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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가라타니 고진 <<유동론>> 2

  • 담묵
  • 작성일시 : 2019-11-11 01:20
  • 조회 : 2,392

"실제로 인류가 유동적인 수렵채집민이었던 시기에 늑대는 인간의 수렵 동료였다. 늑대가 적대시됐던 것은 정주농경민의 단계 이후이다. 그 이래로 그림 형제 동화집의 <빨간 두건>이 대표하듯이 늑대는 교활하고 흉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121)

"그가 부정하고자 했던 것은 수렵채집민적인 유동성이 아니라 유목민적인 유동성, 혹은 국가나 자본에 의해 발동되는 유동성이었기 때문이다"(122)

"그런 유형의 유동민은 산인적이지 않고 유목민적이다. 그것이 제국주의적인 팽창과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그 시기에 유동성을 긍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해로운 것이기도 했다 ...  1930년대 지배적인 언설이 탈영역적인 확대와 이동을 주장하는 쪽으로 정향되었을 때, 거꾸로 축소와 정주를 주장..."(123)

"그는 '부국강병' 아래서의 농본주의(농촌보호)에 반대하면서 협동자조의 산업조합을 만들고자 했다. 신사합사령은 말하자면 '부국강병'의 종교판이다 ... 그에게 바람직한 신사합사란 작은 신사가 연합한 "협동조합"과 같은 것이었다고 해도 좋다."(126)

"유럽의 민속학이란 실제로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앙상태를 탐색하는 것과 결속되어 있었다. 야나기타는 그것을 하이네로부터 배웠다."(132)

"그렇다면 고유신앙이란 어떤 사회에 있었던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그 사회가 국가 이전의 사회라는 점이다."(136)

"19세기 중반 바흐오펜이나 모건 이래로 인류사회가 본래 모계적/모권적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이 되었다. 그것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으로서 환영받았지만, 그런 관점은 인류학적 조사가 진전되면서 의심받게 되었다. 모계와 모권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계제 사회에 반드시 모권제가 있을 리는 없다. 오히려 남자가 정치경제적 실권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 유동적인 수렵채집민의 밴드(역주: 인류학 용어로서의 밴드는 생계 및 안전을 위해 군집의 형태로 느슨하게 결속된, 50명 미만의 소수 집단을 가리킴) 사회에서는 출생(리니지)에 의한 조직화가 없다."(145-146)

"야나기타가 말하는 고유신앙이란 출생에 의해 조직되기 이전의 유동민 사회에 근거한 것이다."(146)

"쌍계제에서는 출생이 어떠하든 그 사람이 지금 소속되어 있는 장이 중요하다. '이에家'가 그러한 장이다..."자식에 의한 노동조직이 복종관계에 있었음에 반해 대등한 상호부조 조직이었던" 것이 "유이"이다(<<향토생활의 연구법>>). 지금도 오야붕/코붕(두목/부하)이라는 말이 남아 있지만, 그것은 노동조직을 의사擬似가족적인 것으로 인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다. 오야(부모-인용자)와 코(자식-인용자)는 본래 오야붕과 코붕을 뜻했다(<오야붕 코붕>). 아버지나 어머니는 우미노오야(낳은 부모/친부모), 즉 오야의 일종이다. 부모를 오야라고 부르는 것은 집을 노동조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때문에 집은 혈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노동조직이다. 조상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조상혼은 오야이며 자손은 코이지만, 서로가 반드시 피로 이어져 있을 필요는 없다."(155)

"유교에서 부모에 대한 효는 공권력에 저항하는 원리가 될 수도 있다. 단, 일본의 유교에서 효는 공권력(오야)에 대한 복종을 정당화하는 것 이외에는 될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일본에 본래적인 유교가 뿌리내리는 일은 없었다. (각주9: 유교의 핵심은 '효'이지만 중국에서 그것은 가족이 국가에 대해 자립하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때문에 화교가 그런 것처럼 국가를 넘어 가족의 연결이 확대된다. 즉 '효'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자립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원리가 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국가에 대항하는 '효'란 있을 수 없다. 국가는 개인에 대해 오야로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교는 공권력으로부터의 자립을 낳는 계기가 되지 못했다. 그것은 '이에' 혹은 공권력에 대한 복종을 설파하는 것이 되었다.)"(160)

"피의 연결이 없어도 모종의 '연' 혹은 '사랑'이 있다면 선조로 간주된다 ... 일본에서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타인'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조상혼에 대해서도 들어맞는 말이다. '가까운 타인'이 선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161)

"바빌론 포로 시대에 사람들은 상업에 종사했었다. 그런 뜻에서 그들은 가나안의 정주농업사회로부터 유동민적인 사회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국가가 멸망했기 때문에 전제국가와 결속되어 있던 사제의 권력은 부정되었고, 결정은 사람들의 토의에 의해 행해지게 되었다. 그러한 세속적인 사회적 변화가 종교적 변화의 뒤쪽에 있었던 것이다. 즉 신과 인간의 관계가 변했던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변했기 때문이다."(167)

"... 거기에는 사제, 신관, 성직자 따위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 신앙은 '개인 각자의 신심'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각자의 신앙이다. 그것은 다수의 개별적인 영[혼]이 하나로 융합하면서도 여전히 개별적인 채로 있으면서 ..."(172)

"문제는 "마을마다 있는 신에 대한 현실의 사상"에 입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175)

"그것은 생활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며 '믿는다기보다는 살게 되는 것'이었다."(176)

"신토로부터 선조숭배를 제거하고 인류교로서 세계로 확장시키려는 발상은 야나기타가 가장 꺼려했던 것이었다. 메이지국가가 유럽의 교회건축을 흉내 내어 각지의 신사를 합병하고 거대화 하려했던 것에 반대했듯이 말이다. 작은 것, 혹은 약한 것은 보편적인 것과 이반하지 않는다. 그러한 생각이 야나기타 사상의 핵심에 있다. 강대한 것은 몰락한다. 어쩌면 야나기타가 공습경보를 들어면서 <<선조 이야기>>를 쓰고 있던 때, 그는 그런 몰락의 광경이 육박해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177-178)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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