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 은행 빈고와 새로운 제도의 구성 (카오모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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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은행 빈고와 새로운 제도의 구성

– 카오모(박서현) 조합원, <자본의 바깥> 후기

 

다른 삶을 위한 빈집의 제도는 무엇보다도 ‘빈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빈고는 구성원들이 커먼즈 은행이라 부르는 작은 금융 기관이다. 2025년 말 자본금이 6억이니 말이다(216). 빈고가 존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서울시 용산구에 빈자들이 모여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들이 사는 집은 ‘빈집’이라 불렀다. 빈고는 2018년까지 10년 간 실재했던 빈집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했다. 첫 번째 집이 생긴 이래 빈집은 약 1년 정도 기간에 일곱 개의 집을 새로 계약하는 식으로 급속히 확대됐다(206). 빈고는 여러 구성원들이 여러 집들에서 같이 살아가며 풀어내기 어려웠던 보증금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로 만들어졌다. 간단히 말해서 빈고는 빈집 구성원들의 복잡한 채권자-채무자 관계를 보편화하고 단순화하기 위해 필요했었다(93).

중요한 것은 빈고가 반-자본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자본은 자기 증식하는 가치이다. 이는 자본이 성장하는 것임을 함축한다. 우리는, 대부를 통해 자본으로 사용될 수 있는 예금에 은행이 이자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는 자본이 성장하듯 시간이 지나면 예금도 당연히 증가하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빈고는 자본과 다르다. 빈고는 성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 은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빈고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줄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빈고의 과제는 성장이 아닌 ‘다른’ 삶을 위한 제도가 되는 데 있다. 이것의 구체적 의미는 무엇인가.

빈고는 빈집과 같이 함께 사용하고 관리하는 집 즉 커먼즈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은행이다. 이는 빈고의 돈이 커먼즈를 확대하는 가치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커먼즈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산에는 돈이 든다. 빈고는 은행의 역할 즉 커먼즈를 만드려는 이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빌려준 돈, 대부금에 대해 이자 수익을 기대하는 것이 자본의 생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익을 실현하는 자본, 이자 낳는 자본이 곧 자기 증식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빈고는 돈을 빌려주면서도 자본이라면 으레 기대하는 이자 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는 빈고가 은행이면서도 더 이상 자본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빈고는 자본이 아니다. 오히려 빈고는 그것의 출자자와 이용자 그리고 운영자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공동의 것으로서 커먼즈이다. 중요한 것은 빈고가 빈집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제도로 기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제도는 한국에 존재하는 전세 제도를 통해서 공간을 임대하는 데 빈고가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했다. 전세 제도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목돈인 보증금을 맡기고 계약 기간을 거주한 다음 퇴거 시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는 한국 특유의 주택 임대차 방식이다. 빈고를 이용하여 목돈을 내고 전세로 집을 계약하는 것이 빈집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사양’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빈고는, <자본의 바깥>에서 소개되듯이 두 번의 사양이라기보다는(368), 세 번의 사양이라고 적절하게 명명할 수 있을 사양 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사양은 이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출자자의 사양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빈고에 출자하는 출자자는 은행에 예금할 때 으레 기대하는 이자를 사양한다. 이외에도 빈고의 돈을 사용하는 이용자의 사양이 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낼 경우 응당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한다. 은행에 이자를 내는 대신 이용자는 발생한 수익을 빈고에 낸다.

출자자의 출자금과 함께, 이용자가 빈고에 내는 이 금액은 이용자가 빈고를 사용하여 얻는 수익, 즉 줄어드는 월세 부담을 사양함으로써 생겨나는 공동의 기금이다(95). 이 기금은 커먼즈를 만드는 자원이 되었다(216). 이는 빈집에서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남겨두었으며 그렇게 누적된 남은 운영 자금 역시 결국 커먼즈를 만드는 자원이 되었던 것과 같았다. 이후에 빈고를 이용하여 커먼즈를 만들고자 했던 공동체 역시 전월세전환율과 동일한 이용분담금을 내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용분담금을 내는 것은 빈고를 이용해서 얻는 경제적 이익을 이들 공동체 즉 이용자가 사양하는 것이었다(210).

물론 빈고에서는 일반 은행처럼 출자자와 이용자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자자 역시 이용자가 되며 동시에 이용자로서의 출자자가 빈고에서 활동가는 활동가가 되었다. 즉 빈고에서는 1) 이자를 바라지 않는 출자자와 2) 은행을 이용할 경우 응당 내야하는 이자와 대비하여 빈고를 이용할 경우 생기는 차익을 바라지 않는 이용자 그리고 3) 커먼즈를 만드는 활동을 지원할 뿐 이러한 지원을 통해 생길 수 있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운영자가 결합되었다(277-278). 이는 빈고에서 출자자로서의 조합원이 빈고의 자원을 사용하여 활동하는 새로운 계약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278). 이는 출자자와 이용자를 그저 매개하는 일반 은행과는 분명 다른 측면이었다.

