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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백영경, <'면역'이라는 커먼즈>, <커먼즈와 복지>

  • 지음
  • 작성일시 : 2020-04-07 23:57
  • 조회 : 1,257

커먼즈를 주제로 글을 쓰시는 백영경씨의 글 두 개를 소개합니다. 

홍성 공유지 읽기모임에서 같이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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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이라는 커먼즈


[창비 주가 논평] "면역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  2020-03-12 09:46:34


코로나19 감염증의 신규 확진자 수가 며칠째 100명 대를 유지하면서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무섭게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콜센터의 집단발병 사례가 알려져 불안과 공포가 다시 퍼져가고 있다. 콜센터 관련 확진자가 이미 100여 명에 가깝지만 이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11일 0시 기준 전국 신규 확진자 수도 다시 200명을 넘었다. 더욱이 대중교통망이 발달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종전의 '신천지 사태'와는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수도권의 요양병원이나 병원 등 집단시설에서 전파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이미 있었으나 막상 서울 역세권 빌딩 안에서의 집단발병이 현실로 닥치자,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생각보다 장기화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커지는 것이다.


중국, 일본, 미국, 이탈리아 등의 코로나19 대처 방식은 각국의 사정과 특징을 잘 드러낸다. 전염병의 확산과 대응을 둘러싼 한국의 상황 역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양상이다. 해외 언론도 지적하듯이 한국은 투명한 정보공개로 메르스 때의 권위주의 정권과는 확연히 다른 정부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빠르고 효과적인 진단검사를 통해 의료기술의 선진성을 보여주었다. 진단키트가 없어서 검사도 못 하거나 검사를 받아도 수백만 원 상당을 자비로 지출해야 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정부에 쏟아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방역과 의료체계는 비난할 수준이 결코 아니다. 물론 학교도 닫아걸고 직장에서는 재택근무를 권하는 마당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다닥다닥 붙어서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을 보면 마스크 수급 관리에서 조금 나은 방법은 없었을까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운 전염병의 유행은 그 자체로 초유의 사태인 만큼 어느 정도 혼란은 불가피하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스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한편으로 나보다 더 필요한 남을 위해 양보하고 배려하는 시민들의 수가 늘어가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반면 집단감염이 퍼져가는 경로 역시 한국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보다 먼저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중국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보다 이번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치명률은 남성에게 더 높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확진자 수에서는 여성, 그 가운데서도 20대가 유독 많은 것이 한국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집단발병이 확인된 종교시설, 체육시설, 요양시설, 근로여성임대아파트는 모두 여성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공간이다. 요양시설 돌봄노동이나 콜센터의 노동조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그 밖에도 일의 특성상 대면 접촉이나 집단근무를 피하기 어려운 노동 영역 가운데는 여성노동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주거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으니 집단발병 사례 역시 여성에게 집중된다. 신천지에 몰입한 20대 여성이 많다는 사실 역시 청년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삶의 조건은 결국 방역의 구멍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감염자의 동선이 거주민은 물론 지역을 통과하는 사람에게까지 경보음과 함께 휴대폰 재난문자로 전달되는 상황 역시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IT강국인 대한민국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을 일이다. 