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4/10 제22회 지리산쌀롱 <자본의 바깥 북토크 : 마을공동체와 커먼즈 금융>

빈고게시판

지난 4월 10일 지리산쌀롱에서 진행한 <자본의 바깥> 북토크 내용을 <주간함양>의 최학수 기자님이 정리해주셨습니다.

단순 강의 정리가 아니라 책과 홈페이지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써주신 글입니다.

지리산 산내면에서는 ‘산내마을금융’이라는 모임이 생겼고 뭔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빈고도 함께 하겠습니다.

원문 보기 : https://jirisaneum.org/eum_news/?idx=171384149&bmode=view

 

토닥[기록] 4/10 제22회 지리산쌀롱 <자본의 바깥 북토크 : 마을공동체와 커먼즈 금융>

해방촌 빈집에서 시작된 공동체은행 빈고, 돈의 방향을 다시 묻다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관계, 환대, 신뢰, 돌봄 같은 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공동체가 실제 생활이 되는 순간,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의외로 돈이다. 집을 얻기 위한 보증금, 함께 쓰는 공간의 월세, 누군가 떠날 때 돌려줘야 하는 출자금, 갑자기 찾아오는 위기, 그리고 공동체가 끝날 때 남는 자산의 정리까지.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돈의 규칙이 없으면 공동체는 쉽게 흔들린다.

그런데 빈고가 던지는 질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돈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다시 공동체의 자원으로 돌릴 것인가. 기성 금융에서 이자는 개인이 가져가는 수익이지만, 공동체 금융에서 그 수익은 관계와 공간, 안전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 돈이 은행 계좌 안에서 조금 불어나는 데 그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보증금이 되고 공동공간의 버팀목이 되고 갑작스러운 위기를 견디는 기금이 될 것인가.

4월 10일 남원시 산내면 토닥에서 진행된 지리산쌀롱 ‘몇 개의 대안’ 강연에서 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가 던진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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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의 시작은 은행이 아니었다
해방촌 빈집, “우리도 손님이라고 치자”에서 출발한 공동체

 

김지음씨는 이날 빈고를 설명하면서도 처음부터 금융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출발점은 2008년 해방촌이었다. ‘빈집’은 게스트하우스 형식으로 시작했지만, 상업 숙박업과는 성격이 달랐다. 살던 사람도 손님이고, 처음 온 사람도 손님이고, 누구도 절대적인 주인이 아닌 구조였다.

김지음씨는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낯선 사람의 집에서 비를 피하고 잠을 청했던 경험, 텐트 생활을 오래 하면서 집의 개념이 달라졌던 경험을 떠올리며 손님방 하나 있는 집을 꿈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막상 손님을 맞이하려고 하니 주인 역할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고, 그래서 나온 결론이 “그러지 말고 그럼 우리도 손님이라고 치자”는 것이었다.

 

빈집의 핵심은 누군가가 주인으로 군림하지 않는 집을 상상하는 데 있었다. 누구나 머물 수 있고, 누구나 떠날 수 있으며,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관리하지 않는 집. 이것은 기존 주거 질서와는 다른 생활 규칙이었다. 집의 계약자, 보증금을 더 많이 낸 사람, 더 오래 산 사람이 자연스럽게 권한을 갖는 일반적인 방식과 달리, 빈집은 모두가 손님이면서 동시에 주인인 이상한 집을 실험했다.

 

2025년 출간한 책 『자본의 바깥』 소개 자료에 따르면 김지음씨는 2008년 해방촌 주거공동체 빈집의 시작을 함께했고, 이후 협동조합 빈가게, 카페 해방촌, 해방촌연구소, 자전거메신저 등을 통해 빈마을을 이루어 함께 살았다. 빈고는 바로 이 해방촌 빈집과 빈마을의 재정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2010년에 시작된 조직이다. 현재는 여러 지역의 공동체와 조합원들이 함께 출자하고 이용하는 커먼즈 은행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집에서 집들이 파티를 열었고, 그 집들이가 빈집의 이름이 됐다. 친구의 친구들이 찾아와 30명 가까이 파티를 벌였고, 분위기는 MT 같았지만 다음날 떠날 필요가 없었기에 파티는 3박4일씩 이어졌다.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와 놀고, 밥과 안주를 직접 만들고, 술도 담그고, 공연도 하고, 공부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돈을 안 쓰고 시간은 많고 또 백수들이 시간도 많고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면서 그렇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사람은 예상보다 빨리 늘었다. 김지음씨는 처음에는 한 집에 6명쯤 살면 적당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장기투숙객이 빠르게 늘면서 공간이 금세 꽉 찼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에는 정원을 통제할 주인이 없었다는 점이다. “못 받습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 누군가 오면 결국 어떻게든 같이 살아야 했다. 그래서 집을 하나 더 구했고, 또 그 옆에 새로운 집이 생겼고, 다른 집과 연결되면서 빈집은 해방촌 일대에 여러 채로 늘어났다.

