래 협동조합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협동자조'적인 운동이고,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로버트 오웬 등에 의해 추진되어 다른 지역으로도 퍼졌다. 하지만 독일에서 그 운동은 국가의 주도로 조직되는바, 이것이 '산업조합법'으로서 일본에 도입됐던 것이다. 이에 맞서는 야나기타의 생각은 영국의 협동조합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야나기타가 그것을 단지 수입했던 게 아니라 마찬가지의 시도를 일본이나 중국의 근대 이전 사회에서 발견하고자 했다는 점이다."(p.62~64, {} 및 강조는 인용자)

"'금융(金融)'은 본래 '융통무애(融通無碍)'라는 불교용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금전의 장애 없는, 무한한, 다함이 없는 융통을 말한다."(p.65~66, 각주10 中, 강조는 인용자)

"그{야나기타}에게 '빈궁함'이란 단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었다. 농촌의 빈궁함은 오히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빈궁함에 있었다. 야나기타는 그것을 '고립빈孤立貧'이라고 부른다 ... 그것{산업조합}은 본래 농촌에 있던 '공동단결의 자치력을 박약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p.67. 강조는 인용자)

"농업이 발전하더라도 농촌은 쇠퇴한다."(p.69)

"메이지 이후의 농업정책은 농촌에 존재했던 수공업/가공업을 모두 도시로 이동시키고, 농촌을 그저 원료만을 생산하는 장으로 삼았다. 때문에 농업생산력은 증대했지만 농촌은 쇠퇴했다. 바꿔 말하자면 농촌은 빈궁하지는 않게 되었어도, "쓸쓸한" 것이 되고 말았다./ 야나기타는 협동조합을 농업이 아니라 농촌, 즉 사람들의 다양한 네트워크로부터 생각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것은 농업, 목축, 어업만이 아니라 가공업, 나아가서는 유통이나 금융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야나기타의 협동조합은 궁극적으로 농촌과 도시, 농업과 공업의 분리를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p.70. 강조는 인용자)

"우자와 {히로후미}는 이른바 근대경제학자였지만 신고전파 및 케인즈주의의 비판으로부터 '사회적 공동자본'(공유재)이라는 사고에 도달했다. 예컨대 수전水田은 단순한 생산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증발-강우라는 물의 순환을 가져오고, 그렇게 주위의 환경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유재이지 사유재산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농촌은 개별 농가들 혹은 농업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합친 것 이상의 사회적 공유재(커먼즈[commons])로서 있는 것이다 ... "독립된 생산, 경영 단위로서 논구되어야 할 것은 한집 한집의 농가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커먼즈로서의 농촌이지 않으면 안 된다."(<<사회적 공통자본>>, 2000)/ 커먼즈로서의 농촌은 임업, 수산업, 목축 등을 포함한 생산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가공, 판매, 연구개발을 통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실행하는 하나의 사회적 조직이다. ... "'사社'라는 말은 어쩌면 커먼즈의 역어로서 최적의 것이 아닐까. 아니 오히려 커먼즈보다 더 적당하게 내가 주장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사'라는 말은 본래 땅을 일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경작의 신, 나아가서는 토지의 신을 의미하고, 거기서 그런 신들을 모시던 건축물을 가리키게 되었다. '사'는 마을의 중심이 되고 마을사람들은 '사'에 모여 서로 말하고 중요한 것을 결정하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모임, 조직 집단을 가리키게 된 것이었다. (...) 원나라 말엽에 '사'는 행정의 가장 작은 단위였다. '농가 50호로 사가 된다'고 당시의 문헌에 남아 있다. (...) '사'는 다름 아닌 커먼즈 그 자체였다고 해도 좋다."(같은 곳)"(p.70-72. 강조는 인용자)

"시바 촌에서 야나기타가 놀랐던 것은 '토지에 대한 그들의 사상이 평지에 있는 우리들의 사상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귀중했던 것은 그들 속에 남아 있는 '사상' 이었다. ... 즉 야타기타가 전하여 평지인을 '전율'시키고자 했던 것은 괴이담이 아니라 산촌에서 목격했던 다른 사회, 다른 삶의 방식이었다. 평지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있었다. 괴이하다고 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p.78-79. 강조는 인용자)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특정한 까닭 없이 어슬렁어슬렁 산으로 들어가는 버릇 같은 것이 있다.""(92. ^^)

"주변주의 자립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앙에 대한 투쟁만이 아니라, 그 내부에 있는 '중심-주변'의 구조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p.98. 강조는 인용자)

"그가 바라는 것은 선주민 자신이 '토인의 역사가 의미 깊은 것으로 백인문명과 대립한 전혀 별종의 문명으로서 성장 도중에 좌절당한 것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101)

"사람들이 부모/자식관계에 종속되는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만한 고독'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연합하는 유이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양에서도 시민사회는 중세의 길드로부터 발전했던 것이다."(106)

""그것(?)은 오늘날의 부모자식이 친부모자식이기에 앞서 노동조직의 단위였다는 것도 알려준다. ..."(<<민간전승론>>)"(116. ()는 인용자)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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