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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노동거부 - 라파르그, 네그리, 고진

  • 지음
  • 작성일시 : 2011-07-19 17:19
  • 조회 : 7,472

프롤레타리아여, 일하고 또 일하라. 그리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동시에 여러분 자신의 불행도 증대시켜라. 일하러 가라, 그리하여 더 가난해지거나 불쌍해지고 그래서 또 다시 일하러 가야 하고 불행해질 원인을 또 만들어 내라. 바로 이게 자본주의 생산의 냉철한 법칙이다.

- 라파르그,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




자 기가치증식은 사보타지이다. 노동거부는 무엇보다도 사보타지, 파업, 그리고 직접행동이다. 노동착취는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토대이며 기초이다. 따라서 노동거부는 자본주의사회의 하나의 연관만을, 혹은 자본의 생산 및 재생산 과정의 하나의 측면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발본적인 노동거부는 자본주의사회 전체를 부정한다.


자기가치증식의 목적은 생산 및 재생산 안에서 산 노동의 완전한 해방이다. 그 목적은 집단적 자유를 위해 부를 전체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노동거부는 동시에 자본의 탈구조화이자 노동자계급의 자기가치증식이다. 노동거부는 자본의 발전을 신뢰하는 고안품이 아니며, 자본 지배의 비실존을 가장하는 고안품도 아니다. 노동거부는 유토피아적 환상 탈주도 아니며, 정적주의적인 후퇴도 아니다. 노동거부는 우리에게 집합적 계급분리의 논리를 도입하도록 해주는 그런 집합적 관계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탈구조화한다는 부정성 위에서 새로운 집합적 생산양식의 긍정성을 세우는 과정 없이 해방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 동거부는 자기자신의 척도이며 노동거부는 자기가치증식 과정의 척도이자 내용이기도 하다. 이것은 노동거부의 변증법적 특징 때문에, 노동거부를 가져오는 탈구조화와 혁신의 종합의 강도 때문에 가능하다. 첫번째로 자기가치증식과정의 진보는 개별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노동시간의 부단한 축소에 의해서, 즉 자본에 팔리는 프롤레타리아적 생활의 양에 의해 소극적으로 측정된다. 두번째로 자기가치증식 과정의 진보는 프롤레타리아사회의 자유로운 재생산에 투여된 사회적 유용노동의 증식에 의해 적극적으로 측정된다. 노동에 대한 증오와 착취에 대한 증오는 바로 노동거부의 확장인 바의 창의력의 생산적 내용이다. 노동거부를 사회적 변형 방법의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거대한 전진을 의미한다. 그것은 노동시간의 전반적 축소에 초점을 둔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축소를 동시에, 이론적 실천적으로, 과학적 경험적으로, 정치적 행정적으로 이 내용을 둘러싼 계급투쟁의 연속성에 종속된 혁명적 혁신과정과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거부는 우선 가장 소외된, 그러므로 가장 생산적인 노동에 대한 거부이다. 두번째로 그것은 자본주의적 노동 자체, 즉 착취 일반에 대한 거부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것은 생산양식의 갱신을 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창의역능의 해방을 위한 경향이다.


- 네그리, <<지배와 사보타지>>





자본의 축적운동은 ‘M-C-M’(화폐-상품-화폐)이라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그런 경우 산업자본에 있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만든 노동자입니다. 즉 잉여가치는 총체적으로 보자면 노동자가 자신들이 만든 것을 다시 살 때 생기는 차액에 있습니다. 그러나 ‘M-C-M’ 운동 안에는 자본이 만나는 두가지 위기적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노동력 상품을 사는 일과 생산물을 노동자에 파는 일입니다. 만약 이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 실패한다면 자본은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자본일 수가 없는 거지요. 노동자는 이 두가지 점에서 자본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는 안토니오 네그리가 말한 것처럼 “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노동력을 팔지 말라”(자본제 아래에서 임금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것처럼 “자본제 생산품을 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노동자가 ‘주체’일 수 있는 장소(포지션)에서 행해집니다. 그러나 노동자=소비자들이 ‘일하지 않는 일’과 ‘사지 않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일하거나 구매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비자본제적인 생산과 소비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초출(超出)적인 투쟁(생산-소비협동조합이나 LETS)은 자본제 경제에 있어 내재적인 투쟁을 위해 불가결합니다. 반대로 후자(보이콧을 중심으로 하는 내재적 투쟁)는 자본제 기업을 비자본제적 기업형태로 조직을 변환시켜 나가는 일을 포함합니다.

- 가라타니 고진, <NAM과 지역통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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