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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노동자, 시민, 자본가

  • 지음
  • 작성일시 : 2010-07-13 21:46
  • 조회 : 5,939

한보희, <영구적 IMF, 해체된 생의 시간, 대우자동자판매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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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누적된 생의 시간들


평생 농사를 지어온 소작농은 자신이 일궈온 땅에 애착을 느끼며, 그 땅과 일을 씨실과 날실로 삼고 제 삶의 시간들로 무늬를 수놓은 독특한 직물을 갖게 된다. 그 직물은 그의 인생이며 동시에 세계이므로 지상의 어떤 권리도 자신을 거기서 떼어낼 수는 없다고 여긴다. 비록 머리로는 이게 자기 땅이 아님을 알지만 말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지주는 소작농이 지닌 이 독특한 소유의 관념을 알지 못한다. 그에게서 강압으로 토지를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그때 지주가 빼앗을 수 있는 땅은 농부가 소유한 것과 같은 땅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도, 지주와 소작농에서와 같은 중요한 관념상의, 또한 정서상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노동자들은 직장에 돈을 벌기위해서만 오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은 ‘돈만 아니면 당장 때려치운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진실이다. 하지만 그 말은 그들의 처한 현실을 가리키는 것이지, 그들이 행하는 노동의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화와 싸우는 대우자판 노동자들은 돈과 안정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아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저렇게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사실 돈과 안정, 즉 안정적 이윤증식에 목을 매는 것은 자본이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동료들과 함께 살아왔던 과거 또 살아갈 미래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다. 삶터에 목숨 건 사람들이다. 그 삶터는 자동차 팔고 월급 받는 일, 즉 ‘직장’이란 개념과 일치하지 않으며 ‘일자리’란 용어로 다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생존권투쟁’이라는 것을 최저임금이라도 보장받으려는 싸움 정도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그것을 노동의 알맹이, 즉 노동하는 인간이 만들어온 삶의 공동체와 공동체의 삶을 보존하려는 싸움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와 더불어 사회라는 공동체 자체가 허물어져가고 있는 요즘, 우리가 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눈을 크게 떠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노동자와 시민의 경계


문화제에 참석한 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노동자들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관념을 깨지 않으면 각개격파 당합니다. 비정규직을 먼저 자르도록 방조해보았자 정규직의 미래가 보장되지도 않지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은 자본가들이 세워놓은 교활한 분리장벽일 뿐입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노동운동은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겁니다.” 나는 이 얘기를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경계도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하지 않는 시민이 얼마나 되는가. 거의 모든 시민은 임금노동자들이다. 노동문제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함께 풀어가지 않는 한, 어떤 사회운동도 올바른 방향을 잡기 어렵다. 재테크로 자산을 불려 그 자산의 장벽 안에서 편히 먹고 살겠다는 식의 심성이 팽배한 사회에는 정말이지 미래가 없다.


한 정규직 노동자의 이런 탄식이 떠오른다. “수천억의 흑자가 나도 인건비 감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정말 기가 막히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대기업들은 몇 년째 국내 신규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만약에 대비해 현금을 쌓아두고 금융이나 부동산 등 투기적 성격을 띠는 곳으로 몰려다닐 뿐, 일자리 창출엔 무관심하단 얘기다. 기업이 소명의식을 갖고 사업을 벌이고 또 그런 사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던 시대는 다 지나갔다. 그런 게 기업가들의 입에 발린 거짓말일지라도 한때 우리사회는 그런 신화 같은 얘기를 순진하게 믿었다. 자본가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런 거짓말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윤 창출이 기업의 존재이유이며 ‘분배는 도둑질’이라고 떳떳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업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믿음을 무슨 자연법칙이라도 되는 양 신봉하고 있다. 나날의 삶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왜 그럴까? 몇 천주의 주식, 2억짜리 아파트만 갖고 있어도 ‘자본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자본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이건 순진한 게 아니라 어리석은 것이다. 자본의 운명과 우리의 삶을 동일시하는 오류가 어떤 재앙이 되어 돌아오는가 하는 것은 이제 눈을 감아도 보이고, 귀를 막아도 들릴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은 대우자판 노동자들, 기륭전자, 콜트-콜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그들은 이기지 못할 싸움으로 생을 소진하고 있는, 불쌍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버티고 싸우며 지켜야할 어떤 곳에 한발 앞서 가있는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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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보았던, <사랑과 노동 - 꼬뮨을 꼬뮤니케이팅하는 뫼비우스의 띠>

에 이어서 역시 훌륭한 글이다.

원문 전체를 봐도 좋을 듯.

한보희의 다른 글들도 찾아봐야겠다. 



빙고 조합원들이 같이 읽어보면 좋을 글들을

이 게시판에 모아보면 좋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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