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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빈고책읽기8] 네그리&하트, <위기에 맞서는 반란>, <<선언>> 중

  • 빈고
  • 작성일시 : 2018-07-31 00:18
  • 조회 : 3,790

2018년 7월 24일 여덟번째 책읽기 모임이 온지곤지에서 열렸습니다. 

정석, 재길, 성심, 모호, 인정, 서원, 지음 7명이 모여서 <<선언>>의 2장을 함께 읽었습니다. 


지난번에 함께 봤던 네가지 주체성들의 반란을 아래와 같은 네가지 선언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빚진 사람들 -> 빚을 전복하라

미디어된 사람들 -> 진리를 만들어라

보안된 사람들 -> 탈주하라

대의된 사람들 -> 당신 자신을 구성하라


다음은 이 책의 마지막 결론 부분입니다. 이번엔 서대문 레드북스에서 모입니다. ^^


다음 빈고 책읽기모임 (9회차)

- 시간 : 2018.07.31 화요일 7:30

- 장소 : 서대문 레드북스 

- 함께 읽을 책 :  네그리 & 하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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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 : 빈고폰 010-3058-1968

- 모임 소개 : 2018 공동체은행 빈고 책읽기모임에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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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맞서는 반란>


현대 사회의 지배받는 네 개의 형상들은 반란을 일으킬 능력을 갖고 있고, 그들 자신을 전복시킬 능력을 갖고 있고 권력의 형상들이 될 능력을 갖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삶의 신자유주의적 변형들은 단순히 그러한 변형들이 생산한 주체들의 권력을 빼앗고 궁핍하게 한 것만이 아니다. 사실상 오늘날 프롤레타리아가 겪고 있는 궁핍화는, 맑스와 엥겔스가 이론화했듯이, 임금하락과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삶을 위한 물질적 자원의 고갈만이 아니라 (그리고 점점 더) 우리의 인간적 능력들의 박탈, 특히 우리가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의 박탈이기도 하다. 


당신이 빚의 무게에 눌려 있을 때, 당신의 주의가 최면에 걸려 화면에 고착되어 있을 때, 당신이 당신의 집을 감옥으로 만들었을 때, 당신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인간의 정념들을 얼마나 많이 개별화하고 그것들에 부담을 주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당신은 혼자이고 잠재력을 빼앗긴다. 그러나 당신이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당신은 그 위기가 함께-있음을 낳았음을 알게 된다. ... 우리는 궁핍함, 비참함, 그리고 고독과 같은 조건들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행위를 '함께-있음'과 다시 연결시킬 힘을 발견해야 한다. 예를들어 개인적 고통을 표현하는 분노가, 그것의 외로운 싸움에서 조차, 함께-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특이하게 된다. 왜냐하면 특이하게-되기는 개별적으로-되기와는 대조적으로, 함께-있음 안에서 다시 한 번 주체적 힘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이한 주체성은 다른 특이성들과의 재구성 없이는 어떠한 사건도 없다는 것, 반란 없이는 특이한 주체성들의 함께-있음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이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즉 자기긍정, 자기가치화, 그리고 주체적 결정으로 구현된다. 이 모든 것들은 함께-있음의 상태를 향해 열려 있다. 


빚을 전복하라

빚에 대한 거부는 따라서 공허한, 개별화된, 파편화된 지형을 생산하기 위해 사회적 유대나 법적 관계들을 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구속[유대]bond와 채무[은혜]debt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러한 구속bonds와 채무debts에서 탈주한다. 맑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주요한 사회적 연결로서의 화폐에 대해 말할 때 그는 현실주의적이었다. 맑스는, “개인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사회와의 유대만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을 갖고 다닌다.”라고 썼다. 채무에 대한 거부는 화폐의 권력과 화폐가 창출하는 구속bonds를 파괴하고 동시에 새로운 유대bonds들과 새로운 형태의 은혜를 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금융의 구속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에 의해 연결되면, 우리는 점차 서로에게 빚을 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상호의존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주체적 형상들은 이미, 삶정치적 생산과 가치화에 의해 투여된 삶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새로운 경제적 상황에서 준비되고 발전되었으며, 특이성들의 협력 위에 세워졌다. 협력과 생산적 상호의존성은 공통적인 것의 조건들이고, 공통적인 것은 이제 사회적 생산의 주요한 기초를 구성한다. 우리를 서로 연결시키는 우리의 사회적 유대들은 하나의 생산수단이 된다. 우리의 상호의존성에서, 우리의 공통성commonality에서, 우리는 생산성과 힘[역량]을 발견한다.


