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辭讓)하는 마음은 커먼즈(공유지)를 만든다

빈고게시판

자본의 바깥 공부하고 이화서원 가족들과 나눈 이야기 공유합니다.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 사양(辭讓)하는 마음은 커먼즈(공유지)를 만든다

 

영화 호프에서는 씨발이라는 말이 천번은 나오는 것처럼 모든 대화에 씨발이 들어갑니다. 말이라기 보다는 추임새에 가깝습니다.

자본의 바깥 공부에서는 타인을 위해 양보한다는 ‘사양(辭讓)’이라는 말을 이틀 동안 천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추임새가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에 새겨야 할 어떤 의식 진화의 단계를 말해 줍니다. 사양(辭讓)이라는 감정과 실천을 통과하지 못하면 ‘인간인가?’ 하는 의문을 받게 됩니다.

나에게 자유가 있지만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정한 선을 지킬 수 있어야 인간입니다.

조선 시대의 유명한 논쟁 중에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철학적 논쟁입니다.

사단(四端)은 인간의 본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 네가지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네가지를 키우는 마음을 하나씩 설명합니다.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는 예(禮)라는 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배려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맹자의 공손추편에 나옵니다.

예(禮)는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삶 정도로 일단 가볍게 해석합니다.

맹자는 사단(四端)을 실현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네 마음을 쓸 수 없으면 사람이라고 말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인간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이 마음이 있어서 ‘본성은 선하다(性善說)’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아는 윤리적 의제인데, 이 의제를 경제와 사회 구조, 특히 돈에 적용해서 ‘이자를 사양(辭讓)하는 은행’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그런 은행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빈고(https://bingobank.org/)’입니다.

그 동안 8억 정도의 예금 출자를 받았고, 사회의 의미있는 과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제 빈고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예금 출자를 했습니다.

함께 공부한 세 분이 예금 출자를 해서 이화서원은 빈고의 공동체 회원이 되었습니다.

빈고는 보통의 시중은행과 거의 유사한 운영을 합니다.

입금과 출금이 자유로운 주거래은행으로 마음만 먹으면 사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단지 이자를 사양(辭讓)하고 이익을 사양해서 공유지를 넓혀가는 힘을 만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자본의 바깥 공부는 매년 한번 이화서원에서 열겠습니다.

보경 선생님은 벌써 내년 공부에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이화서원은 의식진화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고, 빈고와 함께 이자를 사양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의 공부를 하겠습니다.

 

지음에게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 글을 써 드리면서 ‘사양(辭讓)하는 마음은 커먼즈(공유지)를 만든다’라고 써드렸습니다.

사양지심 예지단야 (辭讓之心 禮之端也)의 가장 현대적인 재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06빈고게시판
빛살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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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z

    빛살 김재형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빈고 조합원 오z입니다.
    제가 어떻게 빛살님의 성함을 알까요?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012년 여름, 저는 가족과 함께 귀농을 모색했습니다. 귀농지로 전라도 곡성을 선택하여 그곳에서 지내면서 곡성의 죽곡면 분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쌓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당시 선생님께서 관장으로 계셨던 농민도서관에도 들러 말씀도 나누고 직접 귀농지를 소개해주셨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해 가을에는 다중지성의 정원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시인과 함께 시를 지으며 선생님의 와룡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지요. 전기도 수도도 없이 지표수 계곡물을 끌어 생활용수로 사용하셨던 산 중턱의 집은 21세기 무릉도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매해 여름과 겨울 농한기마다 죽곡 농민도서관에서 농민인문학 강연을 기획하셨지요. 그때 저는 2012년 여름 강연자로 의 저자 배병삼 선생님을 추천했고, 운 좋게 인연이 닿아 배병삼 선생님께서 영남에서 곡성까지 오셔서 귀한 강연을 해 주셨습니다. 당시 배병삼 선생님은 유교가 흔히 생각하듯 수직적 가부장제의 꼰대 문화[三剛]가 아니라 부모, 스승, 친구를 상호 존중하여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질서[五倫]에 그 핵심이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2019년, 의 21세기 주석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을 탈고하셨습니다. 배병삼 선생님은 맹자가 이천년 전 중국 대륙에서 제각각의 정치 세력 간 전쟁으로 사람들이 도륙당하는 일이 일상이었던 전국시대, 문명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시대에 인간의 선량함을 믿고 그것을 네 실마리[四端]로 발견하면서 문명 재건의 희망을 설파했던 데서 “마음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을 붙이셨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이 제목이 아직도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정치”가 속된 말로 정치질, 조금 세련된 말로 정치 공학, 학문적 언어로 포장하여 마키아벨리즘으로만 여겨지는 세태를 생각하면 “마음의 정치학”이 낡은 것의 충격을 넘어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중에 저도 두 해 전 빈고를 만났고, 이곳의 경제 원리를 알게 되면서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먼저 생각 났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의 경제학이 아니라 사양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의 경제학. 어쩌면 이익을 추구하는 가상의 인간을 상정하여 그 체계를 극단적으로 추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인해 작금의 문명은 최전성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오히려 그로 인해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 시대에 빈고의 활동은 맹자가 이천 년 전 문명의 위기를 헤쳐나갈 대안으로 “마음의 정치학”을 절실히 주장한 것처럼, “마음의 경제학”이라고 부를 만한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도 빛살 선생님과 이렇게 마주칠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세계화된 자본주의와 네트워크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화된 자본과 정보의 인프라가 우리 시대 총체적 위기의 원인이지만 한편으로 그 위기를 극복할 커먼즈를 확대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빈고 조합원들끼리 저로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모두 계좌로 연결되어 있는” 커먼즈를 이루고 있는 한 이런 재회도 가능한 듯합니다.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합원 오z 오승현 드림.

