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쾌락주의자의 가계부 고찰기.
저번 3편을 올렸더니 고맙게도 글이 재밌다는 반응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페북에서 한 지인이 내 글을 공유했는데 그 글을 본 사람이 “글이 참 재밌다”며
“근데 이 사람이 정말 재무상담을 하는 사람이 맞느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지인이 맞다고 얘기하고 내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결국 연락은 오지 않았다.
너무 나의 찌질한 면모를 드러내서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앞으로는 진짜 전문적이고 박학다식하고 돈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려주는 글을
쓰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글은 세상에서 유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이미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내가 쓸 수 있는 얘기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빈자의 재무설계 1편 나는 왜 불안한가? http://goo.gl/6t2QWu
빈자의 재무설계 2편 나는 왜 촌스러운가? http://goo.gl/Vd6MSU
빈자의 재무설계 3편 나는 인기인이 되고 싶었다. http://goo.gl/eLin2L
저번 3편에서 나는 구제옷 중독얘기를 했었고 가계부를 써보니
많은 돈을 구제옷에 쓰고 있어서 놀라고 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바로 그 다음달부터 가계부를 안쓰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만 내게 돌을 던져라~!
(날아오는 돌을 피하며) 못쓴 것이 아니라 명백히 안썼는데
그 이유는 귀찮아서가 아니라 가계부를 쓰는 게 내게 너무 고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4대강으로 국토를 살리겠다면서 오히려 녹조라떼를 만드는 헛소리냐고 하신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이거다.
가계부 워크샵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욕망이 내 욕망인양 착각하지 않고 내가 돈의 흐름을 지배하기 위해서...
라고 워크샵 강사분이 얘기해주셨다. 그래, 맞는 얘기다.
좀더 유식한 사람 말을 빌려오자면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이런 얘길 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우리의 욕망은 항상 타자의 욕망으로,
타자(욕망들을 위한 대본을 마련해주는 상징적 텍스처)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우리가 아니며, 우리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라고 하는 어떤 픽션을 모방한다’
그래서 가계부를 써봤더니 내가 왜 옷 소비에 열광하는지도 알았고 내 숨은 욕망도 알게 됐다.
좋다. 근데 돈을 쓸 때마다 돈 쓴걸 기록하자니 돈을 쓰는 그 쾌락을 맘껏 누리지 못하고
감시받는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났다.
‘아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뭐 막 돈을 써재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돈으로 작은 쾌락을 얻겠다는데 그걸 일일이 기록해서 그걸 눈으로 봐야해?
왜 그래야해?가뜩이나 맨날 자기반성과 자기검열로 점철된 삶을 사는데 돈 좀 그냥 쓸 수 없는거야?’
돈을 쓸 때 등가적 쾌락을 꼭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돈을 쓰고도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나 돈을 헛되게 썼다는 생각이 들면
돈 쓴게 무지 아깝고 화가 난다. 그래서 돈을 쓸 때 신중한 태도는 좋지만 저번 편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한때 밖에 나가면 밤까지 밥도 아까워 못사먹고
극도로 돈쓰는 걸 겁내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돈을 조금 써보겠다는데 굳이 가계부를 쓰면서
돈을 쓰는 걸 내 자신에게 각인시킬 필요는 없잖아?
구제옷을 인식하지 못했으니까 이제부터 구제옷 사는 것만 좀 주의하면 되지.
실제로 가계부 쓰고 구제옷 사이트도 가지 않고 이번달엔 두 개, 7천원정도 산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이렇게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가계부를 쓰다간 가끔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다거나
음료를 나눠먹을 때도 아 현재 돈이 요만큼 남아있는데 이걸 쓰면 얼마나 남는구나가 떠오르고
돈을 쓰면서도 꺼림칙한 마음이 들어서 맘이 불편한 걸 막을 수 없을 듯 했다.
하지만 이놈의 빈자의 재무설계가 발목을 잡았다.
글을 쓰려면 소재가 필요하고 가계부를 써야했다.
써봐야 ‘나는 여러분에게 세상이 모두 예스라고 할 때 홀로 노라고 외칠 수 있는
재무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가계부의 무용지물입니다’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6월에 몸을 배배 꼬아가며 가계부를 썼다.
정확히는 가계부 앱에 기입했으며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돈을 쓰는
그때그때 기입하지 않고 하루건 이틀이건 몰아서 가계부를 쓸 때 내가 기억하는 만큼 기억하기로 했다.
일단 4월에 쓴 가계부 내역을 보자.(정확한 수치를 생략하고 만원 단위로 절사한다)
집에 낸 생활비가 20만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합쳐 10만원.
빈고출자 5만원, 문화생활 2만원, 외식비 3만원,
각종 단체 후원금 합쳐서 5만원, 교통비 5만원, 구제옷 쇼핑 6만원= 합계는 56만원이다.
수입에서 6만원 초과. 넘친 돈은 예전에 벌어둔 돈에서 찾아썼다.
저번 편에서 창피해서 차마 밝히지 못했던 구제옷 쇼핑 비용이 무려 6만원.
