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냄새나고 귀여운 손님들
몇 년 전부터 길고양이 사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이 동네는 오래된 주택가라 길고양이가 많은 편이지만 돌보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길고양이들이 경계심이 심하다. 그래도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최대 다섯 마리 정도는 길고양이들이 매일 와서 식사를 해결하고 가곤 했다. 한 때는 12시에 나타나 츄르를 대접받고 가는 샴 고양이도 있었다. 영길은 그 칸트 고양이의 츄르 짜개로서 충실하게 츄르를 갖다 바쳤다. 밥 주는 건 생존에 필요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저렇게 매일 간식까지 갖다 바칠 일인가 싶어서 잔소리를 하면, 영길은 “날도 추운데 밖에서 고생하잖아..”라며 엄청 짠한 눈빛으로 츄르 상납을 정당화하곤 했다. 아마도 인간과 함께 살다가 버려졌을 그 샴 고양이는 너무 늙었고 사료도 잘 못 먹었다. 그가 누릴 수 있는 얼마간의 즐거움이 츄르라면 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도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굳이 특별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샴 고양이는 샴이, 까만 고양이는 까망이, 삼색이, 삼색이 2세.. 오랫동안 자주 찾아오는 고양이들은 그런 식으로 불렀다. 새로 온 덩치 큰 애, 눈에 아이라인 그린 애, 너구리 같은 애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들 키울 것도 아닌데 이름까지 붙이진 말자는 입장에 가까웠다.
고양이 밥 주기를 제안했던 다솜은 어렸을 때 친구의 햄스터를 이곳에 데려와서 잠깐 맡아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는 혜린과 1시간 넘게 긴긴 대화를 나눠야 했다. 살아있는 걸 키운다는 것, 그걸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나도 햄스터, 병아리, 고양이, 강아지.. 다 한 번씩 키우기를 시도했다 실패한 어린 시절 이후로는 아무것도 키울 생각이 없었다. 때가 되면 밥을 내놓는 것이 우리가 합의한 최대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깽이가 이곳에 왔다. 어미 고양이인 삼색이 2세가 새끼들 중 가장 약하고 꼬리가 짧고 죽기 직전인 것을 두고 간 것 같았다. 처음엔 사료를 줬는데 조금 기운을 차리는가 싶더니 갈수록 생기를 잃었다. 너무 어려서 아직 건사료를 못 먹는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몰랐던 우리는 뒤늦게 부랴부랴 검색을 했고, 결국 습식 사료를 잔뜩 먹여 아깽이를 살찌우는데 성공했다. 처음 화장실을 마련해 주고 한동안 나는 고양이 똥을 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깽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하며 화단에 배변을 하고 알아서 파묻는 어엿한 성묘가 되었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연애(?)와 사회화 과정을 거친 후 새끼들을 낳았다.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아깽이는 사람 손을 타지 않는 고양이였고, 우리도 아깽이를 길고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알아서 새끼들을 키우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깽이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강한 모성을 보이며 새끼들을 돌봤지만 늘 좋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었다. 자꾸만 새끼들을 먼지 가득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외부로부터 지켜내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허피스 바이러스를 골고루 새끼들에게 물려준 것 같았다. 우리는 또 한번의 폭풍 검색을 통해 새끼들을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의료보험도 안되는 비싼 약들을 처방받아 새끼들을 어느정도 건강한 수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어줬다.
햇빛이 좋은 날이면 아깽이와 새끼들은 마치 그림처럼 서로를 핥고 보듬으며 다정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막내인 미야가 사라졌고 아깽이는 두 번째 출산을 했다. 새로운 새끼들은 건강 상태가 더 안 좋았다. 둘째인 가키는 새로운 새끼고양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다 죽어버렸다. 이제 첫째인 오키가 아깽이와 둘이서 새끼 고양이들을 돌본다. 어느덧 오키는 아깽이보다 훌쩍 더 커졌다.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 마치 내가 금방 늙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깽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아프고, 만남과 이별을 하고, 살아남아 자식을 키우는 모든 과정을 본 게 겨우 2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내 손으로 습식사료를 입에 넣어 줘야만 먹던 미야는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됐는지도 알 수 없고, 늘 도도한 눈빛으로 인간을 피하던 가키는 새끼들을 돌보다 죽어버렸다. 새로 태어난 새끼들 중에서도 약한 것들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새끼들 중 힘세고 묵직한 아와, 콧물을 달고 사는 시오, 눈을 잘 못 뜨고 잠만 자는 루마 중에서 누가 더 오래 머물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벌써 네 번째 같은 약을 처방받아 매일 넣어주고 있지만 이들의 상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완치되지 않는다.
이미 이 정도면 집고양이 못지않게 인간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고양이들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들을 책임질 자신도 의지도 없는 나는 그들이 길고양이로 제발 독립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버리지 못한다. 내 무릎 위에서 잠든 작고 냄새나고 귀여운 시오의 얼굴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니가 죽으면 난 너를 그냥 잊어버릴 거야”라고 계속 생각한다. 그리고 꼭 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