 

김지음씨는 전성기 때를 두고 “6개에서 7개 정도의 공간에 장기 투숙객 한 40~50명이 있었고, 가게 조합원도 100명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빈집은 단일 주거 실험이 아니라 ‘빈마을’로 불리기 시작했다.

 

외부의 평가도 이 흐름을 비슷하게 읽는다. 경향신문은 『자본의 바깥』을 소개하며 빈집 혹은 빈마을을 “2008년 셰어하우스 형태의 빈집 하나에서 출발해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 공동체의 모토를 “자본의 바깥에서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기”로 정리했다.

 

그가 이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이 흐름이 누군가의 치밀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예상을 한 게 아니고, 누가 특별히 기획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집 하나씩 더 구하고 이러다 보니까 그냥 이렇게 됐어요”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금융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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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흔드는 것은 늘 돈이었다

보증금, 반환, 위기… 빈고는 왜 필요해졌나

 

공동체가 집을 유지하려면 보증금이 필요하고, 사람은 계속 들고나는데 공간은 유지돼야 한다. 보증금을 냈던 사람이 나가면 그 돈을 돌려줘야 하고, 동시에 새 집을 구하려면 또 다른 보증금이 있어야 한다. 이 구조는 곧바로 공동체의 긴장으로 이어진다.

“보증금 자체는 그대로 묶여 있어야 되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요. 보증금 냈던 사람이 나가면 그걸 돌려줘야 되잖아요. 근데 돌려주려면 돈이 원래 더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 반복적인 움직임 속에 보증금을 출자를 계속 받아야 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빈집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어야 했지만, 현실의 임대차계약은 계약자와 보증금을 요구했다. 모두가 손님이자 주인인 집을 만들고 싶어도, 집주인에게는 보증금을 내야 했다. 생활은 탈자본적 상상으로 가능했지만, 계약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문법 안에서 이뤄졌다. 빈고는 이 충돌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출자가 쉽지 않다는 데 있었다. 공동체에 돈을 넣는 일은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더 어렵다. 김지음씨는 이 점을 매우 현실적으로 풀었다. 사람들은 집을 구할 때는 친구들과 함께 살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돈을 묻어두지만, 막상 나갈 때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곤란하다. 반환이 쉽지 않으면, 출자금은 사실상 투자나 저축이 아니라 반쯤 기부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공동체는 늘 손해를 감수해도 괜찮을 정도의 작은 출자만을 받게 되고, 큰 규모의 자원을 축적하기 어려워진다. 그는 “반환 자체를 좀 편하게 할 수 있으면, 그리고 반환할 때 눈치도 안 보게 할 수 있으면 출자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관 역시 이 원리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빈고 정관은 조합원의 활동을 출자·이용·연대·운영으로 규정하고, 조합원은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빈고를 이용하며, 연대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힌다. 의결권은 1인 1표를 원칙으로 해 출자금 규모가 곧 의사결정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사람마다 출자할 수 있는 돈의 크기가 다르다.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누군가는 큰 보증금을 낼 수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다. 생활비를 n분의 1로 나누는 것과 달리, 보증금처럼 큰돈이 걸리면 공동체 안에 곧바로 위계가 생긴다. 김지음씨는 이 지점을 두고 “돈을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잖아요. 금액의 차이가 너무 나면 이게 평등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빈고는 이런 불평등을 공동체 안에서 직접 드러내지 않도록, 출자와 의사결정을 한 단계 분리해, 돈을 많이 낸 사람이 곧 공간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돈의 차이가 곧 관계의 위계가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공동체의 위기 또한 금융 구조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 사람이 몇 명만 빠져도 공동부담하던 생활비가 급격히 오르고, 그 부담이 다시 다른 사람의 이탈을 불러 악순환이 된다. 구성원 개인이 아프거나 갑작스러운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지음씨는 “공동체의 위기는 사실은 그 공동체 구성원의 위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를 공동체별로 따로 준비해 두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며 전체가 함께 관리할 때 비로소 필요한 곳에 자원을 이동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끝날 때 관계보다 먼저 터지는 것이 돈 문제라는 것이다. 남은 자산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누가 더 기여했는지, 얼마를 반환해야 하는지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관계 전체를 잃는다.

