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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고게시판 기민여행이야기 #150412

  • 김기민
  • 작성일시 : 2015-04-13 04:47
  • 조회 : 7,304

Legzira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얻은 하늘

 

 

모로코에서의 여정이 끝나가요.

딱 5주를 머무는데 이제 세 번의 밤을 보내고 나면 북아프리카를 떠나 다시 남유럽으로 돌아가요.

4개월여의 여정도 어느덧 반을 넘어섰어요. 이제 8주하고도 5일이 더 지나면 나는 한국에 돌아갈 거예요.

참 일장춘몽같은 시간이죠.

 

오늘은 별 거 안 하며 (뭐 늘 그랬지만) 그 동안 찍은 사진이나 다시 들춰내보고,

그 중에 몇몇 사진을 페이스북에 실어다나르고 짤막한 이야기를 쓰고 한국의 소식들을 살펴보고

혼자 웃고 울컥하고 침울해지다가 잊어버리고는 음악 듣고 햇볕을 쬐었어요.

와. 적어놓고 보니 평소보다 대단히 많은 것을 했네요.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또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짐하고 결심해요.

돌아가 그 다짐과 결심들을 얼마나 잘 지켜나갈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지만, 뭐 두고 보면 알겠죠.

나도 궁금해요.

 

내일은 모로코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탈 거예요.

어제 그 기차표를 예매하러 모로코 철도청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결제창까지 갔는데

간편결제를 시도했더니 최초에 카드 등록을 해놓아야 하는데 여기서 휴대전화 인증번호가 필요해요.

그래서 일반결제를 시도했더니 매번 결제 요청할 때마다 휴대전화 인증번호가 필요해요.

뭐죠 이건. 뭐가 간편하고 뭐가 일반적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간편하든 일반적이든 일단 나보고 엿먹으란 건가요.)

결국 기차역까지 6Km 를 걸어가서 자동판매기로 승차권을 구입했어요.

비슷한 경험을 프랑스 철도청 홈페이지에서 겪었는데, 각 나라별 예매 홈페이지는 뭐 약속이라도 했나요.

외국 사이트인데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나라 안전결제 창이 뜨는 걸 보며,

아 이거야 말로 글로벌한 한국의 빅엿이구나 싶었어요.

뭐 별 수 있나요. 있는 건 시간 뿐이니 부지런히 걸어갔다 돌아오면 될 일이죠.

 

가고 오는 길에 카사블랑카 시내, 주거지, 빈민촌, 항구 등등을 지나쳤어요.

그래, 이거야 말로 여행이 아닌 현지 체험이지, 그런 감상은 없었어요.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인데 체험은 개뿔. 들여다보는 것으로 체험이라 생각하고 만족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나는 그냥 그 옆을 지나 걸어갔을 뿐이예요. 그리고 나는 관광 구역이 아닌 주민들의 일상생활,

현지인들의 이야기가 별로 궁금하지 않아요.

들리는 이야기와 보이는 풍경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릴 이유는 없지만,

진정한 여행이란 그런 것들을 듣고 보는 거지, 라는 마음으로 애써 다가가서 자세히 보려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궁금하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보는 것만으로는 다 볼 수 없고, 이야기를 해줘도 나는 못알아먹을 테니까요.

그런 가운데서 어떤 연대감, 깨달음, 여행이 주는 단상들, 그런 로맨틱한 것들이 샘솟지 않았어요.

내 가슴은 돌덩이같으니까요.

 

오늘은 머무는 숙소에서 무슨 행사가 있나봐요. 점심 무렵부터 부산스레 사람들이 몰려와서는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고 다함께 구호를 외치고 거실에 빔프로젝트로 무슨 영상인가를 상영하려고 준비하고 그랬어요.

음악은 내게 그저 시끄럽기만 했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부산스러워 보일 뿐이었어요.

뭘 하는 건지 가서 물어보고 싶지 않았고, 마주칠 때마다 내게 인사를 하면 나도 답례를 해야 하는 게 조금 귀찮았어요.

나만의 평온함이 침해받는 것 같아 별로, 그닥 달갑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는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을 뿐이니까요.

 

가끔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꽤 자주) 냉소적이고 폐쇄적으로 반응하곤 해요.

사람도 환경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좀 비켜줬으면 하는 마음이랄까요.

종종 그런 마음을 느낄 때면 나도 놀랄 때가 있지만 나는 지금껏 그게 별로 이상한 일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옆에 있던 사람은 날 참 괴팍한 사람으로 봤을 수도 있겠구나 싶단 생각이

오늘 불현듯 들었던 건 왜죠?

 

 

 

지금은 카사블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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