구제옷으로 이 정도 금액을 쓴다는 건 대단한 거다. 6만원 짜리 옷은 비싸서 절대 못사면서.
그렇다. 4월에 빈집을 나오고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우울하다는 이유로 구제옷 쇼핑에 폭주했다.
이때 뭔가 심각성을 느껴 가계부를 쓴 건 잘한 일이다.
나의 소비패턴이 점검됐고 그 이후로 두 번 구제옷 사이트에 가 본 것 외에
구제옷 사이트에 간 적이 없다.
그보다 더욱 느끼게 된 가계부의 효용성은 내가 한달에 60만원을 쓰는 사람을 인식시켜준 것이다.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이 아닌 비정기적으로 나가는 미용, 여행, 의료비 등을 합하면
1년에 100만원 정도는 나가므로 나는 한 달에 70만원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아니, 여태 그것도 몰랐어?’라고 물으신다면 몰랐다.
나는 내가 한달에 30여만원쯤 쓰고 사는 사람인줄 알았다.
보통 재무상담할 때 돈을 충동적으로 많이 쓰는 사람에겐 신용카드를 자르라고 하는데
그건 내 손에서 돈의 촉감을 느끼지 않고 소비를 하면 그 소비액수에 둔해지기 때문이다.
집에 내는 생활비는 통.장에 자동이체를 걸어놓았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국가에서 알아서 빼갔다.
내 손에서 나가지 않는, 숫자로 없어지는 돈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5월을 건너뛰고 6월에 대충 쓴 가계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
생활비 20만원,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10만원, 빈고출자 5만원, 교통비 5만원,
청주 및 대전공동체방문 여행비 5만원, 외식비 12만원,
각종 단체 후원금 5만원, 구제쇼핑 7천원 = 합계는 63만원.
4월과 6월의 차이는 크지 않다. 5만원이 초과됐지만 여행비가 추가된 것이고
외식비가 늘었지만 사람들과 나눠먹는 즐거움까지 줄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빈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외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고
동네친구에게 머리를 맡김으로서 미용실 가서 쓰는 돈을 줄일 수 있었다.
구제쇼핑은 에.... 그게 퀴어퍼레이드 가서 내가 이 현장에 있었던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기 위해서
구입했다고 한다면 나 때릴꼬얌? 아잉~
초과된 지출은 역시나 예전에 모아둔 잉여금에서 해결했다.
사실 내가 위에서 든 가계부쓰기는 정말 (돈을 쓴 사실에 대한) 기록에 불과하다.
일단 1인 생활자라서 돈의 쓰임새가 정해져있다.
정기지출과 비정기지출을 나눠 쓰거나 돈의 목적성에 따른 통.장 분리같은 기술을
적용한 체계적 가계부 쓰기는 아니다.
이런 체계적인 가계부쓰기의 기술을 알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따로 만나 알려드릴 수 있다.
가계부 쓰기의 목적은 내가 쓰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소비패턴을 점검하는 것이고
자신의 성격이 꼼꼼하거나 계획적인 것에서 멀다면, 그런데 돈을 충동적으로 막 쓰는 버릇이 있다면
일단 귀찮더라도 이런식으로라도 그냥저냥 막 그냥 형식으로 가계부쓰기를 권하고 싶다.
힘들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좋겠다. (언제나 글은 기승전재무상담)
나는 앞으로 외식비와 구제옷 쇼핑쪽만 예의주시하면서 기록을 해나갈까 한다.
< 언 제 든 지 여 러 분 을 돕 겠 습 니 다 - 빈 고 재 무 상 담 >
그런데 두 달치의 이 짧고 엉성한 가계부를 기록하다보니
나는 또 다른 부분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됐다.
저축하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예전에 벌어놓은 잉여금에서 이렇게 갖다쓰면서 초과분을 메울 수 있고
또 잉여금으로 돈을 안벌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냥 살 수도 있다.
고맙게도 비정기적인 알바가 간혹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저축하지 않고 이렇게 사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러면 더 벌든가, 아니면 덜 써야 한다. 어떻게 더 벌고 무엇을 덜 쓸 것인가.
글을 쓰느냐고 이것저것 나의 옛날 글들을 찾다보니 몇 년전 전주영화제에서
‘지젝의 기묘한 이데올로기 강의’라는 다큐영화를 보고 쓴 글이 있었다.
워낙 짧은 단상을 써놓아서 맥락 전체를 다시 찾아봐야 할 거 같긴 한데
지젝이 영화 속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대 사람들은 쾌락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맨처음 1편에서 했던 내가 했던 ‘나는 왜 불안한가’에 대한 질문이 떠오른다.
사실 어느 정도의 잉여금이란 자산이 있고 공동체가 있고
소위 한국에서 유일하다는 부모라는 복지도 있다.
근데 끊임없이 따라오는 불안감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과 별개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지젝말처럼 이것은 내가 왜 자꾸 아직 오지도 않은 앞날을 걱정하며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죄책감을 유발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불안감에 대해 다음에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너무, 너무 재밌는거 아냐? 곰자의 이 미친 글솜씨! (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