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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운영활동가 편지 (빈고 뉴스레터 8월호 기고)

  • 민산초
  • 작성일시 : 2024-08-13 18:40
  • 조회 : 188

안녕하세요. 8월 편지를 쓰게 된 빈고 15기 운영활동가 산초입니다. 매일매일의 햇볕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오는 뜨거운 여름이네요. 이 글 읽고 계시는 여러분과 이웃들,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이 폭염으로부터 무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대학생이고, 지금은 방학을 한 상태에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죠. 지금 편의점에서 일한지 어느덧 세 달이 지났는데요. 종로3가 쪽에 있는 편의점이라 그런지 근처 귀금속 매장 기술자분들, 유통/판매업 종사자 분들이 주로 단골로 오세요. 기술자 분들은 늘 손가락 끝에 까맣게 기름때와 금속가루를 묻히고 오셔서는 아마 부자재를 담는데 쓰셨을 작은 지퍼백에서 카드나 현금을 꺼내서 물건을 계산하시죠. 이런 분들은 대개 50~60대 손님이시기 마련인데 점장님께서는 꼰대스러운 사람이 많다며 굳이 그런 진상 손님들을 대단히 친절하게 응대하지 말라고 따로 언급까지 하셨죠. 그 이유가 특이한게 한 명이 친절하게 응대하면 그 손님들은 다른 직원들이 조금만 불친절해도 그 친절한 직원과 비교하면서 불멘소리를 하고 이른바 ‘진상짓’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한 번은 멀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손님 두 분 계산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손님 한 분이 더 들어오셨고, 그 분은 며칠 전부터 한 번씩 들리셨던 손님인데 아마도 행려자셨던 것 같아요. 먼저 오신 중년 손님 두 분을 응대하고 있는 와중에 그 손님께서 카운터로 오셔서는 젓가락을 하나 주면 안되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평소 다른 손님들 응대하듯이 기계처럼 얘기했죠.

“컵라면이나 도시락 구매하셔야 젓가락 드려요.”

그 손님은 그대로 매장을 나가셨어요. 그 상황을 바로 앞에서 본 먼저 온 손님 두 분 중 한 분은 다급하게 본인이 컵라면을 살테니 젓가락을 드리면 안되냐고 얘기하셨지만 행려자 손님은 이미 나가신 뒤였고, 대신 컵라면을 사겠다던 손님은 저를 질책하며 젓가락 하나 그냥 드리면 안되는거냐고 하셨어요.ㅜ 저는 잠시 생각하고는,

“점장님께서 나무젓가락 그냥 드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런 손님 많거든요.”

사실 점장님은 진상 손님에 대한 태도만 언급했지 이런 경우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죠. 아무튼 손님은 나무젓가락 뭐 얼마나 하냐면서 그걸 주지말라 그랬냐고 되물으셨고, 이미 없는 얘기를 대충 둘러대기 시작한 저는 평소 점장님이 진상손님에 대해 스트레스 받는 걸 얘기하면서 상황을 넘기려 했죠. 중년 손님들은 이해가 안된다며 핀잔아닌 핀잔을 두며 매장을 나갔습니다.


생각이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자기 물건도 아니면서 주네 마네하는 손님들을 생각하고, 점장님이 뭐라고 하셨던 간에 나무젓가락 하나는 그냥 드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행려자와 같은 동냥을 하는 이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를 생각하고, 그렇게 끝에는 질책받는 상황에 놓이자 없는 말을 지어내 상황을 모면하려한 저를 생각했습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작년과 다르게 이번 학기를 상당히 얼렁뚱땅 보낸 저는 교수님께 질책받는 상황이 몇 번 벌어졌고, 그럴 때마다 제가 뱉었던 말이 ‘~때문에 너무 바빴습니다.' 였어요. 사실 그렇게까지 바쁘진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하면 나를 뺀 바깥의 것들을 가져다가 교묘하게 빠져나가며 책임감 없이 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점장님을 인정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자아없는 대리인을 자처한 스스로를 돌아보니 기분이 많이 암담했어요. 제게 부과되는 책임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꽤나 버거운 듯 합니다. ‘성실’ ‘갓생'이라는 맞지 않는 옷에 몸을 우겨넣으려다가 호되게 당하는 중인건지,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은 탓인건지, 칭찬에만 익숙해 질책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인건지, 이게 다 체력문제인건지, 날이 너무 더운 탓인건지 모르겠어요. 이런 결국에는 또 탓을 하고 있네요. 


그래서 저는 일단 다음 학기 강의를 하나 줄여볼 계획입니다. 머잖아 헬스장도 다시 등록할 생각이구요. 그러면 저는 노력하고 바뀐 거니까 정정당당하게 탓을 할 수 있게되는 거죠. 농담이구요. 사회를 살아가며 한 개인에게 부과되는 책임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겠죠. 이 일기장 같은 편지를 읽는 여러분에게 주어진 책임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그리고 무사히 짊어지고 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화이팅! 저도 화이팅!


댓글 1

이파람 24-08-14 00:06

아. 글이 참 진솔해서 좋네요. 나는 이렇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돌아보기도 하고요. 나열하신 여러가지 추측 중에서 체력이 약해서라는 데 시선이 머뭅니다. 헬스장 등록하시고 건강계 챌린지 함께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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