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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게시판 빈고 공유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지음
  • 작성일시 : 2023-11-27 11:59
  • 조회 : 911

2023 빈고 활동가대회 발제문입니다. 12월 2일 활동가대회에서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빈고 공유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빈고 조합원은 어떤 사람들일까? 빈고의 조합원은 다양하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면서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서 가입한 사람들, 공동체를 지원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빈고에 출자하는 사람들, 반자본주의 실천을 함께하고자 가입한 사람들, 대안적인 금융실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등등. 빈고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지출과 이체를 위해서 소액을 출자하는 사람부터 전재산에 가까운 금액을 출자하는 사람도 있다. 필요와 이익을 위해서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신념과 호혜를 위해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각자가 각자의 생각과 관점으로 빈고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빈고는 무엇이고, 빈고 조합원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반자본주의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화폐를 접하는 4가지 계기 즉 수입/지출/저축/대출에 따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자본을 위한 노동과 자본을 위한 소비를 거부하는 것. 자본을 위한 저축과 자본을 위한 대출을 하지 않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 사람이 이 모든 활동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끝나야 가능할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할지라도 자본가의 회사가 문닫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임금노동이 아닌 대안적인 형태의 노동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대단히 윤리적인 소비단체 활동가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소비하는 모든 것을 윤리적으로 할 수는 없다. 소비자협동조합이 반자본적으로 생산된 물품만으로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부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반자본적으로 운용하는 것인 가능할까?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있어도,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전세보증금이 있어도 월세로 살아야 할까? 주변 친구들에게 가진 목돈을 무이자로 빌려줄 수 있을까? 반대로, 자본을 위한 대출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자본의 은행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에서 필요한 돈을 충분히 빌릴 수 있을까? 사업을 온전히 자기 자본만으로 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돈을 빌리고 이자를 주면 안되는 것일까? 

반자본이라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해도 현실에서의 수많은 선택은 여러가지 이유로 제약되고 모순되기 마련이다. 여기에 어떤 갈등도 없다면 오히려 의심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서 발딛고 이를 바꾸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가 모여 있는 것이다. 혼자서 다짐만으로 개인이 바뀌고 사회가 바뀔 것이었다면 이미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서는 쉽게 자본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약하고 부족한 존재들이다. 고립되어 의지할 사람들이 없는 사람은 자본밖에 의지할 것이 없다. 고립되어 은행 또는 대부업체 말고는 돈을 융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자를 냄으로서 자본에 기여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반대로 자신도 타인에게 돈을 빌려준다면 그 이상의 자본수익을 노리지 않을 수 없다.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라도 경쟁자 또는 적일 뿐이라면 다른 선택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빈고는 철저한 반자본주의자들 또는 대단히 착한 사람들만이 가입을 하는 결사체가 아니다. 또한 빈고에 가입을 하면서 자동적으로 반자본주의자나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빈고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 큰 틀에서 동의한다면, 실천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실천을 통해 반자본주체가 성장하고, 그 다음 더 큰 실천을 한다. 신념은 눈에 보이지 않고, 몸은 신념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실천으로서 자신과 타인들에게 확인되고, 습관처럼 몸에 익숙해지 않으면 안된다. 빈고의 활동은 작은 실천들을 쌓아가면서 스스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수련의 과정,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고 교통하고 교환하면서 스스로와 타인의 신뢰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점점 우리가 애초에 동의했던 그 모습으로 점차 다가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최종의 마무리는 죽음 또는 죽음 직전의 마지막 결정과 함께 완성된다. 삶은 길고 변화가 많은 과정이다. 반자본 혁명가도 권력자나 보수인사로 마무리되기 일쑤고, 평생을 악착같이 자본가로 살다가 마지막에 모든 것을 사회에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의도와는 다르게 질병으로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사람이 어떻게 변화할지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미리 알거나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어떤 선택도 나름의 이유와 그럴만한 배경이 있기에 존중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생각과 몸을 만들어가며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갈고 닦고, 또 그러한 판단을 도와주고 함께할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을 뿐이다. 

빈고의 실천은 사소한 것이다. 우리가 대단한 자본주의의 지지자로서 자본의 은행을 거래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빈고에 출자하고, 빈고를 이용하는 실천을 때때로 반복하는 것이다. 각각의 실천들 그리고 화폐가 자본이 아닌 커먼즈로 머물고 있는 시간들은 각각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실천들이 영원한 것은 아니고 언제든 번복될 수도 있다. 출자활동은 이자나 배당을 거부하는 것이지만, 빈고는 출자지지금을 매년 적립하고 있고, 만약 탈퇴한다면 그동안 사양했던 배당을 한꺼번에 회수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이용활동은 이용에서 발생한 수익을 모두와 공유하는 것이지만, 수익이 예상과 다르게 발생하지 않거나 그 수익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이 없거나 필요하지 않은 삶을 위한 노력과 실천들을 해나가지만 언제든 실패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다르게 얘기하면 빈고의 실천은 어쩌면 연극과 유사한 것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정도의 자본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우리는 자본수익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연극을 해보기로 한다. 이곳이 자본주의가 아닌 것처럼, 각자 자본이 없거나, 자본이 있어도 자본수익에 기대지 않기로 설정한다. 연극을 하고 있을 때만큼은 다른 세상을 사는 것이다. 물론 이 연극은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지만, 또 다시 연극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연극은 아주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어떤 연기자는 연극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는 일정정도의 자본과 자본수익을 아니 어쩌면 빚을 남기고 떠날 것이다. 이제 그는 정말 자본과 자본수익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자본은 더 이상 자본이 아니라 다음 연기자를 위한 공유지가 된다. 그는 성공적인 연기를 수행했고 완성했다. 그가 살았던 세상은 자본주의일까 아닐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빈고의 조합원은 탈자본 원칙에 동의하고 탈자본 금융실천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실천의 방법과 정도와 수준과 계획은 누가 강제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동체나 다른 활동가가 함께 하면서 조언하고 살피고 평가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능한 만큼 조금씩 자본의 세계에서 커먼즈의 세계로 자신의 삶을 옮겨오는 것이다. 자산의 대부분을 옮겨오고 대출의 대부분을 옮겨온다. 노동을 통한 수입을 늘리고, 소비되는 지출을 줄임으로써 더 많은 비율의 화폐를 자본이 아닌 커먼즈를 위해 사용하게 된다. 그것이 성공한 만큼 우리는 자본을 통제하고, 더 풍요로운 공유지를 만들고 또 풍요를 즐길 수 있다. 먼훗날 우리는 돌이켜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얼마나 자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는가? 얼마나 자본을 공유지로 변화시켜왔는가? 얼마나 각자의 삶을 만들어 왔는가? 물론 질 때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싸움의 기억과 전진의 성과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평범하지만 위대한 공유자, 빈고 조합원으로 영구히 기억될 것이다. 


댓글 1

23-11-27 18:15

꾸준히 실천해서 습관처럼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내용이 마음에 남습니다. 말로만 가치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모순적인 선택을 하며 살고 있다는 반성도 합니다.

딱히 '잘' 살고 싶은 욕심까지는 없는데 그냥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아서...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여러 공간에서 (저는 당분간은 온라인에서만;;) 함께 생각을 나눌 조합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몸뚱이가 멀리 있어 활동가대회를 못 가는 게 아쉬워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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