  • 김재형

    승현님 고맙습니다. 오래전 일이어서 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오래전 저와 만났던 분의 글을 다시 읽는 건 기억을 다시 불러옵니다. 제가 그 시절 생태주의 실천을 가장 높은 단계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꿈꾸던 걸 다해봤어요.

  • 빈고

    책모임을 함께하신 야안 조합원의 덧글을 옮겨옵니다.

    —–

    지음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지음의 이야기를 들으니 돈이 많던, 적던, 없던, ‘존엄한’ 인간들이 서로 자기 자본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사양하며 만들어가는 우정의 연대가 떠올랐다. 우리는 지음이 만들어가는 공유지에서 존엄함을 느낀다.

    왜 공부를 하며 ‘존엄’이라는 느낌이 계속 맴돌았는지 이제 알것 같다. 현재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없을때 느끼는 비루함이 있다. 우리가 돈을 추구하는것 중에 하나가 아마도 존재의 당당함과 존엄을 느끼고 싶어서 일 것이다.

    지음의 ‘사양’경제는 돈이 없는 사람도 자기가 판단하여 무이자로 얻게 되는 이익을 ‘사양’하며 다시 빈고에 돌려줄 수도 있고,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서 그냥 수혜를 받는게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체성이 나온다. 그때 비로소 한 주체자로 존엄을 지키고 당당하게 빈고의 공동체 일원으로 손잡을 수 있는 것이다. 존엄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연대가 빈고에서 느껴진다.

    에서 지음과 살구는 은행의 이자 구조를 바꾸는게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세상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듣고보니 그도 그랬다.

    자본의 바깥에서 빈고가 ‘사양경제’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이화서원은 자본의 바깥에서 ‘선물경제’로 만들어진 공동체다. 우리는 선물처럼 돈을 주고 받으며 공간을 유지하고, 함께하는 공동체와 연대 한다. 우리는 그렇게 유기적으로 사랑과 감사로 연결되어 있다. 지음이 말하는 은혜가 흐르는 은행 빈고처럼 이화서원도 사랑과 감사가 흐르고 있다. 이화서원의 우물은행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선물처럼 돈이 흐르고 있다. 우물물을 떠간 사람이 다시 돌려줄때 빚을 갚는게 아니고 누군가를 위해 그 돈이 쓰일 수 있도록 다시 우물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빈고의 은행은 이렇다. 내가 은행 빈고에 돈을 넣어 놓는 동안에 내 돈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공동체나 개인에게 대출되어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쓰이게 될것이다. 나는 빈고에서 이자를 받을 수도 있고, 이자를 사양하며 빈고에 남겨두고 그 이자가 또 좋은 일에 사용되도록 할 수도 있다. 내가 쓸일이 있으면 내가 넣어둔 돈을 언제든 찾을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자본주의의 심장인 은행을 통해 만들어가자는 지음과 살구의 꿈에 가슴이 일렁인다.
    살구와 지음은 삶의 혁명가다. 그들에게선 혁명가의 불꽃이 느껴진다.

    커뮤니티엔 이미 우리가 있었다. 아주 옛날부터 인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살고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내것을 사양하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마음과 물질을 나누고 있었다. 은행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게 지음과 살구의 자유로운 정신이고 반짝이는 지점이었다.

    지음은 강의를 마치며 우공이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공의 결의가 산신령을 놀라게해서 하느님이 산을 옮겨줬다는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세상사에선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모이면 태산 두개도 바다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공과 하늘 마음의 사람들이 함께 옮긴 두개의 산은 바닷가 사람들에게 농토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우리가 모두 한줄로 서서 태산 두개를 허물어 농토가 필요했던 바닷가 마을까지 흙을 전달하며 나르는 모습이!
    우린 그렇게 협력하여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주 옛날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세상을 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각지역의 공동체와 꿈꾸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있는 빛살선생님께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다. 빛살선생님 품성에서 나오는 자유와 즐거움, 천진성. 그리고 천지부모 자연의 품 속에서 감동하게 되는 평안하고 즐거운 순간들,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것이며, 함께 우정을 나누며 연대하는 것이라는 걸 빛살선생님을 통해 매번 배우게 된다는건 커다란 축복이다. 내리는 비를 조금씩 맞으며 계곡에서 공부하는것을 빛살선생님이 아니라면 누가 상상하겠는가. 그리고 이런 공부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가능한 커뮤니티의 풍요를 누렸다.

    지음과 함께 을 공부하며 이화서원 존재 의미에 대해 더 깊게 느끼게 된다. 빈고를 만들어 온 지음과 살구 빈고의 식구들이 멋지고 고마운 만큼, 함께 이화서원을 만들어온 영혼의 벗님들이 떠오르며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지역 여성회 친구들도, 농사팀도 더욱 새롭게 너무 감사했다. 우린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도 있다.

    자본의 바깥을 공부하며 내 사유의 바깥을 본다. 앞으로의 삶이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울것 같다.
    지음의 은 우리를 자유케 한다.

    11월 28~2일 우리는 홍성에 있는 지음과 살구의 빈집에서 함께 주역을 공부하기로 하였다. 삶으로 혁명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으시다면 그날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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