김지음씨는 “헤어질 때는 원래 좋을 수는 없는데, 돈 문제까지 개입되면 완전 파탄으로 가는 수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해산되더라도, 그동안 함께했던 가치와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구조는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빈고는 바로 그 지점, 공동체가 흩어지고 나서도 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 구조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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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는 은행인가, 협동조합인가, 커먼즈인가

법정 금융기관 바깥에서 만들어진 공동체의 금융 규칙

 

빈고를 이해할 때 중요한 지점은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은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빈고는 이름에 ‘은행’을 쓰지만, 법정 은행이나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은 아니다. 빈고는 스스로 협동조합의 전통을 존중하지만, 협동조합기본법상 금융조합은 허가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미등록 협동조합에 가깝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빈고는 법적 형식 이전부터 조합원들의 출자·이용·연대·운영으로 자율적으로 꾸려져 왔고, 총회의 1인 1표 원칙 등 민주적 운영 방식을 만들어왔다고 밝힌다.

 

이 지점에서 빈고는 제도권 금융기관과 구분된다. 일반 은행은 예금을 받아 이자를 주고, 대출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고객은 은행의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반면 빈고에서 조합원은 단순한 예금자도, 단순한 대출자도 아니다. 출자자인 동시에 이용자이고, 연대자이며 운영자다. 돈을 맡기는 사람과 돈을 쓰는 사람, 그리고 그 돈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는 사람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빈고가 스스로를 ‘커먼즈 은행’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커먼즈는 보통 공유지, 공동자원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단순히 모두가 공짜로 쓰는 자원을 뜻하지 않는다. 함께 만들고, 함께 관리하고, 함께 책임지는 자원이다. 빈고에서 돈은 개인의 자산증식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와 공유지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자원으로 재배치된다.

빈고 공식 소개는 “우리의 돈이 자본과 국가가 함부로 쓰지 못하게, 그들이 우리를 착취하지 못하게, 비윤리적으로 쓰이지 못하게 이용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또 공동체와 공유지의 유지와 확산에 기여하고, 조합원 출자금에서 비롯된 수입을 모든 가난한 생명과 공유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이 문장은 빈고가 단순히 ‘착한 은행’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 자체를 의심하고, 돈이 사람을 지배하는 방식을 공동체의 규칙으로 바꿔보려는 실험이다. 그래서 빈고는 ‘대출’이라는 말보다 ‘이용’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우위에 서고 빌리는 사람이 아래에 놓이는 채권자-채무자 관계를 조금이라도 다르게 구성하기 위해서다.

빈고에서 중요한 것은 이자가 있느냐 없느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자가 어디로 가느냐다. 기성 금융에서 이자는 돈을 맡긴 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이거나, 돈을 빌린 사람이 금융기관에 내는 비용이다. 그러나 빈고가 상상하는 공동체 금융에서 그 비용과 수익은 개인의 몫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돈을 빌린 사람은 부채감에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유지에 기여할 수 있고, 돈을 맡긴 사람은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공동의 기반을 함께 만드는 출자자가 된다. 같은 이자라도 그것이 개인의 수익으로 귀속될 때와 공동체의 기금으로 환원될 때, 돈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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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의 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나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

 

빈고는 출자, 이용, 연대, 운영이라는 네 가지 활동을 기본 틀로 둔다. 공식 소개 또한 빈고를 “자치·공유·환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들의 금융 협동조합”으로 설명하며, 조합원은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잉여를 외부와 연대하며, 총회와 회의에 참여해 운영을 함께 한다고 밝힌다.

“출자는 말 그대로 하실 수 있는 만큼, 무리하실 필요도 없고 하실 수 있는 만큼 출자하시면 되는 거고, 이용은 주변에 어떤 공유 자원을 확보로 필요한 경우 하시면 되는 거고, 운영 활동은 총회에 참석하시거나 조합원 모임 하시거나 그러면 되는 거고, 연대 활동은 같이 해 주시면 됩니다”

 

그가 반복해서 내세운 구호는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였다. 이 문장은 빈고의 원리를 가장 간단히 설명한다. 돈이 많은 사람이 더 내고 더 많은 권한을 갖는 구조가 아니라, 낼 수 있는 만큼 내되 필요할 때는 누구나 공동체를 통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관상으로도 빈고는 출자금 반환을 비교적 유연하게 설계하고 있다. 빈고 정관은 출자금 반환 요청은 언제든지 가능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1주일 내에 조합원 본인의 타행 계좌로 반환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조합원들이 구성한 공동체는 개인 출자와 별도로 수시로 출자와 반환이 가능한 공동체통장을 개설할 수 있다고 밝힌다.

