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2026.05.] 단단담담: (7) 나의 파란만장 면허 취득기

빈고게시판

안녕하세요, 빈고 가족 여러분. 지난 한 달도 무탈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사는 강릉의 봄은 꽤 길게 추웠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는 일에 꽤 진심을 다 해도 아침 저녁으로 날뛰는 기온을 이겨낼 재간은 없더라고요. 한낮의 햇빛에는 반팔이 좋아도, 귀가하는 길엔 꼭 긴팔을 껴 입어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아들손자며느리 다 모이는 바쁜 5월 초의 일정도 어느덧 마무리가 되었네요. 그저 서로의 건강을, 건강만을 빌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상에 있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말이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 아닐까 확신에 가까운 의문을 갖게 돼요.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 그 목표 하나 이루기도 벅찬 인생. 그 와중에 잔잔바리 할 일은 어찌나 많고 갈 길은 또 왜 이리 먼지. 우리네 삶 쉽지 않다 쉽지 않아 ㅡ 넋두리 빼면 하루 중요 루틴이 하나 사라질 위기인 최곰. 효율과 가성비가 미덕인 시대, 삽소리 푸는 인간도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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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이 상태 이대로 죽는다면. 난 그 순간, 뭘 가장 후회하게 될까?

작년에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 운전면허를 취득한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초보 운전이라면 듣는 분들은 좀 놀라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오랜 소원이었던 운전면허 취득은, 사실 도전하기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저에겐 어려운 일이었답니다. 현생에선 운전대를 잡아볼 수 없겠구나 진즉 포기했었어요. 굳이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서울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으니까 나까지 면허를 취득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둘러댔지만, 어렸을 때부터 몇 차례 교통사고를 겪었던 일 때문에 차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저는 엄두도 내지 못했었거든요.

제가 여섯 살 때 우리집은 본래 살던 곳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전 동네의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니게 할지 새 동네의 학원을 알아볼지 고민하던 엄마는 제게 혼자 버스타고 학원을 다니는 방법을 가르치셨어요. 학원 이름이 크게 적힌 가방에 피아노 책 몇 권을 넣고 50원인가를 내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다리를 동동거리다 30분쯤 지나 내가 내려야 하는 곳은 북적이는 시장의 버스정류장. 곧장 길을 한번, 두번 건너 조금 걸어가면 피아노 학원에 도착하는 코스였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버스를 추월하던 트럭에 치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ㅡ 아이고 우짜노- 죽었나, 어린 애다, 애기 엄마 없나, 누가 신고부터 해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갔을 동안 저는 아예 정신을 잃었고요. 의식이 없이 혼자 길바닥에 까부러진 아이의 신상을 알 길이 없어 난감해하던 사람들 틈에 가방에 적힌 학원 이름을 보고 누군가가 근처 학원에 사고를 알렸고,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교통사고 사실을 알았다고 해요. 엄마가 훗날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못하는 길을 혼이 빠진 채로 달려 오고 있는 그 사이, 저는 어린 데다 보호자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그러나 어딘가 아마도 급한 곳을 꿰매는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감각이 아직도 선연히 생각나요. 수술대의 차가움, 그 위에 촉각과 청각만 남겨진 채로 누운 어린 여자아이, 의사들의 어떤 말들, 꿰매어지는 어딘가, 아픔보다 더 두려운 수술실의 기계 소리들, 몸에 차갑게 달라붙던 무엇들, 알아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아주 작은 소리까지. 그런 뜨겁고 차가운 찰나가 몇 번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지 모르게 잠에 빠졌다가, 금세 깨어났습니다. 금세라고 느꼈어요.

엄마는 어떤 얼굴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고요. 아빠가 저를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보는 표정의 아빠. 뭐 그때도 호들갑스럽진 않았고 ‘끙…’ 하는 두껍고 낮은 숨소리만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봐요.

다행인지 뭔지 사고 전 상태로 회복이 가능할 정도로만 다쳤던 덕분에 저는 외상이 아물고 난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고의 여파로 유치가, 특히 앞니가 거의 몽땅 빠져 버렸기 때문에 그쯤의 저의 사진은 죄다 ‘앞니 빠진 개우지’라죠. 그렇게 빠지고 새로 난 이가 가지런하지 못한 것이 엄마에게 두고두고 슬픔이 될 줄은 그땐 몰랐구요. 그럼에도 피아노를 그만두기 싫어하는 고집센 저를 엄마는 애써 설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인근의 새로운 피아노 학원을 수소문해 데려가 주셨어요. 원장님은 다정하고 온화한 분이었습니다. 저도 이내 새 학원에 푹 빠져 그 이후로도 한동안 열심히 피아노를 치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자전거, 오토바이, 택시와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지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두었어요. 저는 점차 바퀴가 달린 모든 것을 마음 깊이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두발 자전거를 타며 손을 놓을 줄 아는 것이 꽤 으쓱한 일이 되는 시절이어서 저 역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에 도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땅에서 발을 떼기가 너무 어렵고 두려웠어요. 작은 마음에 상처와 두려움을 숨기고 걷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긴 뚜벅이 라이프의 시작이었어요.

