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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그런 날이었다 (2024 빈고 활동가대회 <빈고주의자> 후기 )

  • 마시멜로우
  • 작성일시 : 2025-01-08 02:23
  • 조회 : 134

벌써? 그날부터 3주 남짓 지났다.


   그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한 일도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으니. 내가 까먹은 부분은 다른 조합원들이 채워서 기억하겠지.

 

작년 1214. 역사에 남을 일이 있었다. 이 나라에.

 

그날 빈고는 <2024 활동가대회>를 치뤘다. 대회는 온통 소설가 한강을 오마주했다. 대회 제목 자체가 <빈고주의자>. 아마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따왔겠지? 전에 없던 <빈고 문학상>도 시상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한다는 명분이다. 그땐 정신이 없어 몰랐다. 다시 보니 그렇다.

 

12. 꿀잠 1층 식당에서 먼저 온 이들이 점심을 먹었다. 아마 지음이 라면을 끓였던 것 같다. 김밥도 나눠 먹었나.(아님 말고.) 알고 보니 점심은 포트럭(potluck)이었다. 나는 그걸 모르고 빈손으로 갔다. 다행히 뭔가 챙겨온 이들이 있었다. 넉넉히 사온 사람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꿀잠 지하 강당에 내려갔다. 스탠드 형태 좌석 옆 작은 벽에 종이들이 줄지어 붙고 있었다. (아마 이파람 님이 종이들을 붙였던 것 같다.) 빈고 문학상 출품작들이었다. 먼저 온 이들이 종종 작품들을 감상하곤 했다.

 

양군이 갑자기 강당 앞쪽에 기타를 들고 앉았다. 민중가요 몇 곡을 불렀다. 양군만의 소박한 필(feel)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1부는 빈고 백일장, 대회 설문조사 결과 발표, 2024년 활동과 현황 공유’. 설문조사 결과 발표, 활동과 현황 공유는 기억이 난다. 근데 빈고 백일장은 뭘 했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한 게 맞겠지?)

 

2부 순서는 조별 소수다, 모여 대수다, 잔수다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 2~3개 주제를 정해서 조별로 수다를 떤다 각 조의 대표들이 나온 수다를 모아서 발표뭐 이런 식이었다. 나는 무슨 일로 밖에 나갔다가 조금 늦게 끼었다. 영문도 모르고 앞에 보이는 모둠으로 가서 앉았다. 그 모둠에 운동이란 키워드가 맘에 들긴 했다. 조별 수다가 끝나자 발표가 이어졌다. 우리 모둠에서 나온 이야기는 애석하게 기억이 잘 안 난다. 지각생이 있는 모둠에서 꽤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는 기억만 있다. 그 모둠은 탄핵 이후의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ㅎㄷㄷ


2부에 이어 대망의 빈고 문학상시상식이 펼쳐졌다. 투표 결과로 세 가지 상의 수상작이 정해졌다. ‘빈고가온다(독창성) 알록의 <환전>, ‘빈고의 사랑(예술성) ’ 잔잔<무제>, ‘빈고주의자(주제성) 지음의 <캐피탈러와 커머너>. 결과 발표 후에는 각 작품의 글쓴이도 밝혀주었다. 나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지각생이 나를 보더니 마시멜로는 작품을 두 개나 냈는데 뭐라도 좀 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지음이 내게 선물을 줬다. 책갈피 같이 만든 나무판이었다. ‘자본에서 공유지로라는 슬로건과 빈고 심볼마크가 박힌. 그것도 무려 세 개나.

 

아마도 시상식을 마친 뒤였으리라. 모인 사람들이 밖으로 나갔다. 모두 국회 앞으로 빠르게 걸었다. 전철을 타도 여의도역은 무정차가 예상됐기에. 일행들이 신길역 부근을 지날 때였다. 뒤에서 갑자기 탄성이 들렸다. 긍정적인 늬앙스다. 잽싼 사람들이 부리나케 핸드폰을 확인했다. ‘탄핵소추안 가결!’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무수한 행렬에 끼어 국회로 계속 걸어갔다.

 

빈고 일행이 국회 앞 집회 대오에 도착했을 때였다. 집회 무대 위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각생은 왜 하필 우리가 오니까 저 사람이 나오냐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그이만 앞에서 발언을 한 건 아니었다. 국회 앞 대로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불빛, 피켓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집회에서 적당히 분위기만 맛보고 일행들은 다시 꿀잠으로 돌아왔다. 거나한 저녁식사와 기나긴 뒷풀이가 이어졌다. 근처 중식당에서 시킨 것 같은 중식들이 테이블을 꽤 채웠다. 중국술도 마셨던 것 같다(그 동네는 영등포 신길동이다.) 

 

뒷풀이에 대한 내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술이 받지 않아 방에 들어가서 두 번이나 쉬었던 탓이다. 다만 내가 재밌게 끼어들었던 대화만 기억이 난다.

 

비루가 갑자기 빈고의 차기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정훈이 계속해서 대표를 이어가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정훈은 올해까지만 하고 쉬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 뒤 누가 차기 대표를 하면 좋겠냐는 말들이 나돌았던 것 같다. 나는 농으로 도대체 잠룡이 누구냐?’고 물었다. 비루는 잡룡이라고 들었다. 또 이런저런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그때까지 뒷풀이에는 비루의 말로 성골이라 부르는 이들이 꽤 남아 있었다. 여기서 성골이란 빈집의 초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이들을 일컫는다. 결론적으로 성골은 많았지만 잠룡도 잡룡도 없었다. 확실한 후보가 없다는 뜻이다. 추천받는 이들은 있었지만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올해부터 빈고 운영위원에 끼기로 했다. 내가 자꾸 잠룡 잠룡하니까 지음이 이런 농담으로 받아쳤다.

 

지음: 초선의원인 마시멜로가 어디에 줄 서야 하는지 계속 눈치 보네.

마시멜로: 줄을 잘 서야지! 근데 어디에 줄 서야 하지?

지음: 마시멜로, 이러다가 나중에 운영위원이 아니라 다른 자리를?

 

내 딴엔 유쾌한 농담들이 이렇게 오갔다. 그런데 알맹이는 없었다. 어차피 결론을 내려고 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저 농담으로 채울 수밖에...

 

나는 정훈이 대표로 있던 시기부터 처음으로 빈고에 출자하기 시작했다. 빈고 활동에도 자주 참여했다. 빈고에서 이런저런 행사나 놀러 가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정훈이 계속 대표를 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가 빈고 대표로 있을 때 좋았던 점을 말했을 뿐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뒤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내가 겪었던 어떤 정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그날도 이 정권이 반환점을 돈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라의 대표는 국회를 통해 직무가 정지됐다. 빈고의 차기 대표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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