그런데 사실 빈고와 일반 은행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빈고가 일반 은행과 달리 금융 권력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빈고가 자원을 배분하는 데 있어 돈을 가진 기관이 심사를 통해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돈을 권력으로 이용하지 않기 위해 그것을 빈고에 쌓아두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빈고는 금융 권력과는 분명 달랐다. 자본이 이자 수익을 통해 더 큰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즉 자기 성장하는 가치이기 위해서는 대부를 해야 한다. 이러한 대부의 전제는 대부를 위한 돈 즉 대부금의 축적이다. 중요한 것은 빈고가 새로운 커먼즈를 만들기 위한 돈을 축적하는 것과, 일반 은행이 금융 권력이 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달랐다는 점이다. 오히려 빈고는 이러한 권력이 되지 않고자 유의하였으며 과도한 금액을 그것에 쌓아두려고 하지 않았다.

빈고의 이러한 특징은 공동체 금융과의 대비를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 금융은 돈을 공동체에 귀속시킨다. 기금을 적립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빈고는 출자자가 빈고의 구성원이기를 그만둘 경우, 그때까지 출자했던 금액, 즉 그때까지 쌓아온 적립금을 그에 대한 이자와 함께 지불한다. 왜 그러한 것일까? 그것은, 빈집과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으레 갖기 마련인 폐쇄성을 빈고가 경계했기 때문이다(40). 기금의 적립을 통해 공동체 금융은 그것의 자본을 마련한다. 이것이 공동체 금융의 성장의 토대가 된다. 돈이 돈을 버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빈고는 돈이 돈을 버는 식의 성장 즉 화폐 자본의 성장 방식에 반대한다(61). 이는 출자자의 사양과 이용자의 사양 이외에도 빈고의 특징을 말해주는 커먼즈 은행으로서의 빈고의 사양, 즉 ‘금융의 사양’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빈고가 출자금을 출자지지금으로 적립했던 것은 행여 출자자가 빈고의 구성원이기를 그만둘 때 그때까지 쌓아온 적립금과 함께 그에 대한 이자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자본의 바깥>에서 지적하듯이 빈고가 이렇게 출자지지금을 적립했던 것이 아니라 이를 모두 빈고적립금으로 보유했다면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 금융과 빈고의 차이이다. 공동체 금융은 이러한 보유를 통해 적립금의 규모를 확대하니 말이다. 이러한 보유는 곧 그것의 자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은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의 소유가 된다. 이것은, 빈고가 경계했던, 공동체 소유의 형태이다(313). 자본을 통해서 다시금 (자본) 수익을 적립하여 성장하는 공동체 소유의 자본이 되는 것이다.

빈고가 출자자가 빈고의 회원이기를 그만둘 때의 이자 지급에 대비하기 위해 적정 출자지지금을 적립했던 것은 빈고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313). 물론 이 건강함은 이런 일이 발생할 때 출자금과 그것의 이자를 지급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건강함은 빈고가 자본(의 금융)이 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것에서 비롯하는 건강함, 탈성장 금융으로 남아 있으며, 남아 있고자 하는 데서 비롯하는 건강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금융 기관이면서도 돈이 돈을 낳는 성장을 거부하는 빈고는 자본이 추동하는, 성장을 위한 삶과는 ‘다른’ 삶을 구현하기 위하여 빈집이 만들어낸 새로운 제도였다. 물론 다른 삶은 돈 벌기는 거의 안 하지만 돈 쓰기를 줄이는 것은 열심히 했던 빈집의 구성원, 즉 빈자들이 이미 실천하고 구현했던 것이었다(114). 돈을 더 잘 벌기 위해 더 큰 역량을 갖는 인적 자본으로 성장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세계에서 빈자들은 자본을 위해 일하지도 사지도 말라는 식의 다른 삶을 실천하고 구현했다. 다른 삶을 위한 제도였던 빈고는 여기에 저축하지 말라와 대출하지 말라를 추가한 것이었다(177). 이는 이러한 저축과 대출이 곧 자본의 은행의 성장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은행에의 저축을 통한 성장의 추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장으로부터의 벗어남은 곧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이는 가난한 삶에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가난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인 빈집(202)의 운영과 확대를 위해 필요했던 빈고는 금융기관임에도 자본의 금융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성장의 논리를 거부하면서 다른 삶을 추동하는 새로운 제도, 엔진이 되었다. 특히 이러한 거부는 빈고 스스로 성장을 추구하는 금융 권력이 되고자 하지 않는 원리인 세 번째 사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빈고의 사양은 빈고를 구성하는 출자자와 이용자의 사양만큼이나 어떤 ‘다른’ 금융 기관, 새로운 제도로서의 빈고의 특이성을 결정했다. 그것이 빈고 스스로 권력이 되도록 하지 않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물론 빈고가 이러한 사양을 실천하는 것은 빈고를 구성하는 출자자, 이용자가 출자자는 출자금에 대한 이자를 사양하고, 이용자는 빈고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수익을 사양하는 집단적 실천이 빈고의 운영의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다. 빈고라는 새로운 제도의 구성은 특정한 도덕적 개인의 윤리적 선택의 결과였던 것이 아니라 빈자들의 집단적 실천의 결과였다(383).

 

2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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