 

김지음씨도 이날 “오늘 출자했다 내일 빼고”가 가능할 정도로 수시입출금 통장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17년 동안 거의 즉시 반환이 이뤄졌고, 큰 전셋집이 빠졌던 한 차례를 제외하면 반환이 장기간 지연된 적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 설명은 빈고가 출자자를 묶어두는 방식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동체는 강제로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떠날 수 있음에도 다시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 있다.

빈고가 공동체 안의 위계를 어떻게 낮추는지 보여주는 대목도 있었다. 김지음씨는 공동체가 빈고를 통해 집을 구하면,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서로 얼마를 출자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같은 집을 함께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저 같이 출자한 사람, 같이 이용한 사람으로 생활할 뿐, 누가 얼마를 냈는지가 공동체 안에서 계속 노출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어떤 불평등이나 부채감 같은 것들이 걸러지는 것들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지역 단위 확장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었다. 김지음씨는 “토닥 공동체일 수도 있고, 지리산 공동체일 수도 있고, 산내면 공동체일 수도 있다”며, 사람들이 공동체를 구성하면 그 공동체 단위로 계정을 만들고 작은 은행처럼 운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가 자금 이용을 신청하면, 중앙 조직이 서류만 보고 심사하는 방식보다 해당 공동체의 판단을 신뢰하는 구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는 “공동체의 판단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빈고가 중앙집중적 금융기관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활 판단을 토대로 작동하는 금융 네트워크라는 점을 보여준다. 은행은 개인의 신용등급과 담보를 본다. 빈고는 그 사람이 어떤 공동체 안에 있는지, 그 공동체가 어떤 관계와 책임을 만들고 있는지를 본다. 그 차이가 빈고를 일반 금융과 다른 자리로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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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촌은 흩어졌지만, 빈고는 남았다
실패한 공동체의 잔여물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살아남은 구조

 

이날 강연에서 김지음씨는 해방촌 빈마을이 “성공 사례다, 굉장히 좋은 공동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2008년부터 2018년 무렵까지 약 10년 동안 해방촌에서 놀고 살며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결국 공간은 해산됐고 가게는 접혔고 젠트리피케이션도 겪었다.

실제로 2018년 빈고 뉴스레터는 당시 상황을 꽤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2012년 시작된 ‘카페 해방촌 빈가게’와 이후 이어진 ‘해방촌 이야기’ 공간은 2018년 4월 문을 닫았다. 빈고는 이 공간을 빈집 공동체의 야심찬 실험이자 커뮤니티 활동의 장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해방촌은 더 이상 이 상징적인 공간을 빈집에게 허락할 만큼 너그럽지 못했다고 적었다. 한때 최대 7채에 달했던 빈집 공동체가 당시에는 2채만 남았다는 설명도 나온다.

해방촌의 물리적 공간은 흩어졌지만, 빈고는 남았다. 이것은 빈고가 특정한 공간 하나에 묶인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들이 반복해서 마주치는 돈의 문제를 다루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집은 사라질 수 있고, 가게는 문을 닫을 수 있고, 사람들은 흩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쓰던 돈의 규칙, 서로의 위기를 견디기 위해 만든 금융의 방식은 다른 지역과 다른 공동체로 옮겨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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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돈 거래하지 말라면 누구랑 하느냐”

김지음씨의 질문이 있었다. ‘친구랑 돈 거래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데 사실 제일 중요한 게 돈이잖아요. 제일 중요한 건 돈인데 돈 거래 친구랑 안 하면 누구랑 해요? 친구랑은 다른 건 다 하는데 돈 문제만은 하지 말라고 하면, 그건 친구가 별 필요 없다는 거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것들을 친구랑 하지 말라고 하면요”

김지음씨는 이어서 무이자 거래와 이자 거래, 친구 사이의 돈거래가 실제로 왜 어려운지 세밀하게 설명했다.