무면허의 비운전자. 면허가 없으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운전에 뜻이 없다 – 그러니 불편하지도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강릉으로 옮겨 온 뒤부터 저는 이동의 어려움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서울을 생각했다가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가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날은 어찌나 황당하던지. (초저녁이었거든요.) 그리고 출퇴근 하기에 적합한 버스가 없어 택시 타는 일이 잦아지면서 서울에 비해 교통비 지출이 엄청 커진 것도 스트레스였습니다. 급기야는 금액을 정해놓고 택시를 타고 그만큼을 소진하면 버스를 기다렸다 타기로 정했는데, 버스 간격이 너무 길다보니 제가 길에서 시간을 너무 헤프게 쓰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어요. 동시에 이 문제가 가볍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때, 혹시 지금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고 느낀다면 평소 절대 못한다고 생각하던 일에 도전해 보라는 출처없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거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이 대답할 수 있지. 암. 순간 제 안에서 근거를 모르는 용기가 샘솟았어요. 저는 홀린 듯이 결심했습니다. 나는 간다. 운전자의 길로.

먼저, 유튜브에서 운전면허학원을 다니지 않고 면허 따는 법에 대해서 검색했습니다. 바다로 치면 마도로스와 같은, 운전 학원 강사님들의 터프함을 지레 두려워 했어요. 필기는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몇 번 반복해서 풀고 단번에 합격. 그러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통체제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때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장난으로라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 없는, 열쇠를 꽂고 돌려본 적도 없는, 심지어 요즘은 가까이만 가도 차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처음 보고 기절초풍한 초초초초초보가 유튜브로 운전 기능 시험을 준비한다는 게 말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학원이 너-무 무서웠어요. 네… 이런 제가 이해가 안 되시겠죠. 그러나그때의 저는 이미 이성적 판단이 불가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유튜브로 시동을 걸고 깜빡이를 켜고 앞유리창을 닦으며 브레이크를, 엑셀을 밟는 시뮬레이션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1트.
놀라운 사실은 뭔지 아십니까. 제가 정말 합격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흥분했습니다. 유튜브에 의지해 혼자 상상으로만 돌고 돌고 돌았던 그 코스를 실제로 생전 처음 차를 타고 열쇠를 꽂고 와이퍼를 끽끽 움직이며 어떡하지 어떡하지를 연발장전 한 채 돌아냈던 것입니다. 주차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사이드 브레이크가 제대로 안 풀린 것을 모르고 전진이 안 된다며 낑낑 짖는 저를 보고 한숨 푹푹 내쉬던 시험장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제가 천재적인 운전력을 가진 줄로 착각하고 그대로 1트에 기능을 패스할 뻔했습니다. 뻔뻔하게 주제도 모르고 인생은 기세라며 다음 주에 바로 2트를 시도했습니다만 보기 좋게 주차선을 밟고 들어가 밟고 나오면서 멘탈을 지키지 못하고 금세 망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대망의 3트. 이제야 전략을 짭니다. 들어갈 때든 나올 때든 한번만 밟자. 그리고 나머지를 클리어하는 것이다. 네… 드디어 해낸 것입니다. 이제 연습 면허를 손에 쥔 것입니다. 조수석 30년 경력의 제가 드디어. 운전석으로 등업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운과 꾀를 동원해 야매로 통과한 기능을 제가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겠지요. 동시에 다른 이들의 차로 연습할 수 있는 담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한 저는.

두둥.
회피. 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한달… 두달… 세달…
주위에서 보다 못한 지인이 실내운전학원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사장님이 여성분이셔서 약간의 용기가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한번 간과했죠. 마도로스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10회를 채우지 못하고 이탈자가 되었습니다. 상처투성이 가슴을 안고 무면허자의 삶으로 돌아왔어요. 그래, 좀 더 열심히 일해서 택시비를 벌자. 이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렵지 않았어요.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잖아요.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는 계기가 된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멀쩡한 사람이 조수석에 앉고 환자가 운전을 하는 상황, 혹시 경험해 보셨나요. 저는 저 스스로가 너무 파렴치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대로 무섭다고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만둔다면 저는 소중한 사람들이 아플 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주행 시험에 응시하여 종료선 200미터를 앞두고 울음이 터지는 바람에 감독관의 물음표 세례를 받는 자체 세러모니까지 완벽하게 해내면서 운전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이제는 짝궁이 술을 마시면 데리러 갈 수도 있고, 가을에는 엄마를 모시고 단풍 놀이를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출근 코스는 마스터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자차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이 찾아왔을 때 할 줄 몰라서 불편한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하는 민망한 상황은 스스로 퇴치하였음을 기특해 하고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가르며 파도를 호령하듯 원생을 호통치시는 분 말고, 혹시 딸 가진 아버지 선생님이 계시면 그분으로 꼭 좀 부탁한다는 저의 당부를 듣고 빵 터지신 운전학원 사모님께 이 면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그간 수없이 저를 픽드롭 해주었던 착한 지인들에게도. 구남친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겠네요.
뭐 엄청난 걸 한 것처럼 호들갑 떨어서 죄송합니다. 잠깐이라도 웃으셨다면 그걸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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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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