진리를 만들라

우리가 다른 정보 혹은 다른 기술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우리는 진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있으면서 소통하는 네트워크에서 특이성들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네트워크에서 능동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에 앞서 당신은 특이성이 되어야 한다. ...  당신이 특이성이 되면, 당신은 결코 총체적 자아가 되지 않을 것이다. 특이성들은, 내적으로는 다양한 상태로 있고 오직 외적으로만 그들 자신이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므로 네트워크에서 특이성들의 소통과 표현은 개인적이지 않고 합창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함께-있는 동안 우리 자신을 만들면서 하나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언제나 활동적이다. 


우리가 미디어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미디어와 상호작용하는 것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와 우리가 맺는 관계들이 변하는 것이다. 우선 특이성들로서의 우리는 네트워크 속에서 자유로운 이동성을 얻는다. 여기서는 정치적 조직의 형식이 핵심적이다. 둘째 미디어는 우리의 집단적 자기 생산을 위한 도구가 된다. 우리는, 개인적이기를 멈추고, 공통의 언어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면서, 타자들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를 구성할 때에만, 새로운 진리를 창출할 수 있다. 진리 만들기는 집단적이고 언어적인 창조활동이다. ... 따라서 네트워크에서 특이성들 간의 진정한 소통은 집단 야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예를들어, 학생 점거들에서 발생하는, 지식 생산 및 자기학습 경험과 같은 것이다. 함께-있음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소통과 집단지성이 구성되기 때문에, 그 순간은 마치 마술처럼, 깨우침처럼 느껴진다. 


탈주하라

당신이 감옥을 피할수도 없고, 군대와 맞서 싸울수도 없다. 그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도망가는 것뿐이다. 사슬을 끊고 도주하라. 아주 자주, 탈주는 열린 공간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권력은 사물이 아니라 관계이다. 당신 앞에 서 있는 권력이 아무리 힘세고 오만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당신에 의존하고 있으며, 당신의 두려움을 먹고살며,단지 당신이 그 관계에 기꺼이 참여하기 때문에 생존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탈출구를 찾아라. 언제나 하나의 출구는 있게 마련이다. 탈주와 불복종은 자발적 예속에 대항하는 신뢰할 만한 무기들이다.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죽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에 있다."고 다소 비교秘敎적인 어투로 말한다. 스피노자의 견해에 따르면, 진정한 안전은 모든 적들을 압도하기 위해 가장 많은 힘을 축적하는데서 오지 않으며, 사도 바울의 카테천처럼 죽음을 물리치거나 악의 접근을 막는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불멸에 대해서는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만, 죽음이 그저 부록처럼 덧붙여지는 삶의 기쁨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야영시위대들은 - 이들은 함께-있으면서 토론하며, 의견이 다르고, 서로 다툰다. -스피노자가 예견했던 진리를 다시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안전과 두려움의 파괴는 자유의 집단적 구성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당신 자신을 구성하라

지금은 대의기계가 구체제 ancien regime 이다. 고오하제 헌법은 두세기가 넘도록 자신들의 시대를 누렸다. 그것으로도 아직 부족한가? 

어떻게 사람들이 공통적인 것 안에서 함께 밀접하게 연합하고 민주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을까? 어떻게 다중이, 민주주의를 재발명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공통적인 것의 제도들의 군주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제헌[구성] 과정의 임무다. 

금융채무가 사회적 유대로 변형되었을때, 특이성들이 생산적 네트워크 안에서 상호작용할 때, 안전에 대한 욕망이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이러한 세 가지 형상들의 전도로부터 민주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다. 


몇몇 친구들은, 우리에게, 왜 우리가 아직도 헌법[구성]들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왜 모든 규범적 구조들과 제도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모든 혁명은 헌법[구성] 권력을 필요로 한다. 혁명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혁명이 성취한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혁명을 더 멀리 나아가는 혁신을 향해 계속 열어두기 위해서 말이다. 제헌[구성] 권력은 우리의 자유 평등 그리고 연대에 따라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삶을 조직하는데 필수적이다. 제헌[구성] 과정들은, 사회적 갈등들, 필요들, 욕망들의 사회적 직조와 물질적 기반에 더욱 적합하도록 부단히 정치적 구조들과 제도들을 갱신한다.  좀 더 철학적으로 말하면, 제헌[구성] 과정들은 주체성 생산의 장치들이다. ... 정치적 조직화는 언제나 주체성들의 생산을 요구한다. 우리는, 민주적 정치행동과 공통적인 것의 자기관리를 감당할 수 있는 다중을 생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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