감염자의 성별과 연령까지 특정한 분 단위의 동선이 공개되면서, 감염자들은 본인은 물론 가족의 신상까지 알려지고 행적에 대한 비판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에 걸리는 것보다 확진 후 동선 공개가 더 무섭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확진자의 자세한 동선 공개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자세한 행적 공개는 누구에게든 뜻하지 않은 곤경을 안겨줄 수 있지만 소수자들에게는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 텔레비전 뉴스는 노숙인 지역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조심스레 손을 씻는 어느 노숙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좋은 의도로 소개한 사례겠지만, 노숙인이 아니라 누구라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는 게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발병했을 때 가해질 비난과 낙인을 두려워하는 노숙인의 모습은 한국의 소수자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동선 공개를 두려워하는 소수자들은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진료를 기피하기도 하니, 이 역시 차별과 혐오가 방역의 허점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역 당국의 권고를 따르지 못하는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이번 콜센터의 집단발병 사례를 놓고서도 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좁은 공간에서 근무를 했느냐, 재택근무는 왜 하지 않았느냐, 모여서 밥은 왜 먹었느냐 하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콜센터 업무의 특성상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 어렵고, 재택근무도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확진을 받은 이의 경우, 이미 대구에서 왔다는 사실 때문에 입원을 거부당한 경험이 있었고, 검사를 요청했으나 증상이 없어 거절당했다고 한다. '나더러 어쩌라는 말이냐'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신천지 교인인 요양보호사들이 계속 근무를 한다는 비난의 소리도 높지만, 밀교적 특성 외에도 생계의 문제가 크다는 소식도 들린다. 현실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방역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방역의 허점은 단순히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문제들이 불거져 나와 현실을 제약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전염병의 확산 속에서 우리는 개개인이 단지 독립된 단자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언제나 인간뿐 아닌 수많은 존재들로 구성된 세계를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단순히 환경 속에서 살아갈 뿐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환경이며, 그 '우리'는 단지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전염병에 대한 면역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연결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각과 더 나은 방식으로 연결되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면역에 관하여>(열린책들 펴냄)의 저자인 율라 비스에 따르면, "면역은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이며,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커먼즈(commons)'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면역을 하나의 커먼즈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그것이 국가와 시장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시민과 지역이 함께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공공의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방역에서 국가나 공공기관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사실 자체야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방역과 의료를 국가가 제공해야 할 기본 서비스로만 여긴다면 시간에 쫓기고 물리적 제약이 큰 상황에서 나의 안전만을 앞세우는 무책임한 요구나 국가에 대한 끝없는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국가 차원으로만 감당할 수 없는 문제도 많다. 감염 확산의 우려가 있는 장애인시설이나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코호트 격리가 이루어지면서, 돌볼 사람 없이 남겨진 이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경우 국가가 지원해야 할 몫이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국가가 전염병 사태를 가정해 인력과 자원을 상시 유지할 수도 없는 만큼 모든 것을 국가에 맡길 수 없다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대비가 비교적 잘되어 있는 상황이더라도 담당 공무원이나 의료진의 감염 같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언제나 허점은 생기게 마련이다. 가령 노숙인이나 독거노인에게 제공되던 식사 및 급식이 감염 우려 때문에 끊기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를 국가가 일일이 메워주리라 기대하기 어렵고 시장에 맡기기란 더욱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 돌봄을 가족에게 맡기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갑자기 문을 닫은 학교와 어린이집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는 맞벌이 가정의 사정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전염병 사태에서 가족은 가장 먼저 감염이 확산되는 취약한 공간이기도 하다.