 

친구끼리 무이자로 빌려주고 빌리는 관계는 아름답지만, 시장 전체가 이자 거래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빌리는 사람은 이익을 얻지만, 빌려주는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감각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지거나 부채감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이자를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돈을 빌린 사람의 부채감은 조금 덜어질 수 있지만, 이자를 받아야 하는 친구의 입장도 편하지만은 않다. 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래가 다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고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이자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그 이자를 누구의 수익으로 볼 것인가, 어디로 돌려보낼 것인가에 가깝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안전하게 원금을 돌려받고, 돈을 이용한 사람은 약속된 이용료를 낸다. 그런데 그 이용료가 특정 개인의 수익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금으로 환원된다면 어떨까. 누군가의 부채감이 공동체에 대한 기여로 바뀌고, 누군가의 자산은 높은 수익을 좇는 투자가 아니라 함께 쓰는 기반이 된다면 어떨까. 그 구조가 바로 빈고가 실험해 온 공동체 금융의 핵심이다.

 

결국 빈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를 묻는 조직이 아니라 내 돈이 어떤 관계와 공간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묻는다. 은행에 돈을 넣으면 입출금 통장 수준의 이자가 붙는다. 그 이자를 내 자산의 아주 작은 증가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의 수익을 공동체에 맡겨둔다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큰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출자를 통해 공동체가 스스로 쓸 수 있는 자금을 만들어가는 일. 빈고는 바로 그 가능성을 은행이라는 형식으로 실험해 온 셈이다.

 

빈고의 사례가 산내면과 지리산권에 던지는 질문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지역은 앞으로 더 많은 공유 공간과 공동체적 시도를 필요로 한다. 청년들의 거점공간, 귀촌인의 임시 주거, 마을의 공동작업장, 농산물 가공공간, 지역문화 모임의 거점,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쓰는 작은 배움터 같은 공간들은 모두 돈의 문제를 동반한다. 누가 보증금을 낼 것인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누가 빠져나갈 때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손해가 생기면 누가 감당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좋은 뜻으로 시작한 공동체도 오래가기 어렵다.

 

그러나 빈고가 산내면에 던진 질문은 단순히 “돈 문제를 잘 관리하자”는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더 중요한 질문은 돈의 방향이다. 기성 금융에서 이자는 개인이 가져가는 수익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입출금 통장 수준의 낮은 이자라도 그것을 내 자산의 작은 증가로 여긴다. 그러나 공동체 금융에서는 그 작은 비율을 다르게 볼 수 있다. 내가 은행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이자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을 내가 속한 공동체에 맡겨두는 일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출자하고, 그 돈이 안정적으로 반환될 수 있는 구조 안에서 쌓인다면 그것은 우리만의 작은 은행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둘 모인 돈은 누군가의 집 보증금이 되고, 공동공간의 버팀목이 되고, 갑작스러운 위기를 견디는 안전망이 되며, 지역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고민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

 

빈고가 말하는 공동체 금융은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는 금융이 아니다. 오히려 수익의 방향을 바꾸는 금융이다. 돈이 개인의 계좌 안에서 조금 불어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다시 관계와 공간과 안전망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 돈을 맡긴 사람은 투자자가 아니라 출자자가 되고, 돈을 이용한 사람은 채무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필요를 함께 해결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금융은 누군가에게 더 많은 이익을 몰아주는 기술이 아니라, 공동의 문제를 함께 감당하는 규칙이 된다.

결국 이날 강연이 남긴 질문은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내 돈이 누구와 함께 무엇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가까웠다. 이제 다시 묻겠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을 때, 나의 돈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수익을 위한 투자를 할 것인가, 공유지를 위한 출자를 할 것인가.

 

(*마지막 문장은 현장에서 김지음씨가 공유해 준 워크숍 질문 중 일부입니다. 현장 사람들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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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학수 (주간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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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음

    마지막 표는 설명이 약간 필요할 것 같아서 덧붙입니다.
    첫번째 열 ‘출자’는 현장에서 조사에 참여해주신 18명의 여러분들이 커먼즈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을 적어주신 것이고, 그 합계가 1억613만원입니다.
    두번째 열 ‘자본출자’와 세번째 열 ‘공유지공유’는 각자에게 1천만원이 있을 때 자본과 공유지에 각각 어느정도로 분배할 것인가를 적어주신 것이고, 합계 3500:13200으로 압도적으로 공유지에 출자해주셨습니다. (각 가로 행은 한 사람이 써낸 결과가 아니고 무작위로 뒤섞여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 포스트잇은 공유지/공유자원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적어주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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