결국 시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지역이 단위가 되어서 주체적으로 구멍을 메우고 필요한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것이 한 사회의 면역체계인 것이다. 사실 개인들이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의료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만 생각하는 사회라면 국가의 힘만으로 전염병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앞으로는 더욱 잦아질 수도 있는 전염병을 막아내는 것은 면역으로서의 커먼즈를 함께 만들고 가꿀 때만, 다시 말해 인간 이상의 존재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돌볼 자세가 되어 있을 때라야 가능해진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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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와 복지> 중 발췌


커먼즈의 입장에서 보면 공적인 것을 국가와 바로 등치시키는 데는 동의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커먼즈를 가족이나 개인으로 귀속되는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는 입장과도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커먼즈는 공동체의 자체적인 노력만큼이나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확보하고 누릴 권리가 있으며, 공동체의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공공서비스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이를 둘러싼 정치에 참가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거기에서 돌봄을 둘러싼 여성과 가족들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공적(公的)인 이슈이자 공적(共的)인 이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회재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이나 국가를 넘어서 커먼즈를 만들어 내고 확장하며, 공적인 영역의 일원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커머닝 과정이 중요해진다. 사회재생산의 문제는 종종 특정한 공동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결정 사안을 다루게 되며,때로는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문제와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 경계밖으로의 확장은 최근 지역공동체를 만든다고 할 때 흔히 이야기되는 민-관 협력 모델과는 다른 것으로서, 커머닝이란 국가와 시장 혹은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는 시민사회나 공동체가 각기 공과 사의 영역을 유지한 채 만나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민과 관이나 공과 사 구분을 넘어서 커머너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커먼즈 자체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자원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여 돌봄의 필요를 감지하고 제공하려는 노력을 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돌봄이라는 것 자체가 단순히 서비스의 형태로 주어질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시장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복지 수요를 양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문제로서 파악하고자 하며, 실제로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문제는 무엇이고 돌봄이 필요한 영역은 어디인지를 찾아내려 하기 보다는 서류에 의존하는 관료적인 태도나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서 비용과 수요를 감축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는 양상을 보인다. 현재 한국사회도 복지 수혜의 자격을 규정하고, 그 요건에 맞는지를 입증하고 감시하며 관리하는 체제가 만들어낸 여러 비극적 사례를 목격한 바 있으며, 반대로 규정을 악용하여 공적 자원을 사취하는 사례들 역시 다수 존재한다. 보육이나 요양 서비스의 경우에는 공적 지원이 증가하면서 지원금이 유인이 되어 오히려 시장 영역이 확대된다던가, 복지를 관장하는 행정영역으로 투입되는 비용이 실제 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게 지급되는 비용을 능가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국가 주도의 관료적 복지 체제 속에서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탈인격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시장 주도의 체제 속에서는 복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이윤 창출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돌봄이라는 것은 그 성격 자체가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시공간에 대한 관심과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표준화된 국가 시스템이나 시장 기제에 맡겨 생산하고 분배하면 되는 물건이 아니다. 돌봄이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필요를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혹은 개인과 자연을 포함한 주변 환경 사이의 관계를 포함하는 여러 가지 관계성을 떼어놓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커먼즈는 관습법에 가깝게 정해진 운영원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각 기관이 운영되어야 할 방안을 촘촘히 규정하고 있는 정식 법률 체계와는 달리 커먼즈마다 주어진 자연환경과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리 작동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으며, 시장의 교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중앙집중화되지 않은 방식의 참여를 끌어냄으로써 운영된다는 강점을 가진 체제이다. 따라서 현재 시장과 관료제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돌봄과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자원뿐 아니라 공적 지원을 활용하되 공동체 스스로 구성원들의 필요에 맞게 조직하고 활용할 수 있는 복지 커먼즈를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복지 시스템이지금의 체제로 지속된다면 그 문제점은 단순한 돌봄의 위기나 비용의 급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지 시스템 자체가 작동하지 않게 되는 위기 상황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삶의 국면마다 겪게 되는 생활의 필요를 함께 나누고 헤쳐 나가면서 서로 돌보는 일은 커먼즈가 커먼즈로서 기능하기 위한 기본이다. 반면, 국가나 시장,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로서 커먼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돌봄의 필요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돌봄이란 그 성격상 선험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려우며 개인이 처한 삶의 맥락과 특성을 고려해서 관심과 배려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돌봄은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을 통해서도, 관료화된 국가도 제공할 수 없으며, 일부의 통념과는 달리 가족 내에서 제공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복지 커먼즈는 커먼즈 중에서 특수한 형태가 아니라 커먼즈의 본질적 속성을 체현하고 있되, 돌봄과 사회재생산의 위기에서 다양한 분야의 비판과 저항을 상호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를 포함하여 지속불가능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는 한국사회가 단순히 복지서비스의 확충이나 지원책 마련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는 현재의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재생산위기가 이토록 첨예하게 부각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 자연자원, 토지, 공적 공간과 공공 서비스 등 커먼즈가 지속적으로 사유화되고 상품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교육돌봄노동이 급속하게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상품화되면서 사회재생산의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었으며, 동시에 커먼즈의 복원과 창조를 위한 투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사회재생산의 위기라는 개념을 통해서 볼 때 생태환경의 문제와 돌봄의 위기 속에서 발견되는 젠더정의에 대한 요구를 통합적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복지 커먼즈라는 개념은 커먼즈라는 말이 포괄하고 있으나 종종 주목받지 못하는 돌봄과 복지의 차원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킴으로써 커먼즈론을 확대시켜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계보 속에서 진행되어 온 여러 운동들이 연대의 접점을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개념적 차원의 연대에 기반할 때,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돌봄의 위기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이뤄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공유와 협동, 호혜성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적 실천과 가능성의 공간으로서의 커먼즈를